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이장님]김금이 통영 창포마을 이장

30년 전 김금이(63·사진) 씨가 시댁인 창포마을에 들어왔을 때 마을 밤길은 캄캄했다. 김 씨는 이런 어둠이 싫었다.

시어머니에 이어 당시 마을부녀회에 들었을 때 김 씨는 의욕적으로 마을 공동사업을 제안했다. 큰 반대는 없었지만 반대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설득하고 회의를 하는 시간이 길었다. 주민들이 "동네 화합을 하는데 공동사업만한 것이 없다"는 김 씨의 마음을 받아들인 것은 작은 변화였다.

공동사업으로 1㏊ 굴 양식을 결정한 주민들은 농협에서 당시 큰돈이던 70만 원을 대출받아 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해, 창포마을은 굴 수확으로 무려 520만 원 수입을 올렸다.

이 수익금으로 김 씨와 주민들은 캄캄한 마을 밤길을 밝히기로 했다. 수익금 중 320만 원을 들여 숙원사업이던 가로등 7개를 마을 곳곳에 설치했던 것이다.

20년 전 이 사업 제안 후 통영시 광도면 창포마을은 매년 500만 원 이상 마을 수익을 올리고 있다.

돈이 있었기에 부녀회는 수년 전 지은 창포마을회관 건립에 선금 1000만 원을 선뜻 쾌척하기도 했다. 돈이 있기에 창포마을 노인회 효도 관광이나 주민 여행은 공짜가 된 지 이미 오래다.

"우리 마을에서는 공적인 일 때문에 돈을 갹출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는 15년을 일한 전임 이장 뒤를 이어 올 1월 추대형식으로 이장이 됐다.

"이장이 됐지만 마을 어르신들께 반찬 한 번 못해주고…."

이런 걱정을 하는 김 이장은 "딱히 이장을 맡을 사람도 없어 이장이 됐다"고 하고 "이장을 하고 싶어 죽겠더라"거나 "월급 받는 이장을 왜 안 하냐"며 소박하게 농담을 하곤 했다.

38세부터이니 젊어서 봉사를 시작한 김 이장은 새마을부녀회 통영시회장을 6년 정도 역임하기도 했다. 97년에는 시 새마을회관 건립을 주도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1983년에 그는 남편 고향인 이곳 창포마을로 귀향했다. 87년 굴 양식을 시작한 게 인연이 돼 마을 공동사업을 제안했고 성공했던 것이다.

김 이장은 최근에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았던 마을 쓰레기 무단투기 문제를 기를 쓰고 해결했다. 쓰레기는 해안가이자 마을 입구인 회관 근처에 집중적으로 버려졌다. 악취는 물론 수거마저 어려운 상황이었다.

"지정된 쓰레기장 외에 쓰레기 버리지 말아주십시오…. 이렇게 방송을 해도 안 되면 CCTV를 확인해 방송으로 이름을 불러 크게 망신을 주겠습니다."

작심을 하고 해결될 때까지 방송을 할 작정이었다.

"쓰레기를 버리면 잡아서 고마 두들겨패삘라●십니다. 마을을 떠나라코 할라 했지예."

설득하고 애걸복걸하자 쓰레기 문제는 어느 날 거짓말처럼 해결됐다.

김 이장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쓰레기 문제가 하나 더 있다"고 말한다.

"여름철이면 낚시꾼들이 와서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버리고 가버립니다. 말도 못하게 지저분하지요. 낚시터 근처에 CCTV를 설치했지만 소용없습니다. 제 카메라로 차량번호판까지 찍어두고 있지만 방법이 없어요. 시에서 여름 한 철만이라도 사람을 보내 치워줬으면 싶습니다."

끙끙 앓는 이 문제는 이제 창포마을 숙원사업이 됐다.

김 이장은 여기에 더해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들과 원주민들 간 괴리도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다.

지난달 그에게 한 통 전화가 왔다.

서울에 있는 대학생이라고 소개한 학생은 자신이 모 대학 국문과에 다니며 교수 1명과 학생 8명이 남도 사투리 공부를 위해 통영으로 가는데 며칠 창포마을 회관에 머물렀으면 한다는 요청이었다.

혹시 사기나 장난이 아닌가 싶어 한 번 와보라고 했더니 먼 길을 와 주었기에 그날 김 이장은 이들에게 수제비와 찌짐을 사먹였다.

그리고 이들은 바닷가 마을회관에서 2박 3일을 머물렀다. 마을은 회관을 공짜로 빌려주고 쌀과 김치도 함께 제공했다. 부녀회는 학생 손님들에게 조개 캐기 체험을 주선했고, 마지막 날 김 이장은 동네 분에게 공짜 차를 대절해 온종일 통영 관광을 시켜주려 했다. 친절이 부담스러웠던지 학생들은 이것만은 사양했다.

학생들이 떠나고 얼마 뒤 제법 큰 상자 하나가 마을회관으로 배달됐다.

'통영에서 가장 먹고 싶은 것은 이장님이 사 준 수제비와 찌짐입니다. 통영에 또 가고 싶어요. 이장님이 그립습니다.'

그리고는 '어르신들과 함께 드시라'며 빵이 잔뜩 담긴 상자 안에는 8명의 학생과 교수가 일일이 손으로 쓴 편지 9통이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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