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경남도민 생태역사기행] (4) 전남 화순·담양

경상남도람사르환경재단이 지원하고 갱상도문화공동체 해딴에가 진행하는 경남도민 생태·역사기행이 7월에는 전남 화순과 담양을 찾았다. 대체로 들판이 너른 전남에서 화순은 유일하게 석탄탄광이 있을 정도로 산악지대이고, 그런 골짜기에 있는 운주사터를 이번에 찾은 것이다. 또 담양은 남한에서 네 번째로 긴 영산강이 흘러가는 언저리에 아름답고 풍요로운 숲자리 관방제림을 품고 있다.

7월 1일 아침 창원을 떠난 일행은 화순의 신비로운 절간 자리를 먼저 찾았다. 가서 보면 갖은 불상과 불탑을 비롯해 유적이 번듯하게 남아 있는데도 역사 기록에는 운주사는 물론 그 언저리를 스치는 이야기조차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여기 있는 유적들은 여기 아닌 다른 데서는 전혀 볼 수 없는 그런 모습을 하고 있다.

불상은 대부분 얼굴을 비롯한 몸통은 균형 잡힌 비례를 보이고 불꽃이나 빛을 뜻하는 무늬를 새긴 배경이 있으며 연꽃을 새겨넣은 앉음자리까지 갖추기 마련이지만 여기는 전혀 그렇지 않다. 좌대(座臺)는 아예 없거나 제대로 꾸미지 않았고 광배(光背) 또한 마찬가지여서 처음 만들 때부터 그런 것에는 전혀 마음을 두지 않았던 듯이 여겨진다.

석탑 또한 다르지 않다. 석탑이라 하면 대체로 3층·5층 안정된 규모와 균형잡힌 몸매가 떠오르지만 운주사터 불탑들은 그러한 정형에서 완전하게 벗어나 있다. 또 구름·천왕·연꽃 등으로 장식돼 있기 십상인 다른 불탑들과 달리 여기 것 몸통들에는 불교와 무관한 빗금 무늬가 무성하다.

한때는 천불천탑이라 일컬었을 정도로 유물들이 넘쳐나는 운주사지만 그런 유물에는 전통이나 정형 등 단서로 삼을 만한 거리가 내장돼 있지 않다. 관련 기록 또한 없으니 이른바 육하원칙에서 어디서(운주사터에서), 무엇을(천불천탑을) 두 가지를 뺀 나머지(누가, 왜, 언제, 어떻게)가 완전하게 백지 상태로 남겨진 절터다.

전남 화순 운주사 터.

사람들 상상력은 이런 국면에서 커지고 발랄해지는 모양이다. 운주사 여기 땅바닥에 누우신 와불이 벌떡 일어나면 가진 이들 판치는 지금 세상이 뒤집어진다든지, 56억 7000만 년 지나야 도래할 미륵세상의 현신을 빌며 이 땅 가난한 백성들이 만들었다든지, 백제가 망한 뒤에 유민(流民)들이 옛 땅 회복과 나라 재건을 기원하며 세웠다든지….

이번 생태·역사기행 일행도 궁금해하기는 마찬가지다. 도대체 누가 언제 왜 무엇을 위해 이렇게 천불천탑을 조성했을까? 도대체 여기 있는 부처들은 과연 무슨 뜻을 품고 있을까? 아슬아슬하게 느껴질 정도로 날카롭게 솟은 이 돌탑을 옛사람들은 무슨 바람으로 만들었을까?

이런 궁금증은 오래가지 않는다. 아무리 궁리해도 풀 수 없는 수수께끼라서 그렇기도 하겠다. 하지만 이보다는 더 부처들 돌탑들 둘러싼 시원하고 예사롭지 않은 풍경에 금세 마음이 빼앗기기 때문이 더 크다 하겠다. 사람들은 여기저기 언덕배기에 올라 둘레 경치를 눈에 담고 마주오는 바람을 받으며 소리를 내지른다. 나이 지긋한 이들은 다른 데는 오르지도 않은 채 "운주사 왔으면 와불 친견은 해야지!" 하면서 방향을 틀었고, 맞은편 야트막한 산마루에까지 오른 이들도 와불 거꾸로 누워 있는 자리까지 다시 오르느라 발길을 서둘렀다. 와불 자리에 올랐더니 둘러싼 소나무들이 듬성듬성 만든 그늘이 좋았고 그런 사이로 보이지 않는 바람이 빠르게 휘돌아나갔다. 옛날 와불을 조성하던 석공들도 이런 바람을 쐬었으리라.

