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교사 퇴직한 뒤 동생이 권유한 아르바이트 두려웠지만 "까짓, 해보자"…체력보다 힘든 무시·하대 긍정적 마음으로 극복

마흔아홉 살 임정미 씨는 9년 차 베테랑 여성 택배기사다.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기에 택배기사 하면 으레 남성일 거라고 예상한다. 하지만 임 씨는 사람들 예상을 깨고 과감히 택배기사로 활동하고 있다. 물론 쉽지 않았다. 육체적으로 힘든 것은 이겨낼 만했지만 택배기사를 무시하거나 하대하는 고객 태도는 임 씨를 더 지치게 했다. 그래도 이겨냈다. 긍정적인 생각과 환한 미소로 말이다.

임 씨는 현대택배 창원북구대리점에서 일한다. 이전에는 유치원 교사로 일했다.

"일을 그만두고 쉬고 있는데 한 날 남동생이 '누나, 알바할 생각 없냐'면서 택배기사를 권했습니다. 힘들고 남성들만 하는 직업이라 내가 할 수 있을까, 며칠을 못 견디고 백기를 들 것으로 생각했죠. 결국 까짓것 한번 해보자고 받아들였습니다."

말로만 듣던 택배기사, 실제로도 힘들고 험한 일이었다. 시간과의 싸움이며 고객 응대가 관건이었다.

거치적거리는 긴 머리는 커트로 짧게 잘랐다. 뾰족구두는 운동화로, 블라우스와 치마는 티셔츠와 바지로. 여성으로서 누릴 수 있는 건 포기했다. 행동과 말투도 과격해졌다.

"험한 세계더라고요.(웃음) 화장실 가는 시간을 빼고는 종일 배달을 하고 전화를 겁니다. 점심은 거르거나 대충 먹어요. 택배기사에게 반말이나 욕을 하고 함부로 대하는 고객도 많아요. 내가 왜 이런 소리까지 들어가면서 일을 해야 하나…. 자괴감에 빠진 적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야! 택배!', '갖다놔라', '자손대대로 택배나 해라'. 심지어 욕도 한다.

9년 차 택배기사인 임정미 씨. 그는 육체적인 고통보다 택배기사를 무시하거나 하대하는 고객의 태도 때문에 힘들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임 씨는 긍정적인 생각과 환한 미소로 훌훌 털어버린다. 오늘도 크게 기지개를 펴고 택배 일을 시작한다. /김민지 기자

좋은 고객도 있다. 고생한다며 시원한 물 한 잔을 내밀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기도 한다.

임 씨는 창원시 성산구 반림동 럭키, 트리비앙 아파트 구역을 맡고 있다. 매일 오전 8시 의창구 팔룡동 물류센터로 출근해서 택배물건을 챙긴다. 그다음은 그가 소속된 현대택배 창원북구대리점으로 가 구역별로 택배물건을 분류하고 송장정리를 한다. 하루 배달 건수는 150건 정도. 일주일 가운데 제일 바쁜 화요일은 200건 정도다. 남자 택배기사는 임 씨보다 보통 100건 정도 더 많다. 휴일은 일요일이며, 월요일은 오전 근무만 한다.

"저는 그나마 아파트 단지 위주라서 다른 택배기사들보다 수월하게 일하는 편입니다. 제가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는 여성 택배기사가 드물었기 때문에 신기하게 쳐다보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고객님. 택배왔습니다'라고 말하면 여자 목소리니까 문을 안 열어주는 사람도 있었고 경비아저씨가 '60평생 살면서 여자 택배기사는 처음 본다'며 신기해했습니다. 택배기사를 위장해 이뤄지는 범죄가 종종 있다 보니 지금은 오히려 여성 택배기사를 좋아합니다." 택배기사를 해보고 싶다며 문의를 하는 여성도 늘었다.

택배기사는 사계절 가운데 여름이 가장 힘든 시기다. 연일 불볕더위가 이어져 육체적으로 힘들고 찬물을 자주 먹다 보니 배탈이나 설사에 시달린다. 다들 가는 여름휴가는 꿈도 못 꾼다. 그래도 임 씨는 택배기사로서 행복하다.

"택배기사를 하겠다고 했을 때 친정어머니가 많이 울었습니다. 지금도 비가 오거나 바람이 세차게 불 때면 조심하라면서 전화하십니다. 항상 고맙게 생각하죠.(웃음)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는 택배기사로 계속 일하고 싶습니다. 내가 한 만큼 돈도 벌 수 있고 월급도 괜찮고요. 물론 힘들 때도 있죠. 그땐 툭툭 털어버리고 크게 기지개를 켜고 힘을 냅니다."

임 씨의 동생이자 현대택배 창원북구대리점 부장인 임정철 씨는 "처음엔 다들 누나가 얼마 버티지 못하고 그만둘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마음을 안 여는 사람도 있었어요. 지금은 다들 누나, 이모라고 부르며 잘 따릅니다. 남자 못지않게 일을 해내고요"라며 자랑스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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