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사진'에 반해 전국 곳곳 풍경 렌즈에 담아…가족·증명사진 '절반 가격' 어르신 장수사진 재능기부도

새벽 5시 요란한 알람 소리가 깊은 잠을 깨운다. 잠시 몸을 뒤척이다 이불 속을 빠져나온다. 채 가시지 않은 잠을 찬물로 연거푸 씻어 내고 서둘러 집을 나선다. 10여 분 차를 몰아 다다른 곳은 어느 산 입구. 어스름한 산길을 달리는 사이 푸른빛 동이 튼다.

더 이상 오를 길이 없자 묵직한 가방을 메고 걸음을 옮긴다. 10여 분 뒤 멈춰선 발길 앞에 봉우리를 뒤덮은 구름바다가 펼쳐졌다. 짧은 탄식을 뒤로 가방에서 무언가 꺼낸다. 카메라다. 흘러가는 구름을 놓칠세라 셔터를 누른다. 찰칵 찰칵. 신중하면서 예리한 소리다.

"어제와 또 다른 모습이네요. 볼 때마다 새롭습니다."

매일 새벽 창원 불모산을 오르는 이상구(58·창원시 대방동) 씨. 그의 손에는 항상 카메라가 들려 있다. 35년 전 처음 필름카메라로 세상을 접했던 그때부터.

무심코 찍은 집과 사람, 음식, 동물이 사진으로 막상 인화됐을 때 새삼 달라 보였다. 평범한 사진 속에 뭔지 모를 슬픔 또는 기쁨이 녹아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카메라가 단순히 사물을 찍는 기기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내는 창작 도구로 다가온 것.

◀ 손님이 오면 순식간에 스튜디오로 변신하는 이상구 씨 집안 거실.

전에 알지 못했던 매력에 눈뜬 상구 씨는 그야말로 카메라 속 세상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봄이면 꽃피는 들판을, 여름이면 시원한 계곡을, 가을이면 단풍에 물든 산을 찾아 전국을 누비며 렌즈에 담았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은 출사는 때론 몸을 혹사시키기도 했다.

"가을쯤 지리산에 오른 적 있어요. 천왕봉과 반야봉에서 이틀간 비바크를 했죠. 비닐로 몸을 감은 채 말이죠. 카메라 장비가 많기 때문에 텐트는 들고 갈 수 없었거든요. 기온이 뚝 떨어진 밤에 살갗을 파고드는 추위로 제대로 잠을 청할 수 없었죠. 하지만 새벽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꾹 참았어요."

처절한 추위와 지독한 외로움을 꿋꿋이 견딘 이유는 바로 여명이 밝아 올 무렵 산과 구름, 하늘, 바람이 만드는 경이로운 풍광 때문이었다. 새벽녘 그 짧은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차디찬 밤을 맨몸으로 버텨낸 것이다.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카메라에 배터리, 삼각대, 조명판 등 각종 보조품까지 지금껏 들인 비용도 만만치 않다. 금액을 부담할 수 있었던 건 30년 넘게 몸담은 든든한 직장 덕분이기도 하지만 돈보다 사진에 대한 열정이 더 컸기 때문에 가능했다.

고객이 찾아 올때마다 스튜디오로 변신하는 집안 거실도 그렇다. 수채화 배경이 담긴 백그라운드와 은은한 조명이 설치된 7평 남짓한 공간에서 가족사진, 증명사진, 여권사진은 기본이고 신혼부부를 위한 웨딩촬영까지 이뤄진다.

파티복, 양복, 한복 등 콘셉트에 따라 착용할 수 있는 의복도 다양하게 갖췄다. 장소만 가정집일 뿐 사진 품질은 일반 스튜디오와 다를 바 없다.

가격은 시중가 절반 수준. 인건비 등 모든 비용을 최소화했다.

"창원은 물론 통영, 함양 등 지역을 가리지 않고 손님이 찾아와요. 온 김에 필요한 사진을 한 번에 다 찍고 가죠. 사실 남는 건 없습니다"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사진이 좋아서 시작한 일. 자신이 찍은 사진이 필요한 곳에서 가치를 발할 땐 희열마저 느낀다.

5년 전 어르신들 장수사진 찍을 때 그랬다. 우연히 요양병원 사회복지사로부터 장수사진 하나 없이 돌아가시는 어르신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료로 제작해 나눠 드렸다.

머리맡에 액자를 걸어 놓거나 가슴에 품고 잠이 든 어르신을 본 후 상구 씨는 매년 자신이 부담할 수 있는 선에서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

살아생전 드리는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하며 사진을 찍고 직접 출력해 액자에 일일이 넣기까지 시간과 정성을 아끼지 않는다. 어쩌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고맙다며 주머니에서 꺼낸 사탕을 손에 쥐여주면 가슴 찡하면서도 뿌듯하다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내면의 아름다움까지 표현해내는 게 사진이라고 말하는 상구 씨. 그는 찍는 사람의 진심이 담긴 사진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빛이 난다고 말한다.

상구 씨는 그런 경지에 이르기까지 내공이 아직 부족하다며 몸을 낮춘다. 하지만 내일 부산 야경 촬영을 앞두고 카메라 장비를 챙기는 내내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일반인 시각으로 어떤 게 좋은 작품인 지 아닌 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건 상구 씨 열정이 살아 숨 쉬는 한 그가 찍은 사진도 시간의 무게가 더해질수록 가치가 더욱 빛날 것이라는 거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