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언제나 도움 주셔서 감사합니다."

문자와 함께 카톡으로 보내온 사진에서 조카 한얼이와 그의 후배 재민이는 통일전망대 앞에서 경남대학교 홍보 플래카드를 들고 늠름하게 서있다. 장마철임에도 조카의 말을 빌리면 '금강산이 바로 바라다보일 만큼' 날씨가 좋아 뒤편으로 펼쳐진 바다와 하늘이 눈 시리게 투명하고 맑다.

출발 전에 한얼이는 자전거로 600㎞를 달려 창원에서 통일전망대까지 가겠다고 의논해 왔다. 더욱이 둘 다 학교 홍보 도우미로 활동하는데 내년이 학교 개교 70주년이 되니 뭔가 뜻 깊은 일을 하고자 이 여행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여행하며 학교를 홍보하고 영상으로 남기겠다는 계획이었다. 나의 첫 마디는 '멋지다 청춘'이었다. 물론 자전거로 그 먼 길을 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라 짐작되었다. 하지만 세상에 대가 없는 성취가 있던가. 고민할 사이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면 통일전망대까지는 그리 멀지만은 않으리라고 격려했다.

출발 후 아이들은 간간이 페이스북과 카톡으로 소식을 알려왔다. 그중에 압권은 여행 초반 에피소드이다. 출발 후 이틀 동안 죽도록 자전거를 달려 부산을 지나 대구쯤 갔나 했는데 다시 창원시 의창구가 나와서 너무나 허무했다는 말에 언니와 나는 눈물이 나도록 웃었다. 낙동강을 따라 조성된 자전거 종주 도로를 따라가다 보니 생겨난 일이다.

야영을 위해 싣고 간 텐트가 무거워 도중에 택배로 부쳐 왔고, 날씨가 너무 더워 밤에서 새벽까지 자전거를 타면서 위험한 순간들도 경험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두 청춘의 패기는 꺾이지 않았다. 2주를 예정으로 떠난 아이들은 예정보다 빠르게 9일여 만에 통일전망대에 도착했다. 열흘 만에 600㎞의 자전거 여행은 끝이 났다.

한얼이는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였다. 하지만 아이가 어릴 당시 경제적 어려움으로 늘 바쁘고 힘들었던 언니와 형부는 조카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고 한얼이는 혹독한 사춘기를 경험했다. 가끔 빗나간 행동을 하기도 했고 부모의 마음을 졸이게도 했다. 대학 진학 후 무리한 운동으로 디스크가 생겨 생활체육이라는 전공을 포기해야 할 때는 고민도 많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다 아이가 더 많이 자라기 위한 성장통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언니의 형편도 많이 나아졌고, 어떤 여건에도 중심만은 잃지 않았던 아이도 차츰 제자리를 찾아 돌아왔다. 제대 후 경영학과로 전과를 한 첫 학기에 조카는 4.5점 만점의 성적표와 자전거 여행 도전과 성공이라는 선물을 우리에게 안겼다. 언니는 힘들고 어렵던 순간에 '모든 것이 때가 있다'는 말에 마음을 기댔다고 한다. 지금은 이르나 때가 차면 모든 것이 추억이 될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그 믿음을 현실화하기 위해 쏟은 죽을 만큼의 노력 그것으로 버텨온 시간이 보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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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얼이는 여행을 정리하는 글에서 '스물다섯 살, 걱정만 앞서기엔 너무나도 아름다워야 할 나이가 아닌가, 오르막을 쉼 없이 넘어왔듯, 계속되는 가뭄에도 희망을 놓지 않는 농부가 있듯 나는 내 앞길에 놓인 모든 난관에서 희망으로 발버둥 칠 것이다'고 적었다. 이 말이 어떤 상황에서 나온 말인지 알기에 나는 그의 희망에 100% 동의한다. 그렇게 발버둥 친 희망으로 청춘이 만들어낼 더 멋진 내일을 설렘으로 기다려 볼 참이다.

/윤은주(수필가, 한국독서교육개발원 전임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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