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이 터질 듯한 고통도 달리는 청춘 막을 수 없다

여행은 언제나 설렌다. 더욱이 젊은 시절,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고생을 각오하며 몸으로 부딪치는 여행은 더욱 특별하다.

경남대학교 홍보도우미 회장을 맡은 나는 학교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편이다. 내년 개교 70주년이라는 행사를 목전에 둔 지금 학교를 알리고 나를 알아보고 싶어 자전거 국토종주를 생각하게 됐다. 경남대 정문을 출발해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이르는 열흘 일정으로 잡았다.

우선은 부산 쪽으로 국토를 타고 넘어가서, 낙동강 자전거길을 따라 안동댐까지 간 다음, 다시 동해안을 따라 고성까지 가는 길을 선택했다. 이런 계획을 들은 주변 사람들은 처음에는 우리 안전을 걱정했다.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고생을 할 건지 충고하기 시작했다. 나와 후배 재민이는 자신 있었다. 젊음과 열정이면 못할 일이 없다 여겼다.

하지만 현실과 이상이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는 채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지난달 29일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호기롭게 출발한 자전거 여행은 첫날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후배 최재민 씨가 지난 8일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 도착해 찍은 사진.

경남대 정문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출발한 우리는 2번 국도를 탔다. 창원시 진해구에서 부산시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세 개의 언덕을 넘었다. 자전거 바퀴를 힘을 다해 굴리자니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자신 있다던 나의 확신에 균열이 생기는 듯했다.

며칠 전부터 장마 기간이라 비가 억수로 오는 날도 있었다. 우천시를 위해 챙겨왔던 나름의 방수도구도 여의치 않았다. 후배와 함께 가는 길인데도 여정은 춥고 외로웠다.

비가 오지 않는 날씨라고 해도 힘든 건 여전했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와 더불어 2015년 최악의 사태라고 할 만한 '가뭄'을 몰고 온 햇볕은 너무나도 뜨거웠다. 물을 병째로 들이켜도 해갈이 되지 않았다.

창녕군 남지에서 낙동강 자전거길을 따라가다 보면 높은 고개가 두 개 나온다. 이때가 나의 포부에 대한 확신이 '내 자신감은 자만이었노라' 하는 좌절감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자전거에 약 20㎏에 육박하는 짐을 싣고 언덕을 오르노라면 짐을 내동댕이치고 싶고 다리에는 감각이 무뎌진다.

한얼 씨와 재민 씨가 국토 종주를 하며 타고 다닌 자전거. 국토 종주 중 '한 컷' 찍은 한얼 씨.

그런데 웃긴 것이 나는 오히려 내리막길이 더 두렵다. 이렇게나 힘들게 올라왔는데 내려가기는 어찌나 쉽고 찰나인지. 우리네 인생 또한 이런 게 아닌지….

점점 약해져 가며 그렇게 수없이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며 오다 보니, 어느새 안동댐. 경남대학교 정문에서부터 400㎞를 넘게 달려온 내가 거기 있었다.

극심한 가뭄 속에 만난 농부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마음이 짠할 정도로 강직하게 웃어주셨다. 그리고 타향에 있는 당신 손자 생각에 우리에게 물 한 잔이라도 더 건네셨다. 지나가며 만난 아이들은 표정이 밝았고, 우연히 만난 외국인들 또한 친절했다.

그랬다. 지금 나는 걱정만 앞서기엔 너무나도 아름다워야 할 나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르막을 쉼 없이 넘어왔듯, 계속되는 가뭄에도 희망을 놓지 않는 농부가 있듯 나는 내 앞길에 놓인 모든 난관에서 희망으로 발버둥칠 것이다.

경남대 학생 이한얼.

아직 푸른 내 나이 스물다섯. 앞으로 부딪쳐야 할 취업 걱정은 한편에 밀어두고 우선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내 발밑의 두 바퀴부터 열심히 발버둥쳐야겠다. 경남대학교 개교 70주년 홍보를 목표로 한 자전거 국토종주, 하루하루가 새롭고 희망차다. 경남대학교는, 한마인은, 나는 아직도 청춘이다.

(이 글은 한얼 씨가 안동댐을 지나 동해안을 따라 고성으로 향하던 중 쓴 것이다. 한얼 씨와 후배 최재민 씨는 지난 8일 최종 목표인 고성 통일전망대에 도착한 후 지난 9일 새벽 차편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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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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