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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땅에서 열심히 잘 사는 모습 보여주고 싶어요

[동네사람]베트남에서 한국인으로…'인생 2막' 이수인 씨

류민기 기자 fbalsrldi@idomin.com 2015년 06월 29일 월요일

걱정이 앞서는 게 사실이었다. '대화가 잘 통할까?' 그것이 기우였다는 것을 안 건 얼굴을 맞댄 지 채 몇 분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베트남에서 한국에 온 지 11년. 한국어를 한국인처럼 하는 그녀를 보며 응우엔 티깜보다 이수인(32)이라는 이름이 더 잘 어울리겠다고 생각했다.

창원시내 한가운데서 '이수인헤어파크'를 운영하는 수인 씨. 알고 보니 그녀는 고집쟁이였다. TV·영화 등을 통해 접한 한국. 커져버린 그녀의 관심을, 막내딸의 고집을 부모님이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유학을 왔다. 그녀 나이 21살 때였다.

"처음에 왔을 때 힘들어서 '포기할까' 생각도 했어요. 한국말도 어렵고 하니까 스트레스 많이 받았죠. 그렇지만 아버지 반대를 이겨내고 온 거기 때문에 열심히 해야 했어요. 포기하고 돌아가 이도저도 아닌 모습을 가족, 친구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러던 중 한 남자를 소개받았다. 띠동갑이었다. 처음에는 거리를 뒀는데 만나다 보니 사람이 괜찮았다. 한국 온 첫해, 언어적 문제 따윈(?) 없었다. 남자는 베트남어 사전, 수인 씨는 한국어 사전을 들여다보며 대화했다. 그녀 말을 옮기자면, '눈치 딱 보고' 연애했다.

창원시 마산회원구 합성동 '이수인헤어파크'에서 이수인(왼쪽 둘째) 원장과 스태프, 디자이너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류민기 기자

"1부터 100까지 다 잘해줬죠. 한국말 가르쳐주면서 '포기하지 말라'고, '끝까지 열심히 하라'고 힘을 넣어주고요. 밤에 잘 때 한국어 공부한다고 녹음된 그 사람 목소리를 들었는데, 계속 듣고 하다 보니까 나중에는 그 (사람) 모습밖에 안 보이더라고요."

힘들기만 하던 타국 생활이 남자를 만난 후 바뀌었다. 한국말 배우는 것도 재미가 붙었다. 학교 수업은 비길 바가 못 됐다. 사전 펼쳐보며 일일이 가르쳐주는 남자의 노력이, 또 그 마음이 수인 씨 가슴을 적셨다. 대학생활 1년 정도 했을까. 그녀는 학교를 그만뒀다.

"이 남자와 결혼하려고 집에 찾아간 거죠. 집에 가니 어머니께서 반대를 하시더라고요. 나이 차도 있고, 학교 졸업도 안 하고 하니까…. 저는 이 남자와 결혼하겠다고 고집을 피웠죠. 이해해달라고. 3개월 정도 지나니까 부모님께서 허락해주시더라고요."

그때가 2005년이었다. 수인 씨는 자신의 반쪽을 만나 결혼에 성공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한국에 올 때 품었던 자신과의 약속을 잊지 않고 있었다.

"제가 대학 다닐 때 미용을 전공했거든요. 결혼하기 전에 서로 약속을 했죠. 하고 싶은 거를 해야 하기 때문에, 애 낳고 시간이 지나 한국말이 늘면 미용 일을 하겠다고요. 해주면 결혼하고 안 그러면 하지 않겠다고 했죠. 남편도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도와주겠다'고 흔쾌히 말하더라고요."

이수인 씨가 고객의 머리를 만지고 있다.

결혼 후 1년이 지났다. 당시 함안에서 생활하던 수인 씨는 집 근처에 있는 작은 미용실 문을 두드린다. 자신의 삶에서 잠시 미뤄뒀던 미용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처음에는 원장이 자신을 쓰지 않겠다며 반대했다고. 돈 안 받을 테니 청소라도 시켜달라고 한 끝에 무급으로 청소하고 머리 감는 일을 했단다. 그렇게 3개월 정도 지났을까. 일하는 모습이 만족스러웠는지 원장은 그녀에게 일을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그 당시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시부모님, 도련님, 남편 밥 준비하고 애 일어나면 밥 먹이고 했어요. 그렇게 오전 8시쯤 일 끝나면 출근 준비를 했죠. 저 같은 경우는 애가 어리기 때문에 저녁 6시까지 일했는데, 집에 오면 집안일하고 또 한국어 공부하고 그랬어요."

다른 이들은 손님맞이할 준비를 한 후 차 한 잔 마시든지 이야기하든지 할 때 수인 씨는 혼자 거울 보며 한국말을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그러한 노력의 성과일까. 미용 일을 한 지 3년이 지나면서부터 한국말을 하는 데 자신감이 붙었다. 일도 편하게 느껴졌을 뿐만 아니라 손님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설 수 있었다.

수인 씨가 디자이너로 올라선 게 2010년. 스태프에서 디자이너로 올라서기까지 4년의 시간을 그녀는 잘 이겨냈다. "사람들 머리 만지는 게 재미있어요. 작품을 제가 만들 수 있으니까 '이렇게 스타일 만들어봐야지' 하고 떠오르거든요? 생각했던 작품을 고객에게 해드릴 수 있다는 게 좋아요."

동네 미용실에서 하던 일도 스케일이 커졌다. 창원으로 온 후 한두 군데 미용실을 더 거친 수인 씨는 지난해 자신의 가게를 차렸다.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자그마한 가게를 내고 싶었어요. 남편에게 '좀 도와달라'고 했죠. '할 수 있으면 해봐'라고 말하는데,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오픈하자마자 사람들이 물밀듯이 몰려들었다. 한국인들이 이렇게나 많이 찾을 줄 생각을 못했다고. 그래서 디자이너를 포함해 직원을 더 뽑고 타깃층도 바꿨다. 한국에 오신 친정 부모님께서 수인 씨 일하는 모습을 보셨는데, 고집만 부리던 딸을 그렇게 자랑스러워했단다.

스태프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여유를 가지기가 힘들다. 내 가족 챙기랴, 내 일 챙기랴 하루 4~5시간밖에 못 자는 일상. 그럼에도 수인 씨가 해이해지지 않는 이유는 '고집' 때문이다. 그 고집이란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었다.

"저는 무얼 하든지 간에 끝까지 해야 해요. 더 큰 곳으로 가고 싶고, 더 완벽하게 하고 싶어요. 여기서 3~4년 정도 일해서 돈이 어느 정도 모이면 베트남에 체인점도 낼 거예요. 제 기술을 통해 베트남인들에게 새로운 스타일을 보여주고 싶거든요. 또 제 가족, 친구에게 저 이렇게 한국에서 잘 적응했다는 모습 보여주고 싶고요. 아들에게도 엄마 외국인이라서 부끄러워하지 말고 기죽지 말라고, 엄마가 항상 아들 위해서 열심히 살고 있다는 모습 보여주고 싶어요. 그래서 열심히 살 수밖에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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