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기도 하지만 때로는 사람을 죽이거나 살리기도 하는 무서운 힘을 발휘하는 것이 말이기도 하다. 지난 15일 도의회 도정질문에 답한 홍준표 지사의 말 한마디는 아마 그같은 실례를 경험케 해주는 본보기로서 부족함이 없다고 할것이다. 홍 지사는 학교 무상급식과 관련하여 정상화를 위한 대책을 묻는 의원 질문에 이렇게 말한다. '무상급식은 도교육청 사무이니 선별급식이든, 보편급식이든 상관치 않겠다.' 이 말만 잘라내서 곧이곧대로 들으면 무상급식은 교육자치에 해당하므로 형태가 어떻든 그 결정 권한은 도교육청 소관임을 명백히 한 것이다. 또한 교육자치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무상급식에 관한한 홍 지사의 트레이드마크가 선별론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보편론을 좌파의 이념으로 규정하고 공세의 수위를 높였으며 감사문제를 빌미삼아 하루아침에 지원예산을 끊음으로써 지난 4월부터 전국에서 유일하게 경남의 학부모들만 자녀들의 점심급식에 돈을 지불한다. 그렇게 만든 그가 갑자기 포괄적 급식론으로 말을 바꿨으니 도교육청이 반색을 할 만하다.

같은 자리에 있던 박종훈 교육감은 '선별이냐 보편이냐를 두고 지사께서 크게 양보해줘서 고맙다'며 점잖게 화답한다. 만일 박 교육감이 진심에서 우러나 그말을 했다면 너무 순진한 탓일 터이지만 설마 홍 지사 말의 행간을 눈치 못챘을 리야 있겠는가. 교육청에 주는 예산의 상한선을 40%로 하겠다는 홍 지사의 배수진은 그 지원 예산으로는 교육청이 지향하고 있는 조건없는 전체 무상급식은 도저히 실현불가능한 작은 돈에 불과하다는 것을 시사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치로 따지자면 박 교육감은 그 같은 말의 허구성을 문제삼아야 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전문 정치인은 아니지만 경남의 정치적 환경이 도교육청에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때문에 서민자녀 교육지원 및 분란의 발단이 된 급식 관련 감사 조례 제정을 준비하고있는 도의회 석상에서 다시 한 차례 논쟁의 단초를 제공하는 것을 피하고싶어 했을지 알 수 없다. 이해 못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재확인된 것에 지나지 않지만 검찰 기소와 주민소환 사태를 만난 후 소통 도정을 전면에 내세운 홍 지사가 막상 최대 관건이자 가장 먼저 해결해야할 무상급식 문제는 여전히 철갑옷으로 무장한 채 조금도 자세를 낮출 의사가 없다는 점이다. 말로써 천 냥 빚을 갚을 요량이라면 아니함만 못하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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