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비춤]메르스 앞 우리들 민낯

메르스…. 섬뜩하다. 그 자체만이 아니다. 그를 통해 드러나는 우리네 모습도 그렇다. 메르스 확진자뿐만 아니라 의심자, 그리고 그 가족까지 무차별적인 비난 대상이 된다. 타인에게 피해 줬다는 이유를 들어 스스로는 타인에게 고통 주는 것을 제어하지 못한다. 불안과 공포가 드리운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으로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무거운 마음만은 어쩔 수 없다.

밀양에 사는 ㄱ 씨는 누나와 함께 17일 새벽에 서울로 향했다. 목적지는 삼성서울병원이다. 여든 넘은 어머니는 폐 쪽이 좋지 않다. 10년 전부터 삼성서울병원에 다니게 됐다.

지난달 27일 수술을 위해 이 병원을 찾았다가 이곳에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가 발생하면서 계속 머물러야만 했다. 어머니가 이 병원을 찾은 날, ㄱ 씨와 누나 ㄴ 씨도 함께했다. 그 때문에 둘 역시 3일간 자가격리에 들어갔었다.

그러는 사이 누나에 대해 좋지 않은 소문이 지역사회에 퍼졌다. 삼성서울병원에 머무른 사실을 보건 기관에 스스로 알렸다. 하지만 사람들은 숨기고 있다가 발각된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 때문에 '신상털이'를 당했다. 자가격리가 풀렸지만 이전에 없던 주변 시선을 여전히 감내하고 있다.

ㄱ 씨는 자가격리가 끝나자마자 회사에 출근했다. 사장이 '좀 더 쉬는 게 낫지 않느냐'고 했다. 걱정보다는 꺼림칙하다는 말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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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씨는 회사 내에서 마스크 착용을 잊지 않았다. 자가격리가 끝났지만 체온계를 보건소에 반납하지 않고 하루에 수십 번씩 체크했다. 주변 사람을 위해서, 그리고 위암 수술 경험이 있는 자신을 위해서, 철저한 관리를 했다.

이렇듯 ㄱ 씨와 ㄴ 씨는 불편한 주변 시선, 그리고 삼성서울병원에 홀로 남아 있는 어머니에 대한 걱정을 동시에 떠안았다.

자식들은 그동안 발만 동동 구른 채 전화로만 소식을 전해 들을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가 있는 삼성서울병원은 검사실도 폐쇄되는 등 일반환자에 대한 진료가 어려워졌다. 소변 호스를 몸에 찬 채 가퇴원하기로 결정 났다.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서울로 간 남매는 오전 9시 30분에 삼성서울병원 앞에서 기다렸다. 병원 폐쇄로 환자가 나오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병원비 정산도 바깥에서 카드번호를 불러줘서 처리하는 식이었다.

그때 회사 사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애초 어머니를 모시러 삼성서울병원에 간다는 사실을 숨김없이 말하고 하루 휴가를 냈다. 그리고 병원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한다는 사실을 자세히 설명했던 터였다.

사장은 전화에서 같이 일하던 동료 한 명이 한 달간 휴직계를 냈다는 소식을 전했다. 폐암에 걸렸다가 완치된 바 있는 동료였다. ㄱ 씨가 삼성서울병원을 다시 찾는다는 이야길 듣자 동료는 불안한 마음을 숨기지 않고 당분간 쉬기로 한 것이다.

이에 사장은 '당신이 휴직하는 게 어떠냐'는 말을 꺼냈다.

순간 ㄱ 씨는 이 상황이 너무 힘겹게 다가왔다. 자식 된 처지에서 어머니를 모시러 가는 건 당연했다. 혼자 삼성서울병원에서 힘든 시간을 보냈을 어머니에게 온 신경이 집중돼 있는데, 이런 전화까지 받았다. 언성이 높아졌다. ㄱ 씨는 "차라리 내가 퇴사하면 되겠느냐"고 했고, 사장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당일 바로 퇴사 처리 되었다. 회사 내에서 최장기간 근무자였던 그는 한순간에 직장을 잃었다.

"자식 된 도리에서 그럼 어머니를 나 몰라라 해야 합니까? 단지 삼성서울병원에 갔다는 이유만으로 직장까지 잃게 된 것 아닙니까. 물론 회사에서도 다른 사람들 말이 있다 보니 그 입장은 이해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다음날 회사 출근했을 때 '어머니는 괜찮으시냐'고 말 한마디라도 먼저 하고 나서, '상황이 그러하니 당신이 휴직하는 것이 어떻겠냐'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누나는 지역사회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고, 나는 직장까지 잃게 됐고, 어머니는 또 그런 자식들 때문에 가슴앓이하고…. 죄인 아닌 죄인이 따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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