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학년 때 짝꿍이 평생 짝꿍으로

남자와 여자는 같은 초등학교에 다녔다. 중학교 때 연락이 끊겼다가 고등학교 때 우연히 재회했다. 적극적으로 다가선 쪽은 여자였다. 남자는 그 마음을 밀어내려 했지만, 여자는 끝까지 인연의 끈을 놓지 않으려 했다. 특별한 계기를 통해 남자는 그제야 여자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는 전세가 역전됐다.

결혼한 지 14년 된 41세 동갑내기 정원한·박미애(창원시 마산회원구) 부부 이야기다.

원한·미애 씨는 마산북성초등학교를 함께 다녔다. 그전까지는 서로를 아는 정도였고, 6학년 때 '짝꿍'이 되면서 말동무가 되었다. 원한 씨 이야기다.

"어릴 때는 남자보다 여자들 키가 더 크잖아요. 미애도 그랬어요. 그래서 저보다 큰 여자들은 좀 무섭고 그랬어요."

초등학교 졸업 후 서로는 기억에서 잊혔다. 그러던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당시 '앙팅(앙케트팅)'이라는 것이 유행했다. 주선자 주도 아래 남·여학생들이 얼굴도 모르는 짝에게 종이로 궁금한 점을 묻고 답하는 식이다. 원한 씨는 앙팅을 통해 알게 된 여학생과 종종 전화통화를 했다. 어느 날이었다. 휴대전화 없던 시절이었기에 집으로 전화했는데 여학생 언니가 대신 받았다. 다름 아닌 미애 씨였다. 둘은 수화기 너머 목소리가 귀에 익었고, 6학년 때 짝꿍이라는 걸 알아챘다.

그렇게 3년 만에 만났다. 동시에 미애 씨 마음 앓이가 시작된 시점이기도 했다. 이성으로 다가간 미애 씨와 달리 원한 씨는 동창 이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스무 살 지나 원한 씨는 다른 이성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여전히 곁에서 바라보고 있는 미애 씨가 부담스러워 연락을 끊자고 했다. 하지만 미애 씨는 마음을 쉽게 접지 못했다. 다른 동창에게 대신 전화하게 해서 원한 씨가 그 친구를 만나러 나오면 슬그머니 합석하는 작전을 펼쳤다.

20대 중반 연애 시절 정원한(오른쪽) 씨와 박미애 씨.

원한 씨가 군대 있을 때도 미애 씨 마음은 한결같았다. 편지를 계속 보내고 면회도 잊지 않았다. 미애 씨는 이미 원한 씨 부모님과도 왕래하는 사이였기에, 생신을 잊지 않고 챙겨드렸다. 원한 씨는 당시 마음을 솔직히 털어놨다.

"말로는 싫다고 하면서 내심 반기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군대에서 편지 오면 으쓱함 같은 게 있잖아요. 그리고 휴가 나오면 막상 만날 사람도 없으니, 늘 미애를 찾았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원한 씨 마음이 다 열린 것은 아니었는데, 전환점이 있었다. 제대 후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때 미애 씨가 원한 씨 곁을 지켰다.

"정말 진심으로 슬퍼하는 모습을 보았어요. 미애가 4일 상 치르는 내내 있으면서 일도 도와줬어요. 그냥 하는 게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게 보였어요. 집안 어른들도 자연스럽게 '쟤 누구냐'고 하시면서 '심성 고운 아이'라고 생각들 하신 거죠. 저도 그때부터 마음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이 여자라면 결혼해도 되겠다'라는 생각까지 하게 됐습니다."

이때부터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원한 씨가 좀 더 매달리는 쪽이었다.

"미애가 마산 창동에 있는 나이트에 자주 간다는 정보(?)를 입수했죠. 한날은 삐삐를 아무리 쳐도 답이 없더군요. 미애 집 앞에 가서 몇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새벽 2시 되어서야 나타나더군요. 나는 정말 화가 나 있는데,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더군요. 그런 것들이 쌓여서 어느 겨울날에는 술 한잔 먹고 미애 집에 찾아갔다가 마당 평상에서 잠이 들었어요. 어른들 계시니 거실 안까지 들어갈 용기는 없어 마당에서 기다리다 잠이 든 거죠. 그래도 어른들이 꾸지람 대신 따듯한 아침밥을 주셨어요."

미애 씨 마음이 변했던 것은 아니다. 요즘 말로 '밀당'이었다. 원한 씨 또한 모르지 않았다. 둘은 그렇게 27살 되던 해 부부가 되었다. 원한 씨는 이렇게 말한다.

"예전에 제가 많이 못 되게 했죠.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때를 만회하려는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하하."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