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회서 맺어진 연인, 대화 나누다 '어릴 적 옆집사람' 알게 돼

창원시 진해구에 사는 장기수(40)·정은실(43) 부부가 주말 나들이에 나섰다. 5살 된 쌍둥이 두 딸과 함께다. 부부는 맞벌이를 한다. 특히 남편 장기수 씨는 토요일에도 근무한다. 이 때문에 일요일만큼은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내려 노력한다.

오늘은 바다 펼쳐진 진해루를 찾았다. 이곳에서 잠시 옛 시간을 꺼내본다.

둘은 산악회에서 만나 연애를 시작했다. 좀 지나서는 보통 인연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세상 좁다는 말을 실감했습니다. 이야기 나누다 보니 어릴 때 진해 여좌동 한동네에 살았더라고요. 양쪽 어른들은 아주 잘 아는 사이였고요. 처가 쪽은 사진관을 했고, 저희 집은 바로 옆에서 장사했습니다. 어른들은 오래전부터 계를 만들어 어울리는 관계였습니다. 어른들은 서로의 자식들 얼굴도 잘 알고 있었지요."

둘은 장난기가 발동했다. 나중에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기 위해, 이 사실을 양쪽 어른들께 알리지 않았다.

기수 씨가 은실 씨 집을 처음 찾았다. 은실 씨네 어른들이 기수 씨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너 ○○집 아들 아니냐"라고 했다. 어릴 적 얼굴을 어렵지 않게 알아본 것이다. 마찬가지로 기수 씨 부모님도 단번에 "은실이네"라고 했다.

장기수·정은실 부부와 다섯 살 쌍둥이 자매. /남석형 기자

상견례 자리에서 양쪽 어른들은 "이런 인연이 있나"라며 매우 기뻐했다. 결혼까지 걸림돌이 있을 리 없었다. 사실 양쪽 집안이 사이좋은 이웃이었기에망정이지, 그 반대였다면 두 사람은 어떻게 됐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또 한 가지 다행인 점이 있다.

"어릴 때 아이들끼리는 마주친 적이 없어요. 그랬던 게 다행이죠. 아내가 저보다 3살 연상인데요, 그때부터 알았다면 산악회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 '누나·동생'으로만 그쳤겠죠. 그러니 사람 일이라는 게 참 재미있는 것 같아요."

어른들은 지금도 딱딱한 사돈 아닌, 오랜 정을 나눈 이웃사촌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직업군인이었던 기수 씨 아버지, 특공대를 나온 은실 씨 아버지는 격의 없이 만나 소주잔을 기울인다. 얼마 전에는 영화 <연평해전>도 함께 봤다고 한다.

부부는 결혼생활을 하면서 입맛 때문에 묘한 신경전을 펼친다. 남편은 말 그대로 된장·김치찌개 같은 '한국식', 아내는 스테이크 등 '서양식'을 선호하는 편이다. 연애 때는 별문제 없었다. 데이트 때 서로를 배려하며 번갈아 먹으면 됐다. 결혼 후 불리해진 쪽은 기수 씨다.

"아내가 자기 위주로 밥상을 차리니까요"라는 볼멘소리가 따라붙는다. 물론 말하고 난 후 떨어져 있는 아내 눈치를 살짝 본다.

쌍둥이 딸을 보던 기수 씨는 이런 에피소드도 전했다. 신생아가 혼자 분유를 먹는 일명 '셀프 수유' 관련 이야기다.

"의도하지 않게 방송을 탔습니다. 세상에 태어난 저희 아기들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개인 홈페이지에 올렸습니다. 그 속에 산후조리원 '셀프 수유' 모습이 담겨 있었던 거죠. 하루는 우연히 TV를 보는데 관련 내용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모자이크·음성처리는 됐지만 자세히 보니 저와 우리 아기들이었어요. 제가 올린 동영상을 방송국에서 무단으로 사용한 거죠. 이후 방송국에서 미안하다는 사과를 받고 그랬던 기억이 있습니다."

부부는 산악회에서 연을 맺었지만 결혼 후부터는 활동하지 않는다. 산 찾을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가족은 산 대신 진해루 바닷바람을 맞으며 또 하나의 추억을 쌓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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