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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보다 강한 선수와 겨뤄야 경쟁력 생기죠

[명장열전] (27) 최승엽 마산대·경남도청 유도부 감독

박종완 기자 pjw86@idomin.com 2015년 07월 07일 화요일

"운동에 대한 막연한 회의감이 저를 지도자의 길로 이끌었죠."

마산대학과 경남도청 유도부를 이끄는 최승엽(52) 감독이 지도자가 된 계기는 다소 특이하다.

최 감독은 경상고 유도부에 입단해 3학년 때 전국체전에서 유도 고등부 금메달을 따냈다. 그는 그해 열린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고교 선수 가운데 유일하게 태극마크를 달며 기량을 인정받았다. 용인대(전 유도대학)에 진학한 뒤에는 국가대표로 세계대회에 나가 은메달도 딸 만큼 기량도 출중했다.

그러나 일찍 정상을 맛본 그는 운동에 대한 열정이 젊은 나이에 식어버렸다. 상무를 제대한 뒤 여러 실업팀의 스카우트 제의가 있었으나 선수가 아닌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됐다.

마산대학과 경남도청 유도부를 지도하는 최승엽 감독은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배출하는 것이 꿈이라고 밝혔다.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젊은 나이에 식어버린 운동 열정

최 감독이 처음 유도복을 입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3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창원중 2학년 시절 체육선생님의 눈에 들어 도복을 입었다. 또래보다 운동을 늦게 시작한 만큼 매일 남들과는 다른 치열한 하루를 보냈다.

최 감독은 "다른 선수들이 일주일이면 끝낼 낙법만 한 달간 연습했다. 유도가 체질에 안 맞았던 건지 낙법부터 차근차근 시작하는 것도 참 어려웠다"면서 "당시 창원중 유도부가 전국 4강권에 있는 강팀이었는데, 1년 늦게 시작해 어린 후배들과 동기생들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남들 쉬는 시간에도 운동했고 그 결과 전국대회 단체전에서 좋은 성적을 꾸준히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유도를 시작하기 전 그는 말썽꾸러기였다.

하지만 유도를 접한 뒤 반대로 성격이 내성적으로 바뀌었다. 태권도나 복싱처럼 공격적이고 활발한 운동보다는 상대의 힘을 이용한 운동을 많이 하다 보니 차분해졌고, 또 관찰력이 뛰어난 학생으로 바뀌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경상고 유도부에 입단 후 급속도로 기량이 늘었다. 고등부 시절 그의 적수는 김재엽(1986아시안게임 금·1988서울올림픽 금)뿐이었다. 당시 김재엽은 국내 최고 유망주였다. 세계청소년대회 선발전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유도계 차세대 리더로 손꼽히는 선수였던 그를 최 감독이 전국체전에서 꺾고 우승을 차지했을 땐 주위에서 환호성이 빗발쳤다.

고등부에서 보여준 경기력 덕분에 그는 용인대 스카우트의 눈에 들어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하지만 용인대에 들어선 뒤 운동에 대한 열정이 식어버렸다. 운동에 대한 흥미도 잃어 도망을 가고 잡히는 일상이 반복됐다.

"1년에 10명 정도가 훈련장학생으로 입학하는데 절반은 버티지 못하고 나갔죠. 먹는 것도 먹는 거지만 체벌이 워낙 심해서 대학시절 너무 크게 방황했죠. 2학년 때까지는 성적도 못 내다 3학년 때부터 결과물을 조금씩 얻었어요. 그러나 졸업 뒤에도 선수생활을 이어가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군 제대 후에는 지도자만이 내가 갈 길이라는 의지가 더욱 확고해졌죠."

상무 제대를 앞둔 그는 여러 스카우트 제의를 뿌리쳤다. 당시 실업팀 3~4곳의 제의가 있었지만 망설이지 않았다. 10여 년간 입었던 유도복이 지겨워진 건 아니지만 선수로 살아가긴 싫었다. 최 감독의 머릿속에는 '지도자'라는 길밖에 없었다.

