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년 기억 문화제 열려…'밀양 할매 할배'도 참석

'끌려나온 할매들은 "이렇게는 살 수 없다"며 오열했다. 할매들을 지키겠다며 함께했던 수녀들도 사지가 들리고 두건이 벗겨지는 수모를 당했다. 한 수녀는 "이게 어떻게 대한민국이야"라며 울음을 터뜨렸다. 새벽 6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진행된 밀양 송전탑 강제철거 현장은 통곡으로 가득했다. 밀양시는 경찰을 앞세워 부북면 화악산 임도 입구 장동마을, 부북면 평밭마을(129번)과 위양마을(127번), 상동면 고답마을(115번), 단장면 용회마을(101번) 등 5곳 송전탑 반대 농성장을 차례대로 뜯어냈다.'

전력공급 독점기업 한국전력의 공사 진행을 위해 행정기관이 사전 작업을 대신해 준다 하여 붙여진 '행정대집행'이 밀양 765㎸송전탑 건설현장에서 이뤄졌던 지난해 6월 11일 현장을 취재한 <경남도민일보> 기사다.

밀양 송전탑 행정대집행 1주년 '기억' 문화제가 열린 18일 오후 밀양시 부북면과 상동면·단장면 일대에는 그날 참상을 기억하자는 주민과 서울·수원·강릉·춘천·영덕에서, 대구·청도·부산·창원에서 온 전국의 연대자 600여 명이 다시 모였다. 메르스 사태로 행사가 한 달 넘게 늦어졌다.

"기억하기도 싫다." "치가 떨린다."

다들 그렇게 말하고 고개부터 절레절레 돌렸지만 모인 이들 표정이 싫지 않았다.

밀양 송전탑 행정대집행 1주년 기억 문화제가 주민·연대자 6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18일 밀양역 광장에서 열리고 있다. /이일균 기자

원자력발전소 신고리 3호기에서 시작돼 창녕군 북경남변전소까지 연결되는 송전탑 중 밀양구간 69기가 그 사이 완공되고, 2005년 이후 10년을 넘긴 긴 싸움에 마을마다 주민들이 찬반으로 갈려 앙금 속에 살고 있지만 이들 표정엔 뭔가 긍지가 있다.

"고리 1호기 인자 없애기로 했다 아이가. 우리도 힘을 보탠 거지 하하하. 고리 1호기가 빠졌으니 이 송전탑이 필요 없다는 거 드러난 거 아이가."

부북면 평밭마을 주민 이남우(73) 씨 얼굴은 밝았다.

"(경북)영덕에다 또 원전을 짓는답니다. 이젠 안 됩니다. 우리가 밀양을 보고 배운 게 있는데. 주민투표 갑니다. 반드시 갑니다."

영덕 주민 박혜령 씨는 이날 '밀양 할매 할배들' 만나고 결기가 더 세졌다. '밀양 할매 할배들'은 이제 송전탑 막는 투사로 고유명사처럼 됐다.

"한 걸음에 달려왔어요. 힘없는 사람들 뭉쳐야죠. 그래야 쓰러지지 않잖아요. 끝까지 같이할 거예요. 벌써 몇 년 됐는데요. 뭐."

서울 용산참사대책위 전재순 씨는 1년에 한두 번씩은 밀양에 꼭 온다고 했다.

전국에서만 모인 게 아니다. 미국 서부 워싱턴주 출신 청년 세스 마틴 씨는 자신의 주 무기인 전통악기 '벤조' 연주로 밀양 주민과 연대했다.

"워싱턴주도 전력 사정이 밀양과 비슷해요. 핵발전을 하자는 사람들과 태양력,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로 대체하자는 사람들 간에 파워싸움을 하죠. 저는 미국 악기인 벤조로 전통음악을 연주하면서 평화와 환경에 이바지했으면 해서 왔어요."

이날 문화제 무대에 선 '밀양 할매들'. /이일균 기자

오후 3시 부북면·상동면·단장면 송전탑 현장 방문, 7시 밀양역 광장 문화제로 나누어진 행사 절정에 '밀양 할매 할배들'이 나타났다. 평밭마을 한옥순, 위양리 정임출, 여수마을 김영자, 용회마을 구미연, 청도서 온 이은주 할매다.

"그날은 죽어도 몬 잊습미더. 모르지예. 저걸(송전탑을) 다 뽑아내면 잊을랑가. 여러분들 보니까 또 힘이 나네예. 그래예 해보입시더. 뽑아내 보입시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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