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사람]창원 진북서 파프리카 재배 최몽옥 씨

"농산물을 국외에 수출하는 '수출농업'이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지요. 한데 수출농업 시대는 얼마 가지 못할 겁니다. 앞으로는 '농업수출 시대'에 살게 되리라 봅니다. 중국 등 다른 나라는 시작을 했어요. 현재는 여력이 부족해 어렵지만 여건만 갖춰지면 저도 곧 도전할 겁니다."

정년이 점차 짧아지는 현대 한국에서 사회 수명은 채 60세를 넘기기가 어렵다. 8년가량 전부터 오륙도(56세까지 일하면 도둑. 명예퇴직을 강요당하는 직장인 실정을 풍자한 말), 사오정(정년이 45세)이라는 말이 유행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남자 나이 60이 넘으면 가히 퇴물 취급을 받는다는 요즘. 65세 현역 농업인이 세계를 향해 한국 농업을 수출할 꿈을 키우고 있어 주목된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에서 파프리카를 재배하는 최몽옥(65) 씨. 최 씨는 지난 4월 자신이 쓴 책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책은 <수출 농업과 농업 수출 그리고 정책>. 현장 농민이 자신의 50년 농사 인생을 되돌아보며 앞으로 한국 농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그에 맞는 정책 대안까지 제시한 보기 드문 책이다.

창원 마산합포구 진북면에서 파프리카를 재배하는 최몽옥 씨가 지난 4월 출판한 책 <수출 농업…>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두천 기자

"소리 없는 아우성이지요. 그동안 농업 특히 수출 농업을 해 오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했던 사항들을 수시로 주장하고 말해 왔던 내용을 이 책을 통해 조용히 소리쳐 본 것입니다."

고성군 동해면 대대로 어업에 종사하던 집안에서 자란 그는 고성농고 졸업 후 본격적으로 농업에 뛰어든다.

처음에는 낙농에 뜻을 품어 졸업과 함께 낙농기술 자격을 취득했으나 이내 온실 재배에 눈을 뜨면서 동해면에서 처음으로 비닐하우스를 활용한 토마토 재배를 시작했다.

온실 재배가 가을 추수 이후 겨울에 잠시 하는 부업으로 여겨지던 때 항상적 온실 농업 성장 가능성을 엿본 최 씨는 직접 온실 제작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지난 1982년에는 온실을 이용한 틸라피아(역돔) 양식을 시작해 17년을 보내기도 했다. 한 재일교포 사업가가 창녕 부곡 온천수에 산업폐기물을 태운 열로 열대 어종인 틸라피아 양식을 하는 것을 보고 나서다. 최 씨는 이를 당시 일본에서 개발된 첨단 비닐 온실에서 키워 팔면 더 경제적일 것으로 판단했다.

이에 전국에 400~500개 양어장을 손수 봐주며 틸라피아 양식 1인자로 거듭난 최 씨는 한국 농수산업을 이끄는 차세대 지도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한데 대만산 필렛(역돔을 포떠 급랭한 제품)이 쏟아지고 농업 연수차 간 이스라엘 갈릴리 호수에 틸라피아가 대량 번식하는 것을 본 이후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해 이 일을 접었다.

이후 1997년부터 장미를 시작으로 온실 재배 사업에 다시 뛰어든 그는 3년여 뒤부터 파프리카 재배에 열중한다. 농수산업과 온실 사업을 오가며 산업적 측면에서 한국 농업의 현실을 파악한 최 씨는 주변 추천으로 경남파프리카생산자연합회 특별위원장을 지내며 수출 농산물로서 파프리카 경쟁력 강화에도 힘썼다.

최 씨가 보는 수출 농업 성공은 생산자가 '요구하는 위치가 아닌 요구당하는 위치' 즉 '갑'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요 수입국인 일본 상인들이 한국 파프리카를 찾지 않으면 안 되도록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일본 상인과 소비자들이 즐겨 찾는 크기의 파프리카를 언제든 원하는 만큼 공급할 수 있다는 신뢰를 쌓아놓고 이를 잘 지켜나가면 됩니다. 그리하면 한국 생산자가 '이런 색깔과 크기의 파프리카가 있으니 사 주세요' 하지 않고 일본 상인들이 '이런 색깔과 크기의 상품을 주세요' 하게 됩니다. 이때는 생산자가 가격 결정권을 가지고 일본 상인을 쥐락펴락하겠죠. 이런 식으로 '갑'의 위치를 점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최 씨는 마산시 시절 시 권유로 중국 하이난에서 서양란을 재배해 수출하는 사업도 했다. 처음에는 마산시화(花)인 국화를 하려 했으나 마산지역 재배농가들이 "수출 국화가 다 국내로 들어올 것"이라 반대해 서양란으로 종을 바꿨다. "한데 보세요. 국화 재배 농가들이 그때는 반대했지만 지금은 기후와 여건이 좋은 하이난 국화 때문에 한국 국화 판로가 상당히 축소됐어요. 그때 우리가 나서서 국화 수출로 중국에 진출하고 외화를 벌었다면 더 이득이 아니었겠어요."

'농업 수출'은 이 같은 경험에 바탕을 둔다. "간단히 말해 현대차가 미국과 중국 현지에 생산 공장을 두는 것과 같은 거지요. 우리 농업도 이제 생산조건이 좋아 경쟁력이 있고, 소비시장 접근성도 높아 마케팅 면에서 유리한 조건을 찾아 기술과 자본을 가진 농업인들 진출을 꾀하자는 겁니다. 이제는 이런 때가 왔어요."

최 씨는 어쩌면 이런 일이 농업인의 사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농업은 인류 먹거리를 생산하고 그것을 산업으로 발전시켜 이윤을 창출해 내 계속 더 나은 더 많은 먹거리를 만들어내는 으뜸 생명산업이에요. 이 관점에서 아프리카 죽어가는 기아를 살리는 일도 농업인이 해야 할 일이고 사명이라 봐요."

최 씨는 지금도 하이난에서 서양란 재배·수출할 때 맺은 현지와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최 씨는 언젠가 이곳을 다시 찾아 새로운 도전을 해 볼 생각이다.

이 하이난에서 한국의 후배 농민들에게 '농업 수출'이 무엇인지, 세계와 경쟁에서 살아남고 인류를 위해 헌신하는 농업이 어떤 것인지 꼭 보여 줄 것이라 다짐하고 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