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농을 찾아서] (95) 거창 이수미팜베리 이수미·박창구 부부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된다는 일기예보에 마음이 바빴다. 하늘에선 곧 비가 떨어질 것 같았다. 농장 취재는 실외 사진이 꼭 필요한데 비가 내리면 차질이 생긴다. 사진을 찍자고 다시 찾아가기도 쉬운 거리가 아니다. 조마조마하는 마음에 당도한 곳은 거창읍 가지리에서 이수미(46) 사장이 남편 박창구(54) 씨와 함께 가꾸는 '거창 이수미팜베리' 농장이다. 다행히 아직 비는 내리지 않는다.

◇1만 4000평 농장서 기르는 베리류 5종 세트 = "1만 4000평에 베리류 다섯 종류를 가꿉니다. 복분자가 5000평, 블랙베리 4000평, 블루베리와 아로니아가 각각 1000평이고 나머지는 산딸기입니다. 6월 중순 복분자를 시작으로 8월까지 블루베리와 블랙베리, 아로니아 순으로 수확합니다. 산딸기는 내년부터 수확하고요."

수확량이 상당할 듯했다. "대략 40t 정도 됩니다. 복분자가 7∼8t쯤 되고, 블랙베리 20∼30t, 블루베리 등을 5∼6t 정도 수확합니다. 판매는 주로 소포장 직거래를 합니다."

'소포장 직거래'가 많다는 이 사장의 말처럼 인터뷰 도중 계속 주문전화가 울려댄다. 수익은 어느 정도일까? "인건비를 제외하고 1억 5000만 원 정도 됩니다. 그런데 농사로 억대 연봉을 올리려면 농촌에 파묻혀 살아야 합니다. 한국농업은 인건비 때문에 외국농산물에 잠식당할 것입니다. 경쟁력 있게 버티려면 부가가치가 높은 것을 재배해야 하죠." 고수익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남편 박 씨가 넌지시 이야기한다.

거창군 거창읍 가지리 '이수미팜베리' 이수미(오른쪽)·박창구 씨 부부가 익어가는 블랙베리를 살펴보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22세 꽃다운 나이, 잘나가던 직장 접고 귀향한 까닭 = 거창이 고향인 이 사장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어릴 때부터 의상 등에 관심이 많았던 이 사장은 유명 여성의류회사에 입사해 주위로부터 제법 인정도 받는 등 소위 '잘나가는 아가씨'였다.

그런데 계속 직장에 다닐 수 없는 상황이 돼 버렸다. 갑자기 아버지가 간암으로 돌아가시고 어머니마저 마음의 병을 앓아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됐다. "갑작스런 아빠의 죽음은 저에겐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런데 엄마도 무척 힘드셨던가 봅니다. 우울증을 앓으면서 나에게 6개월 동안 전화를 해 '힘들다'라고 했죠."

그 길로 과감히 사직서를 냈다고 했다. 모두 '일 잘하는 네가 왜 그만두려 하느냐'라며 말렸지만 이 사장을 찾는 엄마를 외면할 수 없어 귀향을 결심했단다. 그게 1991년 12월 31일이었다.

"진짜 사랑의 힘은 대단한가 봐요. 엄마 얼굴에 병색이 짙었는데 딸이 있으니 좋으셨던가 봅니다. 금방 혈색이 돌아오더라고요. 건강해지는 엄마 모습을 보니 나도 기분이 좋았죠."

이 사장은 다시 고민에 빠졌다. 뭔가 일을 해야 하는데 쉽사리 마음이 가는 일이 잡히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시 서울로 갈 형편도 안 됐다. 고민 끝에 당도한 생각은 '가축'이었다.

당장 현금이 돌아가는 양계사업을 하기로 했다. 우리사주를 처분하고, 융자도 받아 6500만 원 종잣돈을 마련해 6500마리 닭을 넣었다.

◇양계사업 키우려고 삼고초려해 산 땅 = "계란을 생산해도 당시엔 내가 직접 팔 루트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소위 '갑'이 되어 계란을 팔아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그 첫 단추가 대량생산, 대량판매라고 여겼습니다."

이 사장이 지금의 농장 터를 본 것은 고향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90년대 초반이었다. 거창읍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땅을 보고는 '언젠가 나도 이런 땅을 가져봐야겠다'라고 마음먹었단다. 그런데 2006년 우연히 그곳을 지나다 다시 그 땅이 눈에 들어왔다. 빨간 깃발이 꽂혀 있고 개발이 진행 중이었다. 다음날 곧바로 부동산 중개업소를 찾아갔다. 알고 보니 주인 할머니께서 십수년간 매물로 내놓았다가 거둬들이기를 반복하는 땅이었다.

