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후의 사심가득 인터뷰] (6) 드로잉 아티스트 신가람

그동안 인터뷰를 거부하던 녀석이 웬일로 자청해서 인터뷰를 하잔다. 신가람. 녀석을 처음 알게 된 건 인디밴드 '엉클밥'의 기타리스트로서다. 실력이 꽤 좋았다. 경남에 괜찮은 기타리스트가 하나 있구나 생각했다. 알고 보니 이 녀석 하는 일이 한둘이 아녔다. 제법 유명한 음식 블로거인 데다, 캐릭터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이기도 했다. 참 재주가 많은 놈이구나 싶었다. 그런데 그런 녀석이 요즘에는 '리틀포니'란 제목의 그림책을 만드는 일에만 푹 빠져 산다. 최근 이런저런 고민이 많더니, 드디어 자기 길을 찾은 것 같기도 하다. 7월 중순 어느 날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예술촌에 있는 조그만 카페에서 녀석을 만났다. 가람이는 그림책에 들어갈 글을 쓰다가 왔다고 했다.

- 그림책은 다 돼가나.

"콘셉트는 대부분 정리됐고요, 그걸 바탕으로 안에 들어갈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있어요."

- 근데 니 경남대 미술교육과 다니다가 그만뒀다며? 왜?

"아니 디자인과요. 미술교육과는 못 가고 성적 따라 디자인과에 갔죠. 저는 순수미술을 하고 싶었는데 전혀 내가 생각했던 곳이 아니었어요. 내가 하고 싶은 걸 가르치는 곳이 아니었던 거죠. 그리고 선후배 관계 같은 거 있잖아요. 그런 걸 못하겠더라고. 서열 같은 거. 그래서 어머니한테 얘기했어요. 내 성격에 학교 못 다니겠다고. 적응을 못 하겠다고. 어머니가 듣고는 우셨어요. 니는 왜 다른 애들처럼 그렇게 못 되냐시며."

▲ 신가람 작가./강대중

- 아이고, 어머니도 마음 아프셨겠다. 그러고 나서는 뭐했는데?

"만화가를 했어요. 음악 만화였는데, 정확하게는 밴드 만화죠. 파란닷컴이라고 알아요? (파란닷컴은 2004년 7월부터 2012년 7월까지 케이티하이텔이 서비스한 꽤 유명했던 포털사이트다.) 거기다 한 1년 연재를 했어요. 펑크 음악 같은 센 건 좋아해서 만화도 그렇게 센 스타일로 그렸죠. 지금은 제가 그리고 싶은 일러스트를 그리죠. 그래도 어릴 적부터 계속 만화를 그려서 제 그림에 만화 같은 게 녹아 있는 게 있는 거 같아요."

- 그림은 언제부터 그렸노.

"아주 어릴 때부터 만화를 그렸어요. 어릴 때 가난해서 이사를 자주 다녔어요. 친구가 없으니까 집에서 혼자 그림 그리고 놀았던 거죠. 혼자 노는 게 안쓰러웠던지 주변에서 계속 잘 그린다, 잘 그린다고 격려도 하고, 그러다 보니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게 당연한 것처럼 돼버렸어요. 밥 먹는 거처럼. 나중에 실망도 많이 했죠. 나 이렇게 재능이 없는데 왜 계속 이걸 해야 하지 하면서."

- 그럼 음악은?

"지금 같이 밴드(엉클밥)하고 있는 형들(노순천, 박정훈)이 고등학교 한 해 선배인데, 형들은 그때 이미 음악을 하고 있었고요. 형들한테 기타를 배웠어요. 그러다가 2010년에 형들이 밴드 한번 해보자 해서 같이 시작한 게 지금까지 왔죠. 그림하고 음악하고 좀 달라요. 그 당시에 내가 하는 그림은 상업적이었지만, 음악은 완전히 순수한 거예요. 저는 음악으로 순수예술을 했던 거 같아요."

- 니야말로 정말 자유로운 영혼 같다.

"그렇지 않아요. 저는 많이 얽매여 살아요."

- 어디에 얽매여 사는데?

"제가 만화가가 되고 나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아버지의 보수적인 성향이 저한테 남아 있는 거 같아요. 반듯하게 살고 그런 건 아닌데 좀 가부장적이랄까 하는 부분이 약간 남아 있는 것 같고요. 공부 안 해도 돼, 착하게만 살아 하고 엄마가 항상 그러셨는데, 집에서, 엄마 품에서 그림만 그리고 놀아서 그런지 겁이 많아요. 지금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데, 어머니가 정말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그래서 함부로 어머니한테서 못 벗어나겠더라고요. 어머니 인생은 어머니 인생이고 내 인생은 내 인생인 거다 하고 벗어나고 싶은데, 어머니를 내가 아니면 누가 모시노 이런 생각도 들고, 야망이 있거나 큰 꿈이 있으면 다 버리고 확 떠날 수도 있는데 그걸 못하는 거죠. 가끔 떠날 용기가 나긴 하는데 평소에는 거의 없다고 봐야죠. 밴드 하는 것 자체도 나한텐 진짜 과감한 일이었어요."

- 가만 보니 니는 딱 아티스트가 맞네.

"사실 주변에 작가들 보면서 자기 색깔이 있는지, 자기 세계가 있는지를 먼저 보거든요. 자기 세계가 없거나 쓸데없으면 저 사람은 아직 깊이가 없구나 하고 생각하거든요. 어느 날 아침에 그냥 멍하니 누워 있다가 옆에 있는 책장을 봤는데, 무라카미 하루키 책이 보였어요. 바로 뽑아들고 아무 곳이나 펼쳤는데, 그 페이지에 딱 제가 생각하는 것을 정리한 글이 있더라고요. 작가의 작품을 정의 내린다는 건 옳지 않다, 뭐 이런 내용이었어요. 그때 깨달았어요. 이거다! 내 식으로 말하면 이런 거예요. 자연스럽게 섞일 수 있는 것이랄까. 이 사람 생각하면 이 사람에게도 어울리고, 저 사람 생각해보면 저 사람에게도 맞고. 그걸 음악으로 표현하면 겸손한 음악이에요. 슬픈 사람이 들으면 슬프게 들리고 기쁜 사람이 들으면 기쁘게 들리고 그런 거죠. 하루키 문장을 보면서 그래 내 작품에는 이런 게 빠져 있어, 싶더라고요. 그래 이런 작품을 하자! 지금은 이런 식으로 저만의 어떤 것을 찾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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