전통 격식을 벗어난 운주사 불탑.

운주사 천불천탑은 화순이 아니면 만들어지기 어려웠을는지도 모른다. 여기 일대는 흙으로 된 토산이 대부분인 전남 다른 지역과 다르게 산 자체가 통째로 석산이라 탑·상을 만드는 재료를 가까이에서 손쉽게 얻을 수 있었다. 게다가 단단한 화강암이 아니라 화산활동으로 생긴 화성암이어서 무르고 잘 부스러지는 점도 탑상의 손쉬운 조성에 보탬이 됐겠다. 화강암이면 깎고 쪼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솜씨도 좋아야 했겠지만, 무른 화성암이라 솜씨가 덜한 사람도 빠른 시간에 이렇게 넉넉하게 많이 만들 수 있었지 않았을까.

가까운 밥집에서 청국장 점심을 바삐 먹고는 이웃 고을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을 찾았다. 아스팔트 바닥을 들어내고 사람이 걸어서만 다닐 수 있도록 만든 거리다. 자전거도 허용이 되지 않는다. 숲을 제대로 가꾸면 그 숲이 인간에게 얼마나 많이 베풀어 주는지 알려주는 훌륭한 본보기다. 1970년대, 여기는 국도였고 사람들은 이 가로를 따라 메타세쿼이아를 심었다. 30년 뒤 울창해지면 거기서 무엇이 생기리라 기대 따위는 물론 없었다. 그런데 그 숲이 2000년대 들어 아름다움과 즐거움으로 알려지면서 빼어난 관광 상품이 되고 말았다. 여기 1.8km 정도를 흙길로 만들고 굴다리 갤러리와 여기저기 긴의자 따위를 덧입혀 입장료 2000원이 아깝지 않도록 만든 것이다.

전라남도 담양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메타세쿼이아가로수길은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관방제림으로 이어진다. 조선 말기 담양 고을 수령들 지도 아래 영산강 제방 위에다 나무들을 심어 이룩한 숲이다. 모두 잎넓은나무들이라 잎이 가느다란 메타세쿼이아보다 그늘이 훨씬 짙다. 햇살이 쏟아지는 바깥은 눈부시게 환하지만 안쪽 그늘은 어둑어둑할 정도로 아늑하다. 메타세쿼이어가로수길과 더불어 '잘 키운 숲 하나 열 공장 안 부럽다'는 사실을 아주 잘 느끼게 해준다.

관방제림이 메타세쿼이아가로수길과 모두 같지는 않고 다른 것도 있다. 메타세쿼이아가로수길은 자전거가 다닐 수 없도록 돼 있지만 관방제림에서는 자전거나 수레가 다닐 수 있다. 2인용 자전거도 탈 수 있고 4인용 자전거나 수레도 빌려준다. 사람들은 둑길을 따라 이런 것들을 타고 즐겁게 노닌다. 그러니까 메타세쿼이아가로수길보다 좀더 활동적이라 할 수 있겠다. 관방제림에는 지역주민들의 일상이 들어 있다는 것도 다른 점이다. 메타세쿼이아가로수길과 달리 관방제림은 옆에 마을도 있고 주민들 삶도 그대로 나와 앉아 있다. 관광객을 위해 만든 별난 의자도 있지만 동네 사람들이 예로부터 써 왔던 평상도 있다. 그늘에서는 걸어다니거나 2인용·4인용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관광객도 있지만 부채 하나 들고 뒷짐 진 채 길을 가는 동네 할배도 있고 오토바이 타고 가다 평상에 몸을 부린 젊은 아재도 있다. 관광객들 웃음소리도 넘치지만 동네 주민들 바둑돌·장기알 두드리는 소리, 고스톱 화투짝 던지는 소리도 있다.

전남 담양 관방제림의 일상 풍경.

이렇게 다함께 어우러지는 가운데 그 옆으로는 영산강 게으른 물이 멈춰 선 듯이 천천히 흐르고…. 관방제림 끝나는 길 건너편 국수거리에서는 면발 탱글한 국수 한 그릇 잘 삶은 달걀 한 알 텁텁한 막걸리 한 사발에 즐거워진 웃음들이 흐르고….

※2015 경남도민 생태·역사기행은 경상남도람사르환경재단에서 지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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