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아너소사이어티 아름다운 나눔] (6) 김일석 진주 EXR스포츠센터 대표

경남아너소사이어티 21번째 회원 김일석(54) 대표. 그는 진주에서 헬스장, 사우나, 실내골프장을 함께 운영하는 EXR스포츠센터 대표다. 하지만 좀 과장하자면 그는 진주에서 사회봉사 분야 마당발로 더 유명하다. 김 대표는 그동안 여러 직함을 가지고 다양한 봉사단체에서 활동을 해왔고 지금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서부경남회장, 따뜻한 한반도 사랑의 연탄 나눔운동본부 진주지부장 등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그가 왜 자신의 사업만큼이나 어려운 이웃과 고향 진주 발전을 위해 깊이 고민하고 있는지 만나봤다.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되다

김 대표는 1961년 진주 장대동에서 3남 4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김 대표 아버지는 진주중앙시장 옆 계란전 골목에 세 평 정도 되는 전기 가게를 운영했지만 여의치 않아 어머니가 시장통에서 군고구마 장사를 해야만 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월세를 전전하면서 한 스무 번 정도 이사를 한 것 같아요. 그나마 부모님 교육열 덕분에 공부에는 취미가 없었지만 저는 고등학교를 마쳤고, 밑에 동생들은 공부를 잘해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나왔어요."

진주기계공고를 졸업한 그는 실습생으로 당시 마산에서 알아줬던 코리아타코마라는 조선소에 취직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편찮으시면서 회사를 그만두고 진주로 돌아와야 했다.

"아버지께서 지병이 있어 고등학교 때부터 제가 선풍기도 고치고 난로도 고치고 다 했어요. 그런데 아버지 건강이 몹시 악화하면서 어쩔 수 없이 제가 가게를 책임지게 된 거죠."

아버지는 일 년 뒤 세상을 떠나셨고, 이듬해 어머니 또한 아버지를 뒤따르면서 그는 말 그대로 가장이 된다. 당시 바로 밑에 동생은 고등학교에, 막냇동생은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물려받은 가게는 겨우 생계를 이어갈 수준이었다. 그렇지만 성실히 일하다 보니 손재주 좋고 싹싹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단골도 늘었고 중매까지 들어와 그는 23살 이른 나이에 19살 앳된 아가씨를 만나 결혼하게 된다.

"집사람 이름은 유현숙(51)입니다. 어린 나이에 시집와 고생 많이 했죠. 항상 고맙습니다. 시집와서 제 동생 둘 데리고 50만 원 주면 열 달 사는 방 두 칸 사글세에서 살았어요."

가게 운영이 조금 나아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부부는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면서 청춘을 모두 바쳐야만 했다.

"아내는 아들 등에 업고 아침부터 새벽 한 시까지 일하고 그랬어요. 일 년에 추석과 설 딱 두 번 쉬었고요. 부지런한 것 말고는 딱히 내세울 것도 없었으니…. 그렇게 청춘을 그 가게에서 바쳤습니다. 22살부터 47살까지…."

좌절의 수렁에 빠지다

15년간 알뜰살뜰 모은 돈으로 1998년 37살 나이에 그는 꿈에 그리던 전자제품 대리점을 개업하게 된다. 삼성전자 신안동 대리점. 그러나 그는 3년 만에 다시 위기를 맞게 된다.

"돈이 더 많이 벌리게 되면서 의심 없이 가족 중 한 사람에게 수표를 빌려줬는데 부도가 나면서 제가 다 떠안게 됐어요. 몇억 원 됐는데, 장사를 해서 돈을 메우며 버티다가 나중에는 포기하고 문을 닫았어요."

그는 그때부터 외부와 단절하고 본의 아니게 1년가량 칩거 상태에 들어갔다.

"정말 죽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참 아내 없을 때 많이 울었어요. 그렇게 집에서 온종일 있다 보니 컴퓨터를 하게 됐고, 나중에는 주식에 손을 댔어요. 빚잔치하고 한 3억 정도 남았는데 또 1억 5000만 원 정도 손해를 봤어요. 그러다 보니 칩거 생활은 더 길어졌고…. 허허 눈물이 날라 하네." 잠시 그는 천장을 보며 눈을 감았다.