곧바로 할머니를 직접 만났다. 하지만 흥정은 막판에 깨졌다. 부부는 두 번의 계약 실패로 마음을 비우려 했단다. 그런데 몇 날이 지났을까? 이 사장이 꿈을 꾸었는데 할머니가 나타나 같이 밭일을 가자고 끌더란다. 하도 꿈이 이상해 다시 할머니 집에 찾아가 꿈 이야기를 해 드렸다. 그리곤 며칠 뒤 할머니로부터 연락이 왔다. '팔겠다'는 전화였다.

부부는 애초 70만 마리가 들어가는 양계장을 지으려고 했다. 그런데 농장 위치가 양계장을 짓기에 아까운 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양계장을 과감히 접기로 했다. 그게 2010년이었다.

"베리를 심으려 하니 주위 사람들은 이 좋은 땅에 왜 돈도 안 되는 일을 하느냐며 의아해했습니다. 하지만 우린 단순히 돈벌이를 목적으로 베리 종류를 심은 것은 아니었죠."

삶의 질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돈을 더 많이 벌고자 했다면 사과나무를 심었을 것이라고 했다. "베리는 전북 고창 등지에서 훨씬 많이 생산합니다. 대량 생산하는 곳과 비교해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죠. 하지만 우리 가까이에서 우리 몸에 맞는 음식을 생산해 섭취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것이 아닐까요? 지역에서 생산한 신선한 농산물을 지역에서 바로 소비할 수 있다는 것, 이게 장점이죠."

◇큰 고통 딛고 일어서면 기쁨은 배가 되고 = 이 사장은 베리를 심으면서 무농약을 고집했다. 무농약인 탓에 눈 돌리면 농장을 파고드는 잡초와 싸워야 했고, 또 병해충과도 싸워 이겨야 했다. 힘든 과정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무농약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유기농 재배를 시작해 마침내 인증을 받았다.

"유기농 인증을 받으려면 3년 동안 일절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주면 안 됩니다. 그러다 보니 제초방법이라곤 손으로 뽑거나 비닐로 땅을 덮어 풀이 자라지 못하게 하는 것이죠. 또 천연 제초제를 만들어 쓰기도 하고요. 해충을 막으려고 해충 기피제를 만들어 사용하기도 합니다만 여간 어려운 게 아니죠."

한 해 겨울, 거창에 영하 20도 이하 기온이 연일 이어지는 매서운 나날이 있었단다. 어린나무들이 동해로 다 죽을 처지에 놓였다. 그런데 내버려두듯 강하게 키운 덕에 나무들이 스스로 냉해를 딛고 깨어나더라는 것이다. "처음엔 가슴이 아렸습니다. 공들인 농사가 수포로 돌아가는 게 아닌가 했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고통은 극복하라고 있는 것 같습니다. 큰 고통을 지나고 나니 더 큰 기쁨이 왔지요."

이 사장 부부는 요즘 농장 체험관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다. 넓은 가공실이 필요해 2층 절반은 가공실로 만들고, 한쪽엔 판매장 겸 카페를 차리기로 했다. 그리고 1층엔 소비자 교육실을 겸한 체험실이 들어선다. 부부가 체험관을 짓게 된 것은 단지 먹거리 생산에 머물지 않고 문화를 생산하는 농촌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체험장을 차리려는 이유는 소비자 교육의 필요성이 절실했기 때문입니다. 유기농과 무농약 인증을 모르는 소비자들도 참 많습니다. 이런 소비자들에게 '이수미표' 베리가 어떤 과정을 거쳐 생산되는지 생생하게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결국 믿음, 신뢰죠. 소비자들의 믿음이 이어진다면 굳이 농장에 오지 않더라도 도심 속에서도 '이수미팜베리'를 만날 공간을 마련하고 싶습니다."

<추천이유>

◇경상남도농업기술원 강소농지원단 경영전문가 예권해 = 2011년 강소농에 가입한 거창 이수미팜베리 이 대표는 4.5㏊ 면적에서 친환경 유기농으로 베리류를 재배·생산하는 지역의 핵심 농업인입니다. 이 대표는 처음 양계사업을 하다 특수 소득작목으로 과감히 전환, 수확기가 겹치지 않는 작목을 선택, 고용 인력을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친환경으로 생산한 베리와 가공제품을 전량 직거래로 판매해 유통비용 절감과 농가수취 가격을 올리는 대표적인 부부 강소농입니다. 부부는 소비자 대상 교육농장과 도시민 휴식·힐링공간으로 발전시킬 중장기 비전을 실현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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