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농을 찾아서] (94) 사천 운휴농장 손해수·이옥자 부부

운휴농장. '운휴'가 사람 이름은 아닌 것 같고, 한자라면 雲休(운휴)가 떠오른다. 이름을 생각하며 갓 모내기를 한 시골 도로를 달리다 사천의 명산 와룡산 기슭으로 접어든다. 농장을 안내하는 작은 간판이 보이고 임도를 따라 한참 산골짜기를 오르니 와룡산이 포근히 품은 농장이 나타난다. 사천시 사남면 가천길 369 손해수(72)·이옥자(67) 부부가 유기농법으로 블루베리를 재배하는 농장이다.

◇농장에 내려앉은 구름 '운휴'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방송카메라가 보이고 제법 연세가 높은 사람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 방송사에서 며칠째 농장을 촬영 중이란다. 한동안 농장을 둘러보는데 좀 전 인터뷰를 하던 이가 인사를 건넨다. 바로 손해수 사장이다.

"블루베리를 수확하는 바쁜 시기인데 저렇게 찾아와 며칠째 농장을 찍고 있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손 사장의 표정은 싫지만은 않은 것 같다. 자리에 앉기도 전에 오던 길 내내 궁금했던 농장 이름을 물었다. 내 생각이 맞았다.

"구름이 쉬어 가는 곳이라는 의미의 운휴입니다. 강소농 교육을 받을 때였습니다.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려면 이름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무엇으로 지을까 고민하던 중이었습니다. 하루는 집을 나서는데 농장에 구름이 내려와 덮고 있었습니다. 그때 떠오른 것이 구름조차도 쉬어가는 곳 '운휴'였습니다. 이곳이 해발 300m 정도 되는데 사남면에서 일교차가 큰 지역으로 고랭지 재배가 가능한 곳입니다."

운휴농장은 계곡을 사이에 두고 한쪽은 블루베리, 산도라지, 연, 더덕, 고구마 등 농장에서 생산하는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고, 반대쪽은 농가주택과 저장고, 선별장 등을 배치했다. 계곡은 건너다니기 쉽도록 철재 받침에 통나무를 얹어 운치 있게 했고, 계곡 물길을 돌려 아이들이 마음 놓고 놀 수 있는 풀장도 만들었다.

"농장 규모는 약 4000평이지만 농지는 2000평 정도 됩니다. 누구나 여기에 와서 휴식도 하고 아이들과 함께 체험도 할 수 있는 그런 농장으로 꾸몄습니다. 찻잎을 따 차도 만들어 보고 또 볼거리를 위해 연꽃단지를 만들었습니다."

손 사장은 450여 그루에서 블루베리를 생산하고 있다. 그런데 4년째 유기농 인증을 받아 블루베리를 재배하면서 수확량이 많지 않다. 연간 수익도 2000만∼3000만 원 정도다. 하지만 손 사장은 수익이 많고 적음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했다. 젊은 시절부터 하고 싶은 일을 하기에 항상 '마음은 부자'란다.

◇독특한 이력 소유자

손 사장은 어떻게 귀농을 하게 됐을까? 이력이 궁금했다. 손 사장은 "남들에게 안 했던 이야기인데…"라며 뜸을 들인다.

1944년 산청군 시천면 내대리에서 태어난 손 사장은 한국전쟁 직후 혼란한 상황에서 국민(초등)학교를 두 번 입학해 남들보다 2년을 더 다녔단다. 그런데 당시 지리산 일대가 빨치산 토벌 등으로 쑥대밭이 되면서 집안 형편이 말이 아니었다고 했다. 겨우 국민학교를 졸업한 손 사장은 공부를 하고 싶은 생각에 무작정 부산으로 갔단다. 그곳에서 한 사람의 도움으로 철공소에서 일을 했고, 과자공장도 다녔다. 제강회사에서 H빔 만드는 일을 하다 반월공단 조성 때 안산으로 가게 됐다고 했다.

"안산 모 회사에서 3년 넘게 근무했더니 당시 이주민 택지분양권을 줬습니다. 그래서 택지에 3층 건물을 지었는데 돈이 부족해 빚을 냈습니다. 그 빚을 갚고자 외국근무를 자청했고, 중동지역에서 가스 플랜트 건설을 했는데 당시 함께 일했던 유럽인이 자신은 귀국하면 귀농할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 사람은 우리나라에서도 근무했는데 우리 농촌이 참 마음에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의 얘기가 큰 울림이 됐죠."

손 사장(왼쪽에서 둘째)과 농기원 전문가가 저장고에서 블루베리 숙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귀국 후 귀농하겠다는 생각은 점점 뚜렷해졌다. "하지만 당시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때라 고민이 많았습니다. 집사람에게 얘기를 했더니 고맙게도 아내가 흔쾌히 동의하더군요."

