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어 결혼 못한다' 이들에겐 먼 나라 얘기…사회운동모임에서 첫만남, 갑작스러운 청혼과 결혼

거창군 마리면에 사는 윤동영(43)·최외순(38) 부부는 아이 셋을 두고 있다. '가족인형세트'라는 말이 자연스러울 정도로 누가 봐도 한가족임을 알 수 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다. 2003년, 사회운동하는 도내 사람들이 진주에서 모이는 자리였다.

"두 사람 너무 닮았다. 미혼 남녀인데 잘해 봐."

동영 씨는 이 말이 싫지 않았다. 반대로 외순 씨는 그런 분위기가 거북했다. 가뜩이나 심신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어렵게 참석한 자리였다. 외순 씨는 예정보다 빨리 모임을 접고 집으로 돌아갔다.

동영 씨는 수확이 있었다. 퉁명스럽게 대하던 외순 씨 전화번호를 '딴' 것이다. 안타깝게도 잘못 받아적은 전화번호라 무용지물이었다. 동영 씨는 다른 방안을 찾았다. 함께 가입해 있던 인터넷카페에서 외순 씨 메일 주소를 찾아 글을 썼다.

외순 씨는 부담스러운 마음에 연락 안 했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그렇다고 그냥 물러날 동영 씨가 아니었다. 지인에게 연락처를 물어 전화를 걸었다.

윤동영(맨 왼쪽)·최외순 부부와 세 자녀.

"누가 어떻게 하재요? 좋은 선후배로 지내자고요."

이 말을 들은 외순 씨는 속으로 '내가 좀 오버했구나'라고 생각했다. 물론 결코 오버한 게 아니라는 걸 나중에 알게 된다.

전화 이후 둘은 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러다 다시 만난 자리에서 서로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영 씨 어머니는 건강이 좋지 않았다. 친정어머니가 오랜 시간 투병했기에 외순 씨는 동병상련을 느꼈다. 진지하고, 늘 자신감 넘쳐 보이는 동영 씨가 꽤 괜찮게 다가오기도 했다. 딱 거기까지였다. 이성적인 감정으로 넘어가지는 않았다.

동영 씨는 거창에서 공익근무를 하면서 주유소 일도 겸했다. 어느 날이었다. 외순 씨는 동영 씨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속 목소리는 다 죽어가는 목소리였다.

"기름 차를 몰았는데 뒤집히는 사고를 당했어."

외순 씨는 모른 척 할 수 없었다. 직접 차를 몰고 창원서 거창 병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불쌍한 마음이 들었다. 외순 씨가 병실을 나서자 동영 씨가 다리를 절뚝거리며 따라 나왔다. 대뜸 이렇게 말했다.

"우리 결혼하자."

이제 겨우 2∼3번가량 얼굴 봤을 때였다. 외순 씨는 어이가 없어 그냥 웃고만 말았다.

그래도 큰 전환점이 된 건 분명했다. 이전과 다른 관계로 두 사람은 만남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좀 더 지난 후 동영 씨가 또 한 번 '훅' 들어왔다.

"아버지가 결혼 날짜를 잡으셨대."

그때가 4월 중순이었는데 결혼 날짜는 5월 15일이었다. 물론 외순 씨도 '이 사람과 결혼해야겠다'는 마음은 진작에 있었다. 당장은 아니었고, 이렇게 갑자기는 아니었을 뿐이다.

외순 씨는 "가을 즈음 하자"고 했지만, 동영 씨는 "아버지가 농사일 때문에 그때는 안 된대"라고 했다.

둘은 그렇게 아무 준비도 없이, 심지어 반지도 맞추지 않은 채 일사천리로 결혼식을 올렸다.

애초부터 동영 씨는 고향 거창에 정착하기로 했다. 외순 씨 또한 농촌에서 살고픈 마음이었다. 그런 부분에서 두 사람은 잘 맞았다. 경제적 여유가 없어 거창 빈집을 고쳐 신혼살림을 꾸렸다. 농가 부채 문제로 어려운 살림을 이어갔지만, 둘 마음은 꿋꿋했다.

결혼 10년이 넘은 지금, 경제적으로 여전히 넉넉하지는 않다. 처음에 비하면 많은 것을 이루었고, 또 계속 그러하고 있다. '돈 없어 결혼 못 한다'는 말이 둘에게는 낯설게 느껴진다.

'붕어빵 가족'은 그렇게 소소한 농촌 삶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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