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 경력 쌓여도 임금인상은 쥐꼬리…노동에 대한 자부심 꺾는 최저임금 정책

30년 넘도록 한 가지 기술로 일하다 정년퇴임을 하는 한 늙은 노동자가 남긴 말이 떠오른다. "이제 불 들어가는 깊이가 대충 눈에 보이고 물을 얼마나 쳐야할지 얼추 감이 잡히자 정년일세, 그려…." 조선소 수많은 기술직종 중에 '곡직(曲直)'을 평생 밥벌이로 하던 분이었다. 곡직은 말 그대로 굽은 것을 곧게 펴거나 반대로 평평한 철판을 원하는 모양대로 구부리는 일이다. 이들의 기본적인 작업 도구는 산소와 혼합 가스를 이용하는 가열 토치와 철판을 급랭시키는 물이 전부다. 용접을 하면 고열로 인해 철판에 변형이 생긴다. 

이렇게 뒤틀린 철판을 그들의 말인 불대와 물대로 수축 팽창을 이용해 반듯하게 편다. 반대로 평평한 철판이 그들의 불대와 물대를 거치면 이물의 유려한 곡선이 나오고 고물의 날렵한 뒤태가 된다. 철판의 두께와 재질에 따라 열을 얼마나 더해야 하는지 어떻게 식혀야 하는지가 눈에 보이는 이 35년 경력의 장인이 수당을 포함해서 받은 마지막 시급은 8200원이었다. 머리조차 들어가지 않는 좁은 공간에서 보이지 않는 뒷면을 거울 조각으로 반사시켜 놓고 용접을 하는, 내년이 정년인 용접공 김 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초당 200회 고속으로 돌아가는 그라인더로 오백 원짜리 동전 두께에 깊이 2밀리의 홈을 측정 장비 없이 파내는 박 씨도 다를 바 없다.

2015년 최저임금은 시급으로 5580원이다. 2014년보다 370원 올라 인상률은 7.1%였다. 내년 최저임금은 노동계가 처음 제시한 1만 원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6030원으로 올해 대비 450원 오른 8.1%의 인상률이다. 국가별 명목 GDP가 우리와 비슷한 프랑스의 2015년 최저임금은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대략 1만 2500원 정도라고 한다. 우리의 두 배다. 그래서 1인당 GDP도 프랑스가 4만 3000달러 수준이고 우리는 2만 3000달러다. 그런데 주당 실질 노동시간을 비교하면 한국 노동자들은 프랑스 노동자들보다 거의 두 배 가까이 일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일은 배 더하고 돈은 배 적게 받는다는 소리다. 그런데도 재계에서는 1만 원대로 올리면 국가부도가 날 것이라며 동결을 제시했다가 30원 인상안을 내놓기도 했다. "일 년 내내 일해서 버는 1만 5000달러로 가족을 부양할 수 있다고 봅니까? 그렇다면 당신이 해보시오." 최저 생계비 체험이랍시고 생쇼 하는 우리 정치인을 보면서 버락 오바마 같은 대통령을 가진 미국민이 부럽다.

올해는 얼마가 올랐는지, 몇 %가 인상되는지에만 관심을 쏟고 있는 동안 나도 모르게 배는 더 일하고 배는 덜 받는 이 최저임금이 노동자를, 특히 계약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가장 값싸게 부려먹을 수 있는 올무가 되어가고 있다. 대기업 노동자의 사정은 오십보 백보나마 조금 낫겠지만 하청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매년 임금 인상률을 보면 비참한 수준이다. 철판을 떡 주무르듯 하는 늙은 곡직 노동자나 눈 감고도 용접하는 김 씨, 그라인더로 일필휘지하는 박 씨 모두 20∼30년 전 초보 때가 시절이 좋았다고들 한다. 갓 입사해서 기술도 기량도 없었지만 3D업종이라 임금을 녹록잖게 받았던 것이다. 

세월이 흘러 기량은 늘어 가는데 매년 임금 인상은 쥐꼬리였다. 그나마 무슨 위기니 뭐니 언론에서 떠들기라도 하는 해는 동결이나 삭감되기도 했다. 최저임금이 370원, 450원 오를 때 100원 200원이 고작이다. 그 직종에서 달인이 되어갈수록 최저임금에 근접해간다. 이러다간 몇 년 뒤엔 최저시급을 받는 최고 기능공이 될 수도 있겠다. 최저임금의 평준화가 되는 거다. 프랑스의 배관 수리공은 대학 교수와 임금 격차가 크지 않으며 경력이 많고 숙련된 배관공은 오히려 교수보다 높은 보수를 받는다. 따라서 먹고사는 문제를 떠나서 자신이 하는 노동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할 수밖에 없다. 이는 우리보다 적게 일하면서도 생산성을 높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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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최저임금 인상폭이 나라 살림에 끼치는 영향이 어쩌고 하는 것에 대해선 모른다. 그저 누가 내 아이에게 아버지 뭐하시는 사람이냐 물었을 때 "회사원인데요"라고 조그맣게 말하기보다 "울 아부지요? 그라인더공이신데요. 일 겁나 잘하세요"라고 크게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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