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자립으로 가는 길] (2) 생활 속의 에너지 낭비

먼저 전력 단위부터 볼까요. 우리가 쓰는 백열전구는 대부분 20W짜리입니다. 1000W가 1㎾가 되죠. 4인 가구가 쓰는 한 달 평균 전력 소비량이 300~400㎾라고 합니다.

단위가 좀 더 뛰어 1000㎾는 1㎿(메가와트)가 됩니다. 그리고 1000㎿가 1GW(기가와트), 1000GW가 1TW(테라와트)가 됩니다.

정부는 지난해 우리나라 총 전력 소비량을 478TWh라고 발표했습니다. 독일의 2014년 총 전력(전기) 소비량은 516TWh입니다. 두 나라의 전력 소비량이 큰 차이가 나지 않죠.

GDP 규모나 인구가 한국의 2배나 되는 독일 전기 소비량이 우리나라와 거의 같다는 것은 뭘 의미할까요? 국민 1인당 전기 소비량은 1만㎾h에 이르러 독일이나 일본보다 20~30% 오히려 높았습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지난 21일 발표한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2029년 우리나라 예상 소비전력을 총 656TWh로 예상했습니다. 우리나라 인구를 5000만 명으로 계산하면 2029년 1인당 전기 소비는 1만 3100㎾h가 됩니다. 독일의 2배(독일은 2030년 1인당 전기소비량 6100㎾h로 계획)에 이르게 됩니다.

탈핵경남시민행동 박종권 공동대표는 이를 들어 "전력수요 관리는커녕 전력수요 부풀리기에 혈안이 돼 있는 정부"라고 꼬집었습니다. 원자력발전소 13기, 화력발전소 20기, LNG발전소 14기를 건설하겠다는 기존 화석연료 중심 전력정책을 정부가 고수하려 하기 때문에 그만큼 전력수요를 부풀린다는 거죠.

◇에너지 낭비 누가 할까요? = 대중교통 예를 들어볼까요. 정부는 지난해 10월 말 우리나라 자동차 등록 대수가 2000만 대를 돌파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올 1월 말 현재 인구가 5100만 명으로, 절반 가까이 차를 가진 셈이죠. 도로에 차고 넘치는 차량만 봐도 우리나라가 만만치 않은 석유 소비국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자동차와 도로를 기반으로 한 교통 체제는 사람들을 자동차 중독에 빠지게 했습니다.

심지어 시내에서 몇 발 움직일 거리도 승용차를 타고 가는 실정이죠. 출퇴근 시간대를 보십시오. 교통체증 구간에 줄지어 서 있는 '나홀로 자가용'들이 숱합니다. 대중교통을 중심에 둔 교통정책을 언제나 강조하지만, 아직 현실은 멀기만 합니다. 무조건 승용차를 타지 말자는 것은 아닙니다. 도심 가득한 '나홀로 자가용'이 아니라 대중교통을 이용함으로써 에너지 절약뿐만 아니라 쾌적하고 안전한 도로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에너지 낭비의 주체는 과연 누구일까요?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가정용 전력 소비량은 지난 2012년 기준 1278㎾h로 경제협력개발기구(이하 OECD) 34개국 가운데 26위였습니다. 1위는 노르웨이(7415㎾h)며, 캐나다(4387㎾h), 미국(4374㎾h), 핀란드(4111㎾h), 스웨덴(4084㎾h) 순입니다. 일본(2253㎾h)은 11위. 한국은 미국의 29%, 일본의 57%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정용에 산업용, 공공·상업용까지 합친 1인당 전체 전력 소비량은 9628㎾h로 OECD 국가 가운데 8위였습니다. OECD 평균(7407㎾h)을 크게 웃돌죠. 우리나라는 철강·석유화학·반도체 등 에너지 다소비 산업 때문에 산업용 전력 소비 비중이 다른 국가보다 월등히 높은 것입니다. 결국 산업용 전력 소비 비율이 52%에 이르는 반면 가정용은 13%에 불과하다. 공공·상업용은 32%를 차지합니다. 산업용, 가정용, 공공·상업용 전력 소비 비율이 30:30:30 수준으로 거의 비슷한 OECD 다른 국가들과 대조적이죠. 마치 일반 시민들이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처럼 호도되는 것은 그래서 옳지 않습니다.

◇개인 책임? 국가 책임? =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렇게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것일까요? 국민의 과소비 문제일까요, 아니면 국가 에너지 정책에 문제가 있는 걸까요?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은 먼저 정부가 에너지 수요를 예측하고 공급계획을 수립하면 계획에 따라 에너지 기반 시설 투자가 진행됩니다. 지난 20일 산업통상자원부가 확정한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같은 거죠.

하지만 국민이 10년이나 20년 후에 에너지를 얼마나 사용할지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다 보니 '부족'하기보다 더 '넉넉히' 예측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번에 수립된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역시 이 문제가 논란이 됐습니다. 2012년 이후 전력수요 증가율은 해마다 줄어 2014년에는 0.6%에 그쳤습니다.

퇴근 시간대 마산어시장 해안도로를 가득 메운 차량들. /경남도민일보 DB

그런데 정부는 오는 2029년까지 매년 평균 2.1% 이상 전력수요가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10년간 연평균 증가율이 4.1%였다는 점, 순간 최대전력은 연평균 4.4% 증가했다는 점을 내세웠죠. 가장 많이 썼을 때를 대비하는 것이 맞다는 논리죠.

1980년대 중반, 국민 전력 수요는 애초 정부가 예측한 수치의 절반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1970년대에 착공된 원전이 잇따라 준공됐습니다. 하지만 막상 전력 수요가 없어 전기가 남아돌기 시작했죠.

정부는 남아도는 전기 문제를 해결하고자 소규모 발전소 건설계획을 취소하고, 전기 요금을 9차례나 내렸습니다. 값싼 전기 요금은 전력 소비를 부추겼습니다. 특히 발전 원가보다 낮게 공급되는 산업용 전기는 산업 부문에서 전력 과소비를 심화시켰습니다. 석유 등 다른 에너지원 가격이 상승하면 산업계는 에너지원을 전기로 전환했고, 그러면서 전력 수요는 더욱 늘어났죠.

독일 프라이부르크 도심에는 자전거 전용 고속도로까지 있을 정도다. 독일은 대중교통 활성화로 에너지 소비량을 줄였다. /공동취재단

※'에너지 자립으로 가는 길' 기획이 게재되는 동안 지면 사정으로 목요일 자 '미디어 섹션'은 쉬게 됩니다. 독자 여러분 양해 바랍니다.

이 기획은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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