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간다] (10) 고성 상족암

주요한 단서 하나는 터뜨릴 것 같던 꼬마(그레이)가 이빨이 많은 공룡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자 이모 레이첼은 빨간 조명탄을 들고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를 깨운다. 결국 유전자 조합 공룡인 인도미누스 렉스는 육식공룡의 왕으로 불리는 티라노사우루스 렉스와 모사사우루스에게 죽임을 당하고 만다. 최근 개봉한 <쥬라기 월드>의 스포일러다.

22년 전 스티븐 스필버그의 <쥬라기 공원>이 선사한 감동과 전율을 되찾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허탈한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문득 머리가 컸다고 영화의 아우라니 미장센을 운운한 것은 아닐까. 더욱이 공룡 영화를 두고 말이다.

수를 거슬러 세기도 어려운 쥐라기(2억 100만 년 전~1억 4500만 년 전)와 백악기(1억 4500만 년 전~6600만 년 전)에 살았다는 공룡.

어린 시절 공룡 발자국에 가슴이 쿵쾅했던 시절이 있다. 그들의 신비로움에 말을 잃었었다.

영화 <쥬라기 월드>에서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는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상족암에 닿자마자 반기는 것도 티라노사우루스. 공룡공원에 커다란 모형이 들어서 있다. /이미지 기자

'쌍발'이라고 불리던 고성군 하이면 '상족암'은 초등학교 시절 단골 소풍 코스였다. 삼천포와 맞닿은 곳. 단짝 손을 잡고 공룡 발자국 위에 발을 올려본 기억이 선하다.

삼천포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남일대해수욕장 방향으로 달리니 어느새 고성군에 들어섰다. 국도 77호선을 따라가면 거대한 공룡 모형이 고성이 공룡나라임을 알린다.

상족암은 국내 유일 공룡전문박물관인 고성공룡박물관과 청소년수련원, 공룡공원이 잘 갖춰졌다.

고성군은 미국 콜로라도와 아르헨티나 서부해안과 더불어 세계 3대 공룡발자국 화석 산출지다. 특히 군 전역에 공룡발자국이 널리 분포되어 있다. 그중 상족암 일대는 세계적으로 공룡발자국 화석이 많이 모인 곳. 천연기념물 제411호다.

초식공룡 여러 마리가 바다 쪽으로 이동했음을 보여주는 발자국. /이미지 기자

고성 앞바다를 바라보며 상족암공룡길을 걸었다. 화석지 위에 조성된 나무덱을 따라 발자국을 찾아나섰다. 고성 하이면 덕명리에서 발견된 공룡과 새발자국 화석산지에 대한 소개, 초식공룡 조각류 발자국을 설명하는 안내판이 눈에 띈다.

오는 2016년 경남고성공룡세계엑스포가 '공룡, 희망의 빛으로 미래를 열다'라는 주제로 열린다는데 수억 년 전 공룡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뭘까 잠시 생각했다.

초여름날 오후인 만큼 상족암 일대는 캠핑촌이라 할 만했다. 촘촘하게 놓인 텐트와 해먹이 빼곡하다. 공룡 발자국을 찾아 나선 사람은 아이들보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많았다.

'여러 마리의 초식공룡 조각류가 나란히 걸어가면서 만든 발자국이 잘 보인다. 발자국의 길이는 30㎝로 작은 편이며, 발자국 여러 개가 한꺼번에 나타나는 것은 공룡들이 함께 이동했음을 보여 준다'라는 설명을 소리 내어 읽으며 눈은 바다 쪽으로 이어진 작은 발자국을 좇았다. 그 끝에는 바다가, 그 뒤에는 사량도가 보였다. 고성 앞바다는 유자도, 토끼섬처럼 작고 큰 섬이 가득 메우고 있다.

상족암은 바위가 인상 깊다. 코끼리 다리 같은 바위라고 해서 상족암(象足岩)이라고 불렸다는데 한국지명유래집을 살펴보면 암벽의 모양이 밥상다리처럼 생겼다고 해 상족암(床足岩)이라고 유래했단다. 또 인근 주민들은 발자국이 여럿 있다고 쌍발이라고 불렀다.

상족암의 절벽과 땅은 과자 '엄마손파이'같다. 과자는 재료를 겹겹이 쌓아서 만드는데 상족암은 섬세한 물결 모양이 여러 겹 겹쳐 장관을 이룬다.

무른 진흙에서 뛰어놀던 공룡이 남긴 발자국과 수억 년 동안 쌓이고 바닷물에 씻기고 또 쌓이고 바람에 깎였을 세월을 더듬으니 까마득하다. 겹겹이 층을 이루는 판상절리는 공룡발자국과 함께 신비로움을 더했다.

공룡 발자국을 만졌다. 어릴 적 선명하게 기억했던 화석은 어느새 옅어졌다. 내 발에 꼭 맞았던 크기도 달라졌다. <쥬라기 월드>의 감흥과 비슷했다. 20여 년 전 우리만 알던 쌍발은 이제는 세계에 널리 알려진 명소가 됐다. 길가 가로등 모양마저 공룡으로 변한 고장을 보니 그 먼 세월 그 자리에 있었을 상족암이 그려진다.

억겁의 세월은 층층이 쌓여 우리를 맞는다. 그 세월에 경외심마저 든다.

어쩌면 자연 앞에 인간의 존재가 얼마나 나약한지를 깨닫게 해주겠다는 <쥬라기 월드>의 직접적인 대사가 딱 맞다.

심란한 요즘이다. 공룡발자국 위에 서서 먼바다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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