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활 인연' 거창에 온 훈규 씨 재선 씨도 따라 직장 구해…정착어렵고 힘들 때마다 서로 의지2007년 결혼

김훈규(42) 씨는 20대 후반 때 거창에 정착했다. 부산서 대학 다닐 때 매년 찾던 농활이 인연이 되었다. 그리고 박재선(39) 씨는 그런 훈규 씨를 따라 거창에 오게 됐고,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현재 부부는 농촌에서 해야 할 자신들 역할을 찾아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훈규 씨는 거창군농업회의소 사무국장을 맡고 있고, 재선 씨는 거창여성농업인센터에서 오랫동안 일하다 지금은 잠시 육아에 전념하고 있다.

훈규 씨는 "젊은이들이 농촌에서 할 일은 너무나도 많습니다"라고 말한다. 사실 이 이야기는 12년 전 아내 재선 씨에게 했던 말이기도 하다.

20대 훈규 씨는 거창을 오가면서 농촌에 젊은 사람 손길이 필요하다는 걸 마음으로 느꼈다. 그러던 2002년 시기가 맞아떨어졌다.

거창 농민들이 주유소도 하고 영농자재를 판매하는 법인을 만들었고, 훈규 씨는 이곳 실무를 맡았다. 그즈음 대학 후배 둘이 훈규 씨도 만나고 여름 휴가도 보낼 겸 해서 거창에 왔다.

"지금 아내와 다른 여자 후배가 함께 왔습니다. 그때 제가 '면 단위 아이들 공부 가르치기, 농촌교육복지 등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도 많다. 도시에서 어렵게 직장 구하려 하지 말고 여기서 일해라'고 했습니다. 진담 반 농담 반이었는데요, 그로부터 한 달 후 둘이 짐을 싸서 오겠다고 하더군요."

세 살 차이인 훈규·재선 씨는 학창시절에도 깊은 인연이 있었다. 훈규 씨가 총학생회 부회장 후보로 출마했을 때 재선 씨가 수행 비서를 했다. 평소 선배로서 훈규 씨에 대한 믿음이 컸던 재선 씨는 그를 믿고 새로운 인생에 도전한 것이다.

2년여간 서로 바쁜 나날을 보내느라 얼굴 보기도 쉽지 않았다. 어느 정도 각자 일이 정착하면서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여유도 났다.

"아무래도 농촌서 투박하게 살다 보니 의지할 곳이 필요했죠. 따로 한 번씩 만나면서 그런 감정이 소중하게 다가왔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연애를 하게 됐습니다."

특히 훈규 씨는 농민회 활동을 하면서 집회·데모 현장에 자주 나갈 수밖에 없었다.

"바깥에서 울분이나 격한 감정이 들 때가 많았죠. 그런데 집사람을 만나면 그런 마음이 수그러지고, 위안이 되고, 또 함께 고민 나눌 수 있었던 거죠."

둘은 농촌에서의 자신들 미래를 같은 시선으로 바라봤다. 시간 끌지 않고 연애 시작 이듬해인 2007년 결혼식을 올렸다.

2003년 재선 씨와 함께 거창에 왔던 친구도 여기서 결혼까지 하며 지금껏 지내고 있다.

애초 재선 씨는 거창에 정착할 마음까지는 아니었다. 그리고 이전까지는 도시생활에 익숙해 있던 이였다. 재선 씨 부모님 마음이 편할 리 없었을 것이다. 훈규 씨는 이렇게 전했다.

"장인어른이 결혼 전에도 한 번씩 딸 보러 거창에 오셨습니다. 당연히 걱정이 크셨죠. 결혼 허락을 받기 위해 부산댁에 찾아가 말씀드렸습니다. 마음속으로 어느 정도 각오했는데, 뜻밖에 쉽게 승낙해 주시더군요."

둘은 신혼 초 산골 오지에서 살았다. 마을 외딴곳에 집·축사만 달랑 있는 곳이었다.

더 농촌다운 곳을 찾았던 훈규 씨 의지가 반영된 것이었다. 재선 씨는 감내하기는 했지만 그러한 생활환경에 따른 스트레스가 없지는 않았다.

지금은 하는 일 때문에 읍에서 살고 있다. 앞으로 또 어떻게 해야 할지를 두고 훈규·재선 씨는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물론 그때는 8살·4살 된 딸, 아직 돌이 채 지나지 않은 아들 생각도 존중해 결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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