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봅시다]친권자 아니면 부모도 아닌가요

'친권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이혼 여성이 자녀의 전학을 할 수 없는 관행이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창원시 한 초등학교에 다니는 ㄱ(10) 군은 이달 들어 열흘 넘게 학교에 가지 않고 있다. 전학을 가지 못해서다. ㄱ 군은 지난 2012년 부모가 이혼하고 나서 아버지와 살았다. 그때부터 ㄱ 군은 아버지한테 자주 맞았다. 어머니 ㄴ씨와 만나게 해주지도 않았다. 그러던 중 지난달 학교로 찾아온 어머니를 보자마자 ㄱ 군은 눈물을 터뜨렸다.

아버지와 살기 싫다며 우는 아들을 본 ㄴ씨는 ㄱ 군을 살폈다. 며칠 전에 플라스틱 야구방망이로 맞았다는 아들의 등과 허벅지에 멍자국이 선명했다. ㄴ 씨는 곧바로 ㄱ 군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고, 전 남편을 상대로 친권자변경 소송을 시작했다. 친권행사의 제한·정지도 법원에 신청했다.

/일러스트 서동진 기자 sdj1976@

그런데 ㄱ 군을 데리고 오면서 ㄴ씨는 뜻밖의 문제에 부딪혔다. 아이 학교가 ㄴ씨 집과 멀어 전학을 하려고 했지만 친권과 양육권이 있는 전 남편의 동의 없이는 안 된다는 게 학교 측 설명이었다. ㄱ 군 아버지는 동의하지 않고 있다. 친권자 변경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적어도 몇 개월이 걸릴 텐데 그때까지 ㄱ 군을 학교에 보내지 않을 수도 없고 ㄴ 씨는 답답했다. 혼자 밥벌이를 해야 하는 처지여서 장거리 등하교를 시키기도 어려운데다 학교로 전 남편이 찾아가 ㄱ 군을 데리고 갈지도 걱정이었다.

ㄴ 씨는 ㄱ 군이 다니던 초등학교와 교육청·아동보호기관 등에 수차례 민원을 제기했으나 대답은 한결같았다. 현행 법률상 보호자 동의 없이는 전학 또는 '비밀전학'이 어렵다는 것이다. 가정폭력이 문제 되는 가정은 가해자를 피해 비밀전학 하는 경우가 많다. 주소를 이전하면 전학한 학교를 찾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주소지 이전 없이 비밀전학을 하려는 것이다. ㄴ 씨도 ㄱ 군의 전입신고를 했다가 자신의 주거지가 전 남편에게 드러나 이사를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21조(초등학교의 전학절차) 3항에는 '초등학교장은 학생의 학교생활 부적응 또는 가정사정 등으로 말미암아 학생의 교육환경을 바꾸어 줄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학생의 보호자 1인의 동의를 얻어 교육장에게 당해 학생의 전학을 추천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도 '가정폭력이 발생한 사실이 인정되는 때에는 피해아동의 보호자 1명의 동의를 받아 교육장에게 피해아동의 전학을 추천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문제는 '보호자 1인의 동의'라는 부분이다. 여기서 보호자는 친권자나 법정후견인으로 한정하고 있어 ㄴ 씨는 보호자가 아니라는 게 교육당국의 해석이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ㄱ 군 사정은 안타깝지만 법률상 근거가 없어 교육장 재량으로 전학시킬 수 있는 게 아니다"며 "법률상 맹점이 있지만 법령이 바뀌지 않는 한 전학을 허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교육부 관계자도 "가정폭력에 따른 비밀전학은 소송 결과 무혐의로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지금 상황에서는 법률적으로 문제 될 수 있다"며 "전학하려면 친권자 동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003년 '친권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초등학생 자녀의 전학 요청을 학교 측이 불허한 것은 차별행위라며 친권자 한정 적용 관행 개선을 권고한 바 있다.

이러한 사례가 많아 개선이 필요하다는 권고였고 당시 교육부는 이를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1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 기존 관행이 여전히 개선되지 않은 것이다.

손명숙 변호사는 "가정폭력이나 아동학대가 심각해질 때까지 손 놓고 있어야 하나?"라면서 "법률 근거를 좁게 해석할 게 아니라 가정폭력이 어느 정도 인정되면 아이의 안전과 학습권 등을 우선해 교육당국이 적극적으로 조치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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