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에서 꺼낸 이야기] '전선 도둑'누명 구속 30대 국민참여재판서 무죄 판결

절도 전과 10범에 무죄를 평결한 배심원들 판단은 재판부 의견과 일치했다.

16일 창원지방법원의 준강도미수 혐의자 국민참여재판에서는 이례적으로 피고인 ㄱ(37) 씨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증거 없는 진술, 유사 전과전력만으로 유죄를 선고할 수 없다는 판결이었다.

이날 재판은 국민참여재판이 '재판부 외 판결기회의 확대'라는 본래 의미와 함께 '판결 절차에 대한 대국민 서비스'임을 명확히 보여줬다.

16일 오전 10시 직전 창원지법 315호 법정에 도내 성인 중 무작위로 뽑힌 예비 배심원 60여 명과 각각 2명의 검사·변호인들이 착석했다. 창원지법 형사4부(재판장 오용규 부장판사) 입장과 함께 재판이 시작됐고, 배심원들에게 판결 절차가 소개됐다.

모두절차(검사 공소사실, 변호인 변론 등) → 증거조사절차(증거제출, 증인신문 등) → 피고인 신문 → 종결절차(검사 구형, 변호인·피고인 최후변론 등) → 배심원 평의·평결(유·무죄 여부, 양형 정도 등) → 판결선고 등이었다.

이어진 배심원 선정작업. 비공개라 취재하진 못했지만, 검사·변호인이 각각 자신들에게 불리한 평결을 할 것 같은 예비 배심원들을 때로는 이유를 대고, 때로는 이유 없이 배제 신청하는 과정이다. 60여 명 중에서 1명의 예비 배심원을 포함한 배심원 8명을 압축하는 데 1시간 이상 걸렸다.

오후 1시 30분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됐다. 검찰이 판결 대상인 ㄱ 씨의 공소사실을 소개했다.

"ㄱ 씨가 2015년 3월 25일 낮 12시 25분께 창원시 진해구 진해대로 상에 오토바이를 주차한 채 1t 트럭 위에 있던 전선을 훔치려다 발각돼 피해자 ㄴ(70) 씨 등을 폭행하고 달아나다 검거됐다."

피해자 진술과 현장 사진, 피고인 전과 중 범행수법이 유사한 동종 전과사례 등이 증거로 제출됐다.

변호인단 변론에서는 피고인이 단지 휴대전화를 확인하고자 현장에 머물렀고, 피해자들이 주장하는 전선 절도 현장을 담은 사진이나 폭행의 증거가 없다는 점이 설명됐다. 피해자 진술과 전과전력에 의존한 검찰 기소라는 점도 제기됐다.

이후 피해자 증인 신문과 피고인 신문에서도 같은 내용이 반복됐다. 한국전력 하청업체 종사자인 피해자 2명이 사건 직전 2차례 전선 도난으로 당일 현장 잠복 중이었다는 점, 그 중 1명이 절도현장 사진 촬영을 준비했지만 찍지 못했다는 점, 피고인 전과기록 중 오토바이를 이용한 화물절도 사례가 있었다는 점, 피해자들이 피고인에 대해 선처를 바란다는 점 등이 특이했다.

그리고 결심. 검찰은 피고인 폭행이 강도상해 수준이라며 징역 3년을 구형했다. 변호인은 명확한 증거 없이 전과전력에 의한 전형적 '확증편향'이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이어 1시간 30분가량 배심원 평의·평결 토론이 비공개로 진행됐다. 한 배심원은 "처음엔 무죄, 유죄로 갈렸던 의견이 무죄 쪽으로 좁혀져 갔다. 증거 불충분이 주된 이유였다. 결국 만장일치로 무죄 평결을 했다"고 전했다. 그는 "재판시간은 너무 길었는데 평결 시간은 너무 짧았다. 나중엔 시간에 쫓긴 느낌이 있다"고 덧붙였다. 오전 10시 시작된 재판이 오후 8시 30분께야 끝난 것이다.

선고가 내려졌다. 배심원이 전한 오용규 재판장의 판결은 "증거 불충분으로 피고인은 무죄라는 배심원 평결과 재판부 의견이 일치했다. 무죄를 선고한다"였다.

관련 법률상 재판부는 배심원 평결에 따르지 않아도 되지만 이날은 전적으로 수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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