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간다] (13) 사천 초전공원

오락가락 태풍 소식에 지체할 수 없었다. 더워야 여름이지, 하면서도 너무 덥다는 말을 중얼거리는 주말 오후 연꽃을 보러 나섰다.

얼마 전 '천 년의 숲'이라고 불리는 함양 상림숲에서 만난 무수한 연잎을 떠올리며 떠난 곳은 사천 초전공원이다.

사천 사남면으로 가는 길, 낮은 구름이 눈앞에 있다. 쾌청한 한여름날 볼 수 있는 역동적인 여름 구름이 떠있다.

초전공원은 사천사남농공단지와 사천외국인투자지역, 사천일반산업단지 가운데 있다.

사천 초전공원. 연잎이 오묘한 색을 띠고 있다.

몇 안 되는 주민이 사는 곳에 공장이 즐비하게 들어섰고 최근에는 대기업 브랜드 아파트단지가 조성된 초전리. 그곳에 작은 공원이 들어서 있다.

널찍한 잔디밭에 아무도 없다. 쨍쨍한 하늘 아래 온몸으로 햇볕을 받는 벤치 몇 개와 누가 탔는지 알 수 없는 세발자전거가 제 몸을 가누지 못하고 넘어져 있다. 한구석에는 축구공도 덩그러니 놓여 있다.

잔디밭을 지나 내리막 계단에 서니 연꽃단지가 보인다. 군데군데 빈 연못이 아쉽지만 무수한 연잎이 오묘한 색을 띠고 있다. 초록과 노랑이 뒤섞였다.

연꽃은 간간이 폈다. 폭염에 고운 자태를 드러낸다는 꽃은 몇 송이뿐이다.

나무덱 4개가 연결된 길을 걸었다. 손바닥보다 큰 버들붕어가 유유히 연줄기 사이를 헤엄친다. 가만히 서서 보고 있자니 제법 많다. 연줄기는 연못 깊숙이 박혀 있다.

짙은 정적을 깨는 것은 팔딱대는 물고기와 삐걱대는 나무덱이다. 이상한 소리에 놀라 둘러보니 바로 발밑에서 나는 소리다.

가던 길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면 한적한 공원에서 세상의 움직임이 보이는 듯하다. 공원 저 너머 도로 위를 달리는 차 소리, 어디선가 재잘대는 아이들.

한적한 농촌마을. 조금 더 내다보면 조선소가 보인다.

파릇한 벼가 펼쳐진 농촌마을인데 조금 더 내다보면 조선소 풍경이 들어온다. 논 옆 낮은 지붕 아래에선 어르신들이 낮잠을 청한다.

연잎이 허리를 더 꼿꼿하게 세우면 뭉게뭉게 피어난 하얀 구름과 만날 것 같아 한 프레임에 담았다. 그런데 사진을 확인하니 그 옆으로 삐죽하게 올라선 아파트가 영 엉뚱해 보인다.

그늘이 없는 연꽃단지에서 나왔다. 산책로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는 길에 배롱나무와 이팝나무가 서 있다.

숲에 텐트가 여러 채다. 더위를 피해 나무 아래 평상에서 늦은 점심을 먹는 사람들이다.

한 아이가 땀을 뻘뻘 흘리며 뛰고 있다. 자전거 안전모를 쓴 채 줄넘기를 넘느라 여념이 없다.

잔디밭에 뒹굴어있는 세발자전거도 얼마 전 아이들이 신나게 타고 놀았을 터.

아이들은 작열하는 태양과 누가 더 센지 힘을 겨루는 모양이다. 여름날 에너지가 넘치는 건 이들이다. 산책로에서 물놀이장에서 신나게 웃는 건 아이들뿐이다.

물놀이에 빠져 있는 아이들.

나지막한 숲을 한 바퀴 돌면 다시 잔디밭으로 돌아온다.

소나무가 많은 숲길은 짧지만 운치는 제대로다. 길에서 조금 벗어나 나무 사이로 들어가면 사방은 그새 어둑해진다. 불볕더위가 내리쬐는 오후에는 오롯이 혼자 숲을 즐길 수 있다.

초전공원은 8년 전 완공됐다. 인공폭포와 연꽃단지가 있고 테니스장과 운동기구처럼 주민이 이용할 수 있는 체육시설이 갖춰져 있다. 잔디밭 한편에는 음악회를 열거나 영화를 볼 수 있는 무대가 마련돼 있다. 늦은 밤 걷기 좋도록 나무덱과 산책로 구석구석에 조명도 있다.

산책로에서 나와 매점에 들렀다. 알록달록한 플라스틱을 잘 말아 만든 바람개비로 둘러싸인 가게다.

매점 주인은 공원 관리사로 보이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얘기한다. 주인장이 빌려주는 유아용 자전거와 장난감 자동차는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지만 그들은 물놀이장에서 나오지 않는다. 곧 해가 뉘엿뉘엿 질 텐데,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인다.

얼마 후 너무 덥다는 말을 내뱉으며 초전공원을 빠져나왔다.

뒤를 돌아봤다. 멋대로 꽃으로 뒤덮인 화려함을 기대한 길에서, 어렸을 적 마주한 여름 풍경이 겹친다.

공원 인근 공장보다 아파트단지보다 낮은 집 몇 채와 우두커니 서 있는 산들. 그리고 저너머 길게 펼쳐진 도로에 눈길이 간다.

문득 저녁밥을 먹으러 들어오라는 할머니 목소리가 들린다. 높은 하늘 비행기를 올려다보며 새까맣게 그을렸던 어린시절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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