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공익광고도 서울지에 12억 원·지역지 0원…

이번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에서 드러난 정부의 민얼굴 중 하나는 지역언론 홀대다. 과격하게 말해, 박근혜 정부의 언론관은 그야말로 '서울만 있고 지역은 없다'로 귀결된다. 지역 언론사들은 그 단적인 예로 정부가 얼마 전에 집행한 메르스 관련 광고를 든다.

지난달 말 새정치민주연합 배재정 의원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달 국민안전처, 보건복지부와 공동으로 두 차례에 걸쳐 진행한 메르스 정부 광고 집행 내용을 공개했다. 1면 하단에 배치하는 가로 37㎝짜리 5단 광고로, 모든 신문에 같은 내용을 동시에 싣는 '원턴(One turn)' 방식이었다. 지난달 10, 11일에 나간 1차 광고는 '메르스 함께 이겨낼 수 있습니다'라는 제목이었고, 19일에 실린 2차 광고는 '메르스, 최고의 백신은 함께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라는 제목이었다. 국민 모두를 대상으로 한 공익 광고였다.

조선, 중앙, 동아, 한겨레, 경향 등 전국단위 종합일간지를 포함해 대다수 경제지, 심지어 스포츠지까지 서울에 본사를 둔 대부분 신문에 이 광고가 실렸다. 배 의원 자료를 보면 34개 신문에 실린 1차 광고에는 6억 4500여만 원이 집행됐고, 30개 신문에 실린 2차 광고에는 모두 5억 8500여만 원을 들였다. 1개 신문사당 평균 3618만 원을 받은 것으로 계산된다. 특히 조선·중앙·동아일보에 준 광고비는 회당 각각 4680여만 원이다.

"메르스 확산은 전국적이었다. 하지만 지역 언론에는 광고 배정이 없었다." 배재정 의원실에서 정부에 메르스 광고 집행 내역을 요청해 이를 공개한 이유다.

하지만 배 의원이 공개한 내용 중 정작 세간의 시선을 끈 것은 지역 언론이 아니라 국민일보가 1차 광고 집행 때 명단에 들었다가 2차에 빠진 사실이었다. 이를 두고 언론들은 정부가 광고를 통해 언론 길들이기를 한다며 비판 기사를 쏟아냈다. 가만히 지켜보면 지역 언론은 이런 '길들이기'의 대상조차 되지 못한 것이다.

사실 지난달 10, 11일 집행한 1차 메르스 광고는 지역 언론에도 실렸다. 하지만 서울 지역과는 광고주가 달랐다. 서울 지역 광고는 광고주가 문체부, 국민안전처, 보건복지부 등 메르스와 관련한 정부 부처라면 지역 신문 광고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이었다. 게다가 기존에 하던 정기 광고를 급히 전용해 한 것이었다. 언론재단은 매년 10회 정도 정기적으로 지역 언론에 공익 캠페인 광고를 집행하는데 이것을 끌어다 썼다. 광고 단가도 1개 신문사당 평균 250여만 원으로 서울 지역과는 10배 정도 차이가 난다. 언론재단 관계자는 "상부기관인 문체부에서 지시가 내려와 이런 식으로 광고를 집행했다"고 밝혔다.

1차 광고는 이렇게 생색이라도 냈지만, 지난달 19일 집행한 2차 광고는 오로지 서울 지역 언론에만 광고가 집중됐다. 여기에 정부가 지난달 10일에서 20일까지 진행한 '온라인매체 메르스 광고'는 더 궁색하다. 배 의원실 자료를 보면 매일경제, 한국경제, 머니투데이, 한국스포츠경제, 데일리안, 뉴데일리, 미디어펜, 뉴스파인드, 더팩트 9곳에만 4500만 원 정도를 들여 메르스 광고를 집행했다.

메르스 광고가 서울 지역에 집중된 것을 두고 문체부 관계자는 지난 13일 전화 통화에서 "갑작스럽게 생긴 일이라 어쩔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메르스처럼 느닷없이 사안이 발생하면 관련 부처에서 급히 예산을 그러모아야 한다"며 "이번에도 문체부, 국민안전처, 보건복지부가 광고비를 나눠서 부담했는데 돈도 부족하고 빨리 알리기도 해야 해서 서울 지역 전국단위 종합일간지를 중심으로 광고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역 신문들이 불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이해한다"며 "하지만 지역을 일부러 차별하고 그런 게 아니라는 것도 이해해달라"고 덧붙였다.

이번 메르스 관련 정부 광고가 아니라도 박근혜 정부가 지역 언론에 관심이 없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는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역대 정부가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던 지역 언론사 대표 초청 간담회 같은 행사를 이번 정부에서는 집권 중반이 되도록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전국지방신문협의회 김종석 회장(강원도민일보 사장)은 지난 7일 전화 통화에서 "서울 지역 언론들은 몇 차례 면담도 하고 그런 걸로 아는데, 이번 정부는 임기 반이 지나도 지역 언론하고는 전혀 그런 자리를 마련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대통령을 만나고 안 만나고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 자체가 지역 언론을 존중한다는 상징적인 측면이 있다"며 "이번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지역 언론에 관심도, 정책 지원 의지도 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또 이번 메르스 광고 집행과 관련해서도 "정부 광고 집행이 서울 중심인 게 이번만은 아니라고 판단해 협회 차원에서 문체부와 청와대에 항의 공문을 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실제 배재정 의원이 지난 2월 공개한 지난 4년간 중앙부처 정부광고 집행 현황을 보면 대부분 광고가 서울 지역 언론에 집중됐다. 그나마 지역 언론에 배정한 광고 액수도 매년 줄어들고 있다.

그동안 정부의 지역 신문 홀대를 비판해 왔던 배 의원은 아예 정부 광고법을 개정해 광고 집행에서라도 지역 안배를 하자고 주장한다. 배 의원실 관계자는 "현재 정부 광고 집행 기준이 되는 '정부광고 업무 시행 지침'으로는 지역 배분 같은 사안을 고민할 근거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실제 문체부 관계자도 "지역 언론을 고려하는 기준 같은 것은 없다"며 "광고주(정부 기관)가 의뢰한 대로 집행할 뿐"이라고 말했다. 정부 광고가 광고주 '입맛'에 따라 좌지우지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이 때문에 배 의원은 지난해 7월 정부기관 등의 광고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핵심은 문체부 내에 다양한 인사가 참여하는 '정부광고 홍보매체 다양성위원회'를 두고 심의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법안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고 한다. 배 의원실 관계자는 "공청회를 한 지 1년이 지났는데 아직 논의도 잘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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