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진단] 메르스 퇴치 '신뢰 회복'에 달렸다 (상) 공포 부른 정부, 선제 대응 지자체

지난 10일 오전 9시 20분 창원시청 제3회의실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창원지역 5개 거점병원장, 창원시의사회장, 창원시약사회장, 창원소방본부장, 창원교육지원청 교육장, 해군진해기지사령관, 창원지역 4개 경찰서장 등 기관장과 창원시 간부 공무원이 자리에 앉았다. 자리가 정돈되자 안상수 창원시장이 들어왔다.

"지금까지 잘 대응했습니다. 하지만, 한 명이라도 환자가 생기면 지역사회가 불안해질 요소가 많습니다. 창원시가 민간 의료기관을 비롯해 총체적으로 메르스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안 시장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대응 체계를 '주의'에서 '심각'으로 조정했다. 스스로 대책본부장을 맡았으며 정경희 마산보건소 보건행정과장을 TF팀장으로 선임해 실무 책임을 맡겼다. 창원·마산·진해 3개 보건소장이 대책반장을 맡고 그 아래 5개 팀을 뒀다. 창원을 '메르스 청정지역'으로 만들자는 주문은 단호했다. 그날 오후 9시 30분 창원에서 첫 메르스 양성 반응 환자가 나온다.

◇정부가 퍼뜨린 공포 = △확진자 169명 △사망자 25명 △격리자 4035명. 보건복지부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가 21일 오전 9시 현재 발표한 현황이다. 지난달 20일 첫 환자가 발생하고 지금까지 이어진 정부 대응은 '안일', '무능', '오만' 등으로 정리된다. 한 달이 지난 지금 한국은 외국사람이 들어오고 싶지 않은 나라가 됐고, 한국인은 외국에서 꺼리는 사람이 됐다. 사망자가 20명이 넘었고 확진자 한 명이 나오면 기하급수적으로 접촉자가 격리되는 상황에서도 '흔한 중동 독감'이라는 게 박근혜 대통령 인식이다. 그런 청와대가 열 감지 시설을 신속하게 설치했다는 것은 마스크 필요 없다 해놓고 마스크를 쓰고 다닌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과 더불어 여전히 비웃음 대상이다. 메르스에 쩔쩔매는 정부가 기민한 반응을 보인 것은 '괴담 유포'를 향한 경고 정도다. 초기부터 충분한 정보를 확보하지 못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어설픈 정부 대응을 보면서 국민은 두 가지 거대한 적과 맞서게 됐다. 전염병과 공포다.

공포를 낳고 퍼뜨린 주체는 정부다. 정부는 '혼란'을 이유로 한동안 정보를 차단했다. 이 조치가 얼마나 부당했는지는 이후 확진자가 발생한 지방자치단체가 병원과 확진자 동선을 먼저 공개한다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나라 안에서 가장 큰 병원이라는 삼성서울병원이 감염자 공급원이었다는 점도 공포를 부추겼다. 물론 그 사실을 확인한 시발점도 정부가 아닌 박원순 서울시장 기자회견이었다. 정부를 향한 불신은 더욱 쌓일 수밖에 없었다.

정부를 믿지 못한 국민은 온라인에 떠도는 조각난 정보에 의지했다. 주체와 내용을 확인할 수 없지만 터져 나오는 정보는 온라인과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순식간에 퍼졌다. 국민은 정보에 굶주렸고 작은 정보만 얻으면 스스로 공급자가 됐다. 시간이 흐를수록 정부 발표는 믿을 수 없는 게 됐고 스스로 살길을 찾는 게 낫다는 인식이 퍼졌다.

◇접촉자 차단, 정보 공개… 창원시 선전 = 11일 오전 9시 창원시는 '긴급 메르스 확산 방지 대책 회의'를 열었다. 지난 10일 '주의'에서 '심각'으로 전환한 체계는 자연스럽게 선제 대응을 가능하게 했다. 양성 반응을 확인한 창원시는 바로 환자가 입원했던 SK병원과 적극 협의해 병원을 임시폐쇄 조치했다. 일부 병동이나 응급실이 아니라 병원 전체를 폐쇄한 첫 사례였다.

창원시 관계자는 "안 시장과 최윤근 창원보건소장이 상황을 공유해 바로 폐쇄 조치를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4월 개방형 공모로 임명된 최 소장은 지방자치단체에서 보기 드문 전문 의료인 보건소장이다. 대부분 지자체에서 보건소장은 공무원이 맡는다. 메르스 확진자 발생 후 첫 회의에서 최 소장은 당장 환자가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을 거치지 않은 드문 사례라는 점을 먼저 지적했다. 공무원으로서 보고라기보다 전형적인 의사 관점에서 나올 소견이었다. 안 시장은 "청정지역 창원에서 이제 메르스와 전쟁을 치르게 됐다"며 "초기부터 가혹할 정도로 강하게 대응해 피해가 확산하지 않도록 전 기관과 직원이 협조해달라"고 강조했다.

'가혹한 조치'가 이어졌다. 첫 역학조사 결과 격리 대상자는 549명으로 확정됐다. 창원시는 보건소와 5개 구청, 본청 직원을 동원해 격리자 일대일 관리에 들어갔다. 대책본부는 24시간 가동 체제를 유지했으며 정부, 경남도와 연계한 역학조사도 계속 진행됐다.

정보 공개도 기민했다. 창원시는 환자 발생 다음날부터 1일 2회 보고 체제를 가동했다. 환자 동선을 시간대별로 구분해 주요 시설 이름도 실명으로 공개했다. 식당 이름에 착오도 있었고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하소연도 이어졌으나 기본적인 공개 방침은 처음부터 변함없이 유지했다. 환자 상황, 격리 현황 등이 공개됐고 창원시 추가 조치도 밝혔다. 대부분 인력이 현장에 집중된 상황에서 1일 2회 보고 체제는 정보 혼동으로 말미암은 혼란을 일정한 선에서 막을 수 있었다.

막연한 공포를 차단하는 조치도 이어졌다. 메르스 상황 대응이 현장에서 어느 정도 조정이 되자 안 시장과 창원시 간부공무원은 주요 상권을 돌며 홍보 활동에 집중했다. 전통시장과 대형마트, 병원 등을 돌며 일상 활동에 큰 지장이 없다는 것을 알리는 게 목적이었다. 그리고 지난 19일 환자가 4차 검사에서 메르스 음성 판정을 받고 퇴원한다.

창원보건소 관계자는 "당분간 격리 대상자에 대한 모니터링 등 메르스 대응 체계는 계속 이어질 것"이라며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작은 변화에도 예민하게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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