미련없이 사직서를 냈다. 그렇지만 당장 먹고살아야 했기에 안산에서 떡방앗간을 운영하면서 적지를 물색했다. 그런 손 사장에게 당시 한 귀순자가 내뱉은 '따뜻한 남쪽나라'는 어릴 때 떠난 경남으로 귀향하는 계기가 됐다.

◇귀농 후 단감에서 블루베리까지

90년 1월 '따뜻한 남쪽나라'를 찾아 사천시 사남면에 왔던 손 사장은 마음을 정했다. 그해 4월 기계를 트럭에 싣고 사남면에 떡방앗간을 차렸다. 그게 40대 중반이었다.

사남면에 떡방앗간을 차렸지만 농사지을 땅이 필요했다. "떡방앗간에 오시는 할머니들에게 좋은 땅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었는데 한 할머니가 지금의 농장 터가 나와 있으니 가 보라고 하더라고요. 이 골짜기에 들어선 순간 내가 찾던 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손 사장과 블루베리 인연은 언제부터였을까? "처음엔 단감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고산지대라 인근 지역보다 1주일 정도 수확이 늦었습니다. 내가 단감을 수확할 무렵이면 반값에 거래되곤 했습니다. 내 운명이려니 하고 계속 단감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2000년대 중반 블루베리 바람이 불기 시작했단다. 농민신문에 도농기원에서 블루베리 교육을 한다는 기사가 실렸는데 기회다 싶어 2007년 블루베리로 수종을 갱신했다.

그러나 생소한 작목이라 재배기술이 없던 손 사장은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문제에 부딪히면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 재배기술을 익히는 셈이었다.

그로부터 8년 세월이 흘러 이제 손 사장은 다른 사람에게 재배법을 가르치는 정도까지 됐다.

손 사장이 운영하는 블로그를 보고 전국에서 유기농 재배법을 배우려고 많이 찾는다고 했다. "사실 별다른 기술도 없는데 많은 사람이 농장을 방문합니다. 단지 내가 겪은 시행착오를 그들이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하나라도 더 얘기해 주는데 한편으론 괜히 헛걸음만 하도록 한 게 아닌가 싶어 미안하기도 하죠."

지난 15일 사천 운휴농장에서 블루베리를 수확 중인 (오른쪽부터)이옥자·손해수 부부와 강기학 도농기원 강소농지원단 전문가.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성공 모델' 되고픈 억척 강소농

70이 넘은 나이임에도 손 사장은 젊은 사람들 못지않은 열정을 내뿜고 있다. 매일 힘든 농장일을 마치면 떡방앗간이 있는 사남면 화전리로 내려가 밤늦도록 소비자들이 인터넷으로 주문한 내용을 확인해야 한다. 산 속에서는 인터넷이 안 돼 어쩔 수 없이 마을로 내려온다. 그뿐이 아니다. 개인 블로그에다 페이스북까지 해야 할 작업이 한둘이 아니다. 이런 일 처리를 하다 보면 새벽 2시는 예사란다.

"나이 든 사람이 인터넷을 하려니 속도가 아주 느립니다. 그렇지만 매일 홈페이지와 블로그 등을 관리해야 합니다. 운휴농장 블루베리는 전량 인터넷 주문으로 판매하니까요. 유기농 재배여서 가격이 좀 비싸지만 단골손님이 많습니다. 제때 주문량을 맞추지 못해 미안할 따름이죠." 판로까지 확실히 개척한 강소농이 맞다.

그에게 정년은 언제일까? 도시 사람이면 일선에서 물러나고도 한참 지났을 나이다. "앞으로 10년은 거뜬히 일할 수 있을 겁니다. 힘들면 규모를 줄이면 되죠. 그렇지만 정년과 상관없이 귀농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최소한 '성공 모델'로 남고 싶은 욕심은 있습니다. 체험농장으로 운영하면서 자연상태 그대로 계속 이어가고 싶은 마음입니다."

<추천 이유>

◇경상남도농업기술원 강소농지원단 과수전문가 강기학 = 손해수 대표는 부농의 꿈을 안고 25년 전 귀농해 사천 와룡산 깊은 계곡에서 유기농으로 블루베리를 재배하고 친환경 고구마와 자연산 산채류 등 다양한 농산물을 생산합니다. 특히 사천시 블루베리 연구회장, 사천시 강소농자율모임체 회장 등을 맡아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고객들이 쉬어갈 수 있는 가족단위 체험형 농장을 확대해 많은 소비자가 찾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겠다고 오늘도 구슬땀을 흘리는 진정한 강소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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