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이장님]김해시 동상동 19통 배금자 통장

통장은 대개 행정기관과 지역 주민들 간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최일선 행정 첨병이다. 하지만 행정과 주민 간 가교 역할은 역할대로 하면서도 외국인 노동자들의 국내 정착에 도움을 주는 '인생 멘토'까지 하는 통장이 있다.

김해시 동상동 19통 배금자(57) 통장. 배 통장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일명 '한국엄마'로 통한다.

배 통장은 동상동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57년간 동상동에서만 사는 '동상동 지킴이'다. 통장생활만 만 24년째다. 그 덕에 마을 주민 한 명 한 명의 성품까지 훤히 꿰뚫고 있다. 마을 어른들도 배 통장을 자식이나 동생처럼 대한다. 어릴 때부터 줄곧 살갑게 지켜봐왔기 때문이다. 이런 인간관계로 배 통장은 여느 통장들보다 통장 일을 쉽게 하는 편이다. 통장이 하는 일이라면 마을 어른들이 내일처럼 알아서 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 통장 지역의 적십사 회비 납부율은 항상 최고로 높다.

배 통장은 조그마한 슈퍼를 운영한다. 그가 '한국엄마'라는 별명을 얻은 것도 이 슈퍼 덕분이다. 김해 1번지인 동상동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가장 많은 곳이다. 배 통장이 외국인 노동자들과 첫 인연을 맺은 것은 9년 전이다. 시리아 출신 외국인 노동자인 '알리'가 가게로 물건을 사러 온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19통 동민회관 옆에는 외국인 노동자 숙소가 있었다. 이들은 김해와 마산, 부산 등지 폐차장에서 일을 했다. 당시 가게에 들어온 '알리'는 서툰 한국말로 이것저것 물었다.

배 통장에게는 이런 모습이 참으로 딱해 보였다. 타국에서 적응하기도 어려운데 말까지 안 통하니 얼마나 힘들겠느냐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몇 살인지 물었다. 내가 친아들뻘쯤 된다고 하자 알리가 그 자리에서 바로 '한국엄마'라고 부르겠다며 엄마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 인연으로 9년이 지나도록 지금껏 이들과 질긴 만남의 끈을 이어오고 있다. 알리가 다른 외국인 노동자들이 입국할 때마다 직접 데려고 와서 '한국엄마'라며 소개하기 때문이다.

배 통장은 "이들이 한국에서 적응해가는 모습이 하도 딱해 보여 친아들처럼 따뜻하게 대해 준 것이 마음에 와 닿았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알리는 마산에 사는 친형 가족들까지 소개했다. 이런저런 얽힘의 관계로 배 통장에겐 지금 10명이 넘는 외국인 아들과 며느리 손자까지 생겼다.

2년 전에는 알리가 임신한 아내를 출산 기미가 있다며 집으로 데리고 왔다. 진통이 있어 보여 곧바로 병원으로 데려가 입원시켰다. 비록 얼굴색은 다르지만 임신부에게 출산은 힘들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배 통장은 며느리 격인 알리 아내를 친엄마처럼 대했고, 직접 출산도 도왔다. 출산 후에는 하루에 가게와 병원을 수없이 오가며 외국인 며느리에게 원기보충도 시켰다. 지난해에는 알리 장모가 애를 낳은 딸을 보러 한국에 왔다.

김해시 동상동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다. 슈퍼를 운영하는 배금자 통장은 그들이 아들같이 생각돼 따뜻하게 대했고 이후 외국인 노동자 사이에서 '한국엄마'로 불리게 됐다. 작은 사진은 배 통장이 '외국인 아들들'과 다정하게 사진을 찍는 모습.

배 통장은 "그동안 딸에게 친엄마처럼 보살펴 준 데 대해 어떻게 은혜를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감사 인사를 들을 때는 같은 부모로서 큰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갓 입국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는 시내버스 이용 조력자 역할도 하고 있다. 대부분 한글이 서툴러 숙소까지 가는 데 몇 번 버스를 타야 할지를 몰라 불편해한다는 까닭에서다.

배 통장은 "외국인 자식들을 오랫동안 안 보면 자꾸 보고 싶고, 멀리 있는 애들은 전화가 안 오면 무슨 일이 생겼는지 걱정부터 앞선다"고 했다.

외국인 자식 중에는 반듯하게 출세한 사장도 있다. 돈 버는 데 재주가 있는 몇몇이 폐차장에서 일하면서 부속품을 사서 다시 모국으로 수출하는 중계 무역 사장으로 변신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성공 요인에는 배 통장의 정신적 도움이 크게 작용했다.

배 통장은 "이들이 한국에서 성공한 것은 모두 한국엄마 덕분이라며 앞으로 살아가면서 꼭 은혜를 갚겠다고 말할 때는 가슴이 뿌듯했다"고 말했다.

배 통장은 통장으로서 일도 완벽하게 처리한다. 23명의 통장 중 총무역할을 10년째 맡고 있다. 마을 노인들은 휴대전화나 형광등이 고장 나면 배 통장부터 찾는다. 그럴 때면 친아들(25)을 데리고 가서 곧바로 해결한다. 마을 어른들에게는 이른바 '부려 먹기 좋은 통장'인 셈이다.

배 통장은 "통장 일이 보람도 있을 뿐 아니라 통장을 한 덕택에 남녀노소 누구나 만날 수 있고 시정 소식을 안다는 것만 해도 행복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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