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퇴치 '신뢰 회복'에 달렸다 (하) 공포가 낳은 불신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앞에서 쩔쩔매는 정부에 대한 불신은 그저 메르스에서만 비롯한 게 아니다. 괴담을 유포하지 말라는 엄포에서, 정부가 잘 대처하고 있다는 호언, 호언과 달리 허술한 대응 그리고 늘어나는 피해자까지 메르스 사태는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했다. 불과 1년 전 참사에 대한 기억은 메르스 사태에 대한 공포를 더욱 부추겼다. 정부가 '괴담'으로 몰아세우는 조각난 정보를 공유하는 과정은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몸부림이었다.

◇공포와 불신 사이에 끼인 지자체 = "죄송한데요. 제가 지금 도저히 통화할 상황이 안 됩니다. 다음에 통화하지요."

대책본부 관계자는 울음이 반쯤 섞인 듯한 목소리로 하소연했다. 창원에서 첫 환자가 발생한 다음 날인 11일 확진자 못지않게 중요한 현황은 격리자였다. 매체마다 정확한 격리자 수와 증감 현황, 이유 등을 확인하고자 대책본부에 문의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빗발치는 문의 전화와 항의·욕설 등에 시달리는 담당 공무원이 언론사까지 상대하기는 버거웠다. 창원시가 오전·오후 하루 2회 공보체계를 결정한 것은 투명한 정보 공개와 더불어 현장에서 시달리는 공무원을 배려하는 목적도 있었다.

창원시 관계자는 "무슨 말을 해도 사람들이 믿지 않는 것에는 답이 없다"며 "메르스도 무섭지만 불신과 공포가 더 무서운 것 같다"고 말했다.

환자 동선과 접촉 격리자 수가 초기부터 공개됐다. '사실'을 묻는 사람들은 다시 '확신'을 물었다. '확신'은 애초부터 낯선 전염병에 맞서는 이들이 말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549명이라고 발표한 접촉자가 알고 보니 400명인지, 600명인지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었다. 방역 대상 영역을 최대한 넓게 정해 발생 영역을 좁혀 들어가는 게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또 사실을 숨긴다며 거칠게 몰아붙였다. 정부를 못 믿는 시민이 정부 뒤치다꺼리나 한다고 여기는 지방정부에 보낼 믿음은 애초부터 없는 듯했다. 이 같은 불신은 24시간 가동 체제에 들어간 창원시 메르스 대책본부에 피로를 더했다.

◇확산하는 불신 = 어설픈 정부 대응이 단지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그치지 않았다는 게 더 괘씸한 지점이다. 불신은 지방정부로, 현장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을 이어가는 공무원으로 이어졌다. 불신에서 비롯한 원망은 환자와 접촉자를 향하기도 했다. 보이지 않는 공포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두려움과 분노를 거칠게 쏟아냈다.

그 와중에 정부는 '고비', '분기점', '진정' 같은 선언으로 사태를 정리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드러나는 통계와 보이는 현장, 접하는 뉴스는 여전히 심상찮았다. 증상을 제대로 파악하고 갈 수 있는 병원이 분명하며 전염을 차단하고 질병을 관리할 수 있다면 괜한 공포에 짓눌릴 이유는 없었다. 메르스 진정은 선언이 아니라 결과로 증명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간호, 병문안 등 '한국식 병원 문화'를 탓하기도 했고 메르스는 흔한 독감일 뿐이라고 축소하기도 했다. 그 와중에 청와대는 박근혜 대통령 행보에 국민이 환호한다는 홍보를 남발하며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메르스가 확산한다고 해서 다른 질병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갈 병원도 받아주는 병원도 없는 상황에 부닥친 환자도 속출했다. 국가 시스템이 붕괴했다는 질책은 언론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흔한 말이 됐다.

◇신뢰 회복이 유일한 돌파구 = "제 나이도 적지 않잖아요. 그래도 여기저기 잘 다니는데 괜찮습디다."

지난 18일 마산 어시장을 찾은 안상수 창원시장이 이천만 상인회장을 격려하며 나이까지 언급했다. 기저질환이 있는 고령자가 메르스에 특히 취약하다는 점을 고려한 말이었다. 안 시장은 창원시 간부 공무원과 지역 상권을 찾아 격려하는 일정을 잇달아 진행하고 있다. 메르스보다 무서운 게 불안과 공포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지난 10일 지역에서 첫 환자 발생 이후 메르스 대응 체계에 대한 자신감이 깔렸다. SK병원 임시폐쇄에서 격리자 관리로 이어지는 대응 결과 추가 감염자가 나오지 않고 있다. 또 첫 환자도 음성 판정을 받고 퇴원했다. 게다가 거점 병원도 추가 확보하면서 대응 체계도 처음보다 정비되는 과정이다. 이 같은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안 시장 행보 역시 허세에 그쳤을 것이다.

부실한 정부를 향한 불신은 역설적으로 지방정부 존재를 재평가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운영할 수 있는 인력과 관리할 수 있는 시설을 정부보다 잘 갖춘 지방자치단체는 없다. 단지 환자 발생 초기에 동선과 병원을 공개하고 접촉자를 적극적으로 격리했으며 지속적인 홍보로 불안과 공포를 없애고자 한 지방정부가 있었을 뿐이다. 지역을 넘어 서울시와 경기도 성남시 행정이 주목받는 이유다.

국내 첫 환자가 발생하고 20일 뒤에 확진자가 나온 창원시 역시 '사전 학습'이 돼 있었고 무난한 초기 대응을 할 수 있었다. 환자 발생 초기 혼선은 있었지만 지난 19일 환자 퇴원을 기점으로 메르스 극복에 대한 기대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사태가 잘 정리된다면 동력은 사회적 신뢰 시스템을 잃지 않았다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낯선 전염병에 대한 공포를 더욱 부추긴 것은 무능한 정부를 향한 불신이었다. 메르스 사태는 보이지 않는 공포를 극복하는 첫걸음이 사회적 신뢰 회복이라는 기본을 엄하게 가르치는 중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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