암흑과 같았던 1년. 그를 그곳에서 꺼내 준 것은 다름 아닌 가족이었다. 혼자 일하러 나가는 아내와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는 다시 마음을 다잡게 된다. 그렇게 발을 들여놓은 곳이 부동산 중개사업이었고 그는 이곳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그때가 2001년이니까 마흔 살쯤이지요. 친구 부동산 중개사무소에 나가서 어깨너머로 보니 전망 있는 직업으로 감이 오더라고요. 그래서 자격증도 따고 남은 재산을 여기에 투자했어요. 주변에서 소개도 많이 시켜주고 해서 돈도 많이 벌었어요. 그때 46살에 첫 집을 마련했어요. 상봉동에 4층 원룸건물인데 제가 직접 지어서 더 의미가 있죠."

김 대표가 현재 운영하는 EXR스포츠센터는 진주시 상대동 홈플러스 진주점 7층과 8층에 있다. 1만㎡(약 3000평) 면적에 헬스장, 사우나, 실내골프장 시설이 갖춰져 있고 서부 경남권에서는 최대·최고 시설을 자랑한다. 김 대표가 사업영역을 바꾼 것은 막냇동생의 도움과 권유 때문이었다.

지난 2012년 5월 경남아너소사이어티 21번째 회원으로 가입한 김일석 대표는 함께 잘살기 위해 기부와 사회환원 활동을 한다고 말한다.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막냇동생이 서울에서 큰 건설 시행사를 하고 있어요. 동생이 이쪽 사업이 비전이 있다고 권하고 돈도 보태고 해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최고 기계와 최고 시설로 청결하게 관리하니 고객들이 좋아해요. 회원이 1000명 정도 되는데 잘돼요."

사회봉사 마당발로 거듭나다

새롭게 시작한 사업도 말 그대로 번창하고 있다. 예전보다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서 그는 어려운 이웃에 관심을 더 두게 된다. 그는 청실회, 새마을회,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사랑의 연탄나눔본부 등의 활동을 하면서 매년 수천만 원을 봉사와 사회 환원에 사용하고 있다. 이 밖에도 인근학교 체육부 후원, 장학회 사업 등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는 사회복지 분야 전문지식을 얻고자 47살에 늦깎이로 대학에 다녀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 아너소사이어티는 지난 2012년 5월 1억 원을 기부하면서 가입했다.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대부분이 창원, 김해, 함안 등지 사람인데 서부경남에는 없다는 점이 좀 자극됐죠. 허허. 이쪽에도 돈 많은 사람이 많아요. 그래서 돈도 얼마 없는 제가 하면 다른 사람들도 많이 동참하지 않을까 해서 결단을 했죠. 최근에 진주 포시즌 웨딩홀 이상안 회장이 동참했어요. 제가 할 때만큼 기뻤어요. 계속 늘어나지 않겠습니까."

그는 기부와 사회환원의 이유를 함께 잘살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제가 어려워 봐서 어려운 사람들 사정을 잘 알지요. 뭐 딱히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동안 어렵게 지내다 이제 형편이 좀 나아졌으니 조금 더 돕는 것뿐이에요. 그리고 그분들도 형편이 될 때 또 어려운 이웃을 돕게 되는 거고…. 그리고 혼자만 잘살면 뭐합니까. 다 같이 행복해야 진짜 행복한 거니까요."

그는 특히 고향 진주에 대한 애착이 크다. 그의 형제들은 고향의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마중물 장학회'를 만들어 8년째 운영하고 있다. 이 장학회는 학생 20명을 매년 선발해 300만 원가량 1억 원을 집행하고 있다. 김 대표는 사회 봉사·환원 외에도 진주지역을 위한 사업을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진주성 순국선열 7만의총 건립추진 사업이다.

"임진왜란 당시 1593년 진주성이 함락되면서 7만 명의 사람이 순국을 했습니다. 그러데 역사에서 도드라지지 않고 잊혀 가고 있습니다. 전북 남원에는 만인총, 충남 금산에는 700의총이 있습니다. 선조가 나라를 지키고자 얼마나 고생을 했고 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 외세침략을 막은 마음의 중요성을 깨우치고자 추진위를 꾸려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진주에서 태어났으니 고향을 위해 무엇을 남길까 하는 고민 중의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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