'구수한 언변' 지역 축제·행사서 사회 도맡아 각종 노래자랑선 1등 '스타 이장'

새까만 피부에 콧수염이 잘 어울리는, 노래와 입담 좋은 멋진 이장으로 잘 알려진 양산시 상북면 대석마을 차병철(60) 이장.

콧수염만큼이나 기성가수 뺨치는 빼어난 노래실력으로 각종 노래자랑에서 상을 휩쓰는 것은 물론 각종 행사장에서 이미테이션 가수로도 명성을 높이고 있다. 가수 이장희나 장현 같은 푸짐한 스타일이다.

그런가 하면 구수하고 위트 있는 입담으로 수십억 원 사업비가 내걸린 창조적마을 만들기 사업 보고회에 발표자로 나서 깐깐한 심사위원들을 사로잡는 등 가히 탤런트 같은 재능을 갖춘 그다.

고향인 상북면 대석마을에서 지난 1월부터 마을 이장을 맡은 새내기 차 이장은 짧은 경력에도 기존 이장 못지않은 발군의 능력을 과시하고 있다.

저돌적인 추진력과는 달리 나이답지 않은 천진스러운 눈망울로 얼굴엔 장난기가 넘친다. 그러나 깊은 눈망울 이면에는 잇따른 사업 실패 등 눈물겨운 사연도 많다.

양산에서 초·중학교를 나온 그는 군대 제대 후 주특기인 운전병 기술을 살려 부산 한 정비업체에 취업을 했다. 엔진 분야 실장까지 맡으며 탁월한 능력을 검증받았다.

차병철 대석마을 이장

그러나 향수를 이기지 못해 직장을 그만두고 귀향했다. 1990년 양산으로 돌아와 택시업체 운영에 참여했다. 주주 겸 기사로 양산지역 곳곳을 누비며 시민의 발이 되어주고 말벗이 돼주었다.

그는 특유의 입담으로 승객들에게 택시 타는 또 다른 재미를 안겨줬다. 그는 다시 더 큰 꿈을 꾸고자 1992년 울산에 진출해 중장비 사업에 뛰어들었다.

하이랜드 크레인 장비를 굴리며 활발한 활동을 벌이면서 울산중기협회를 창립해 6년간 협회장을 맡기도 했다. 이때부터 남다른 사업 수완과 사람을 끄는 매력을 발산했다.

하지만 잘나가던 사업도 당시 찾아온 IMF 외환위기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었다. 사업을 정리하고 2000년 고향에 돌아온 그는 고철업에 뛰어들어 오뚝이 인생의 의지를 보여줬다.

2008년 고철 사업 실패도 굴하지 않고 차 이장은 다시 택배 사업에 뛰어들었다.

바쁠 때는 직원을 대신해 직접 택배에 나서는 그는 권역별 사업추진위원장, 이미테이션 가수 등 1인 3∼4역도 마다치 않고 있다.

장수마을로 잘 알려진 대석마을은 양산의 명산 천성산 아래 자리 잡은 마을로 370여 명, 178가구가 산다. 마을 전체가 차 이장의 친인척 등 가족과 진배 없는 고향마을이다.

이 때문에 차 이장은 부산 직장생활 때나 울산에서 사업을 할 때도 명절이면 반드시 고향을 찾아 풍물패 포수 역할을 도맡아 하면서 고령의 노모와 이웃들과 함께 명절을 나눴다.

특유의 익살로 포수를 맡은 차 이장은 마을 주민들에게 웃음을 주면서 기금을 모아 지역청년들과 20여 년간 이웃돕기를 해왔다.

2013년부터 2년 동안 새마을지도자를 맡아 '물안뜰 상여마을' 활성화에 앞장서는 등 지역개발사업에도 힘을 보탰다.

올해 차 이장은 특히 2016년 창조적마을 만들기 대석권역 추진위원장도 맡아 전국 단위 프레젠테이션에 참가해 재치와 위트 있는 발표로 심사위원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특유의 언변과 친화력으로 사업 선정에 긍정적 반응을 얻어냈다.

이 같은 언변으로 마을 잔치는 물론 양산지역 띠별 모임인 56회 행사와 지역 축제 등에서 사회를 도맡기도 한다. 이뿐 아니라 뛰어난 노래실력으로 양산지역 선후배 잔치와 천성대축제, 양산삽량문화축전 등 각종 노래자랑에서 1등 상을 받는 등 양산의 스타 이장으로 불린다.

이벤트 사업을 하는 친구 행사에 기성 가수가 펑크를 내면 대타 가수로 무대에 선 것만도 셀 수 없을 정도로 타고난 무대 체질이다.

"가수가 팔자라는데 이러고 있다"며 너털웃음을 지어 보이는 차 이장은 "꿈이 있다면 양산을, 특히 고향인 천성산을 배경으로 한 노래를 부르고 싶다"라고 말한다.

그는 새내기 이장으로서도 포부를 밝힌다. "고향 대석마을 도로변에 산복숭아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마을로 만들어 꽃도 보고, 산복숭아 농축액으로 마을 어르신 건강도 챙기는 부자마을로 만들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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