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장열전] (29) 박병기 거제시청 요트부 감독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스포츠, 접하지 못한 사람은 이 맛 모르죠."

올해 나이 54살.

실업팀 유니폼을 입은 지 어언 3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그는 매일같이 팀 동료들과 함께 땀을 흘린다.

거제시청 요트부 박병기 감독은 어엿한 지도자라는 명함이 있지만, 지금도 현역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박 감독은 "요트라는 스포츠의 특성 상 꾸준히 관리만 한다면 충분히 오래 선수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면서 "거제시청에는 6명의 선수가 있는데 다들 오랫동안 요트를 탄 베테랑"이라고 선수들을 소개했다.

박 감독은 초등학교 때 수영과 축구, 중학교 때 잠시 축구선수로 활약했지만 진주고에 입학한 뒤에는 운동과 인연을 끊었다. 부모님이 운동보다는 공부를 하기를 간절히 원했던 것도 있었지만 명문고에 진학한 뒤 또래 친구들에게 뒤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더 컸다.

부모님의 바람대로 그는 한양대 공대에 입학했는데 우연한 계기로 요트와 인연을 맺게 됐고 그의 인생에도 커다란 변환기가 찾아왔다.

부산 수영만요트경기장에서 만난 거제시청 요트부 박병기 감독은 지금도 현역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박 감독은 경희대에 재학 중이던 친구를 만나러 경기도 양수리에 위치한 요트장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동아리 활동을 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고 멋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은 차에 우연히 한양대 요트동아리 지원서를 보고 결심을 굳힌 뒤 동아리실의 문을 두드렸고 그렇게 선수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그는 "예전에는 요트가 없어서 직접 만들어서 타고 다니곤 했다. 기술적인 부분은 구매를 했지만 우리가 타고 다니던 요트 대부분은 우리 손으로 만들어 낸 창조물이었다"고 전했다.

1982년 요트를 타기 시작한 그는 대학 때 수준급 실력을 자랑했다.

'86 아시안게임'과 '88 서울 올림픽'에 출전했지만 세계적인 선수들과는 큰 차이가 났다. 입상권은 고사하고 예선전에서 고배를 마셨다.

각종 국제대회에 참가했던 그는 대학을 졸업한 뒤 울산으로 가 회사원과 선수로서 '투잡' 생활을 6년간 이어갔다. 당시 사장이 경남요트협회장이라는 직함이 있었기 때문에 평소에는 일반 회사원 생활을 했고, 대회가 있을 때는 선수로 바다를 누볐다.

"회사원으로 일반적인 삶을 누리다가도 요트선수로 대회를 나갔지만 기분은 참 좋았어요. 당시 사장님 덕분에 요트에 대한 애정이 더 커진 것도 있죠."

그러다 1996년 거제시청에서 팀을 창단하면서 본격적인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박 감독은 선수 겸 지도자로 그해 입단했고 지금까지 숱한 선수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지내고 있다.

최근에는 부산에서 포티나이너(49er) 연습에 매진 중이다.

박 감독의 주종목인 호비16은 올해를 끝으로 정식종목에서 사라진다. 이 종목은 오는 10월 강원도 일원에서 열리는 전국체전을 끝으로 국내 무대에서는 사실상 이별을 고하게 된다. 때문에 49er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자 매일같이 부산으로 출퇴근하고 있다.

그는 "49er는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종목이지만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에서는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국내에서는 국가대표 선수 정도만이 이 종목에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거제시청은 아직 49er를 구매하지 않았고, 국내에는 아직 몇 대 없는 요트라는 점에서 미리 배워둘 필요가 있을 것 같아 매일같이 3~4시간씩 차를 타고 와서 배우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줄곧 타오던 호비16과 49er를 비교하면서 "어려우니 더 재밌다"는 말을 했다.

그는 49er는 배우기가 힘들다고 한다. 호비16에 비해 전복도 잘되는 편이고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고, 강풍이 돌면 타기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지만 그만큼 성취감이 크다고 한다.

박 감독은 요트가 단순히 바닷바람을 이용하는 것이 아닌 자연을 이해하는 스포츠라고 정의했다.

그는 "바람상태는 기본 중 기본이고, 호비16이나 49er, 딩기요트 470과 같은 배는 팀워크가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런 점에서 우리 팀은 오랫동안 호흡을 맞췄기에 큰 도움이 된다. 지금 함께 훈련하고 있는 윤해광 선수는 입단 전부터 함께 해왔기 때문에 눈빛만 스쳐도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또 하나 그가 신경 쓰는 부분은 체중이다. 두 선수가 함께 타는 요트에는 적정 몸무게가 있다. 호비16은 두 선수의 몸무게 합이 130㎏ 정도가 적당하다. 한데 지난 10년간 꾸준한 몸관리로 체중을 유지했던 박 감독은 49er로 종목을 변경하면서 체중을 10㎏는 불려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박 감독은 "단기간에 살을 빨리 찌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서 충분히 몸 관리 하면서 찌울 수는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거제시청 창단멤버이자 지도자로서 박 감독은 자율적인 훈련을 강조한다.

"선수들이 일반적인 운동선수에 비해 나이가 많은 편이고, 다들 결혼도 해서 책임감이 그만큼 커요. 종목마다 세세한 부분이 다르기 때문에 제가 조언하는 게 간섭이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전 감독으로서 전술이나 전략, 종목마다 특이성에 대한 분석안을 내놓고, 거제시청과 체육회의 관계라든지 선수들이 좀 더 기량을 높일 수 있도록 뒷바라지하는 게 다예요."

박 감독은 특히 전술, 전략에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그는 "요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출발"이라며 "스타트를 늦게 끊으면 뒷바람을 타고 결승점으로 가야하기 때문에 좌측이나 우측, 혹은 전방으로 나갈 때를 모두 염두해 두고 작전을 짜는 편"이라고 귀띔했다.

그런 그의 최종 목표는 리우 올림픽 출전이다. "올림픽 출전을 하려면 대륙별 대회나 올림픽 출전티켓이 할당된 대회에서 우리나라가 출전티켓을 거머쥐어야 가능하겠죠. 제가 49er로 당장의 성과를 내기는 쉽지 않을테지만 열심히 훈련한다면 다시 한 번 태극마크를 다는 날이 오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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