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삼아, 나 누군지 알겠니? "

"야~, 너 정주지?"

"형석아, 건우야, 나야."

"정주야, 반갑다."

14년 만에 연락을 한 친구들이 단번에 내 목소리만 듣고도 나인 줄 알아차려 버렸다.

세상에 이런 일이….

길지 않은 통화를 하면서 우리는 20여 년의 세월을 거슬러 다시 대학생이 돼 깔깔거렸다.

세월이 지나는 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나는 대학 동기들과 연락을 끊었고, 속된 말로 그렇게 잠수를 탄 지 14년이나 되었다. 그리웠지만 너무도 아파서 다시는 돌아보지 않으려 했던 시절이 세월과 함께 조금씩 무디어져 가나 싶더니 숨을 때만큼이나 이기적인 이유로 세상 밖에 나온 나를 그들은 여전히 같은 목소리로 같은 표정으로 안아 주었다. 길고긴 공백의 시간에 대해 궁색한 변명거리들을 늘어놓지 않아도 모든 걸 이해하고 덮어주는 그들의 배려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대학 시절을 잊고 살고자 했던 십여 년의 세월이 한 통의 전화로 무너지면서 그동안 꼭꼭 숨겨왔던 감정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웠다. 사무치게 그리웠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렇게 매정하게 연락을 끊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어리고 유치했던 나는 그게 나의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었다.

잊고 싶은 일들이나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들을 겪지 않는 인생들이 어디 있을까? 지나고 나면 어리석은 일인 줄 알겠지만 말 그대로 지나고 나야 알게 되는 것. 아마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 하더라도 여전히 같은 선택을 할지 모른다. 그 시절의 내게는 그 선택이 최선이고 유일이었을 테니까. 기억을 선택할 수 없으니 피하고 도망가는 것 외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여겼다. 이제와 돌이켜 보면 잊고 싶은 하나의 기억 때문에 너무도 소중한 것들까지 같이 묻어 버리려 했던 어리석음이 후회스럽기만 하다. 꽤 긴 시간이 흘렀지만 결국 나의 그리움이 백기를 들고 말았으니까.

그래, 이미 일어난 일이고 돌이킬 수 없다면 억지로 지우려하기보다는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는 게 자연스러운 일 인거야. 그 사실을 더 늦기 전에 깨달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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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속으로 다시 들어가려는 나를 조금도 어색하지 않게 받아들여주는 친구들 덕에 이제야 조금은 용기가 난다. 지난 시간만큼이나 앞으로 시간들이 소중할 것을 알기에 이제는 내가 먼저 애쓰고 다가서려 한다.

"친구들아~ 나 잠수에서 깨어났어. 이제부터 너희들 바빠질 테니 긴장들 해."

/이정주(김해분성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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