고대했던 제대 당일, 예정됐던 경남체고 유도부 코치 부임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서울 선정고 감독에 부임했다.

고향에서 지도자 생활 꿈꿔

최 감독은 서울 선정고에서 지도자로 15년간 있으면서 많은 선수를 만나 지도하고 국내에서 알아주는 선수들도 길러냈다. 서울생활이 만족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는 늘 고향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

연어는 자라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했다던가. 마침내 기다리던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는 방법이 생겼다. 마산대 감독 자리가 난 것이다. 달리 생각할 것도 없었다. 혈혈단신 몸을 이끌고 2004년 10월 마산대 감독이 됐다.

"사실 마산대학이나 경남도청은 최고의 선수들이 오는 곳은 아니잖아요. 대학은 용인대나 한국체대로 먼저 가고, 실업팀도 마사회부터 가려고 하지. 그래도 그중에 최고의 활약을 펼칠 수 있는 원석은 있는 법이잖아요. 이번 광주유니버시아드대회에 나선 (박)지윤이가 딱 그렇죠."

박지윤은 용인대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지만 최 감독의 지도 아래 가능성을 꽃피운 선수다.

올해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쟁쟁한 후보 선수를 넘어서며 1차, 2차, 3차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우승하며 당당히 태극마크를 땄다. 더불어 광주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도 국가대항전 경험이 부족하다는 주변의 우려에도 당당히 은메달을 따내며 빼어난 실력을 과시했다.

그는 남자선수와 함께 여자선수를 동시에 지도하는 데 있어 남녀 구분없는 훈련방식을 선호한다. 특히 이는 여자선수들에게 특효약이다.

최 감독은 "여자선수가 비슷한 체구와 힘을 지닌 상대하고만 연습해서는 절대 성장할 수 없다. 자기보다 힘도 세고 팔다리가 긴 선수와 싸워봐야 유럽 선수에 대비한 경쟁력이 생긴다. 물론 남자선수가 방심을 하고 전력을 다하지 않는다면 순식간에 승부가 날 수 있다"고 훈련 비법을 소개했다.

그는 '선체력, 후기술'이 유도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긴다. 이전 한국유도는 체력이 뛰어나지만 기술이 뒤떨어져 국가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기술훈련에 중점을 뒀으나 경기 후반부로 가면서 외국 선수에게 체력적인 불리함을 안고 간 바 있다. 이 때문에 최 감독은 체력을 중요시한다. 그가 "체력이 안 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이유는 달리 있는 게 아니었다.

최 감독이 꼽는 최고의 체력훈련은 새벽훈련이다. 27년간 지도자로 지내온 그는 '마산대와 경남도청 선수들은 고등부 선수처럼 운동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달리 보면 최 감독이 누구보다 훈련에 집중한다는 뜻이다.

"새벽에 훈련을 하면 선수들이 늦게 잘 수가 없잖아요. 늦게 자면 다음날 훈련에 지장이 있으니 일탈은 꿈도 못꿔요. 대신 저도 게으름을 못 피우죠. 지금도 지인들과 늦게까지 술자리에 있어도 6시에 하는 새벽 운동에는 매일같이 나가죠."

"올림픽 메달리스트 배출하고파"

숱한 선수를 배출하며 많은 메달리스트를 발굴했지만 그가 아직 못 이룬 꿈이 있다. 바로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배출하는 것이다. 유도계 인사들과 함께 올림픽은 따라가봤지만 제자와 함께 가본 기억이 없는 최 감독이다.

"제가 아마추어 지도자로 오랜 세월 있었는데 올림픽 메달리스트 제자가 없어요. 내년에 있을 올림픽에서 마산대학과 경남도청 선수가 국가대표 선수로 나서 메달을 목에 걸고 있는 모습을 간절히 보고 싶습니다."

2016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리는 올림픽에서 최 감독이 소망대로 제자들과 함께 환하게 웃는 모습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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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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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경남도민일보 사회부기자 박종완입니다. 창원서부경찰서 출입합니다. 환경, 여성, 장애인 등도 함께 담당합니다. 민원 사항은 010-4918-7303으로 연락주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