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땜질식 대응'아닌 명문화된 취재 안전수칙 마련을

"메르스 까짓것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게 목소리를 높였는데, 확진환자가 입원한 병원에 오니 왠지 긴장된다."

경남지역 한 방송기자가 얼마 전 SNS에 올린 글입니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으로 불안해하는 것은 기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10일 경남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창원에서 양성환자가 나왔을 때 창원중부경찰서 기자실 분위기가 매우 어수선해졌다고 합니다. 해당 환자가 격리된 병원이 창원중부서 출입기자들 담당 지역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자들은 불안해하면서도 현장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 <기자협회보>나 <미디어오늘> 같은 언론전문매체에 최근 '메르스 취재진 안전에 비상'이라는 취지의 기사가 잇달아 났습니다. 메르스가 확산하기 시작한 이달 초 자가격리 대상자를 취재하던 기자 중에는 취재 후 자신들도 자가격리에 들어간 이들이 많았습니다. 이후 격리 대상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그 때문에 '메르스 현장'에 있는 기자들도 언제, 누구에게 감염될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만약 기자 중에 확진환자라도 나오면 언론사 건물 자체가 폐쇄될 수도 있겠지요. 그러면 해당 언론사는 '생업 활동' 자체가 어려워집니다. 물론 최악의 상황이 그렇다는 겁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을 가정하더라도 대책이란 게 '의심 증상을 보이면 아예 회사에 오지 마라'가 유일하다는 겁니다.

지난 7일 오전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중강당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취재진이 삼성서울병원장의 메르스 관련 공식 입장에 대한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부로 끝난 지역 신문사 취재 안전의식 = 지역 언론사 중에서 방송사들은 그나마 낫습니다. 본사 차원에서 취재 안전수칙을 마련하고 발 빠르게 마스크를 지급했으니까요. 예컨대 KBS 창원방송총국이 기자들에게 안내한 취재 안전수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안전 장구 갖추고 취재할 것. (마스크와 장갑 착용)

2. 의심 환자는 1:1 대면 취재 피하고, 전화 취재할 것.

3. 메르스 증세(발열, 기침, 오한 등) 발생 시 즉각적으로 자가격리할 것.

하지만 경남지역 주요 신문사들은 회의를 할 때나 취재 보고를 할 때 조심하라는 당부를 하는 정도가 고작입니다. 따로 안전수칙을 마련한 곳은 없었습니다.

<경남도민일보>는 지난 10일 경남에서 메르스 양성환자가 나오자 편집국 내부게시판에 편집국장이 '취재기자들 다 조심합시다, 마스크도 쓰고'라는 글을 올린 후 별다른 공지는 없었습니다. 다만 일상적으로 서로 조심하자는 이야기는 나누고 있습니다.

<경남신문>도 편집회의 때 부서장들에게 위생관리를 잘하라고 당부하고, 특히 외근기자들에게 특별히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회사 게시판에 정부가 배포한 메르스 안전수칙 정도는 붙여놓고 있다고 합니다. <경남일보>도 데스크에게 주의를 환기시키고 병원 등 현장에 접근하는 기자에게 조심하라고 일러주는 수준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경남도민일보>와 <경남일보>는 경남에 양성환자가 나온 지 5, 6일이 지나서야 기자들에게 마스크를 지급했습니다. 마스크 품귀 현상 때문이었답니다.

물론 현재 경남지역 메르스 취재 환경을 보면 기자들이 확진환자를 직접 만날 가능성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만에 하나 기자 중에 양성환자라도 나오면 신문 발행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사실은 다들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스갯소리지만 '메르스 감염되면 퇴사시킨다'는 엄포까지 나오는 거겠지요.

결국 지금으로서는 기자 스스로 알아서 조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어떻게든 현장으로 갈 수밖에 없는 사진기자들은 더욱 신경이 쓰이겠지요. 한 사진기자는 "병원이나 환자에 접근하지 않고 초망원렌즈를 활용해 멀리서 취재한다"고 말합니다.

◇재난 취재 안전수칙 마련해야 = 하지만 앞으로 비슷한 일이 생길 때마다 계속 이렇게 '주먹구구'로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지역신문사 공통으로 하든, 개별적으로 하든 지역 실정과 신문사 내부 사정에 맞는 '재난 취재 안전수칙' 정도는 마련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는 지역신문사 생존과 관련한 일이기도 하지만, 기자 안전을 확보해 지역민들에게 더욱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려는 것입니다.

지난해 9월 한국신문협회, 한국방송협회,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기자협회, 한국신문윤리위원회는 공동으로 '재난보도준칙'을 만들어 발표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보도에서 드러난 언론의 부끄러운 민낯을 반성하려는 뜻에서 마련한 것입니다. 다르게 생각하면 이 준칙 자체는 지역 언론사들이 자체적으로 재난 취재 안전수칙을 마련하는 데 좋은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

재난보도준칙은 태풍이나 홍수 같은 자연재해나 대형 사고, 테러를 포함해 '급성 감염병, 인수공통전염병, 신종인플루엔자, 조류인플루엔자(AI)의 창궐'도 재난의 한 종류로 보고 있습니다. 특히 내용 중에 '취재진의 안전 확보' 항목이 따로 있습니다. 재난 취재 시에 취재진이 어떻게 안전 조치를 하고 이를 위해 언론사들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적어놓았습니다.

<재난보도준칙 중>

제2장 취재와 보도 3. 취재진의 안전 확보

제24조(안전 조치 강구) 언론사와 취재진은 취재 현장이 취재진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취재에 앞서 적절한 안전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제25조(안전장비 준비) 언론사는 재난 취재에 대비해 언제든지 취재진에게 지급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안전보호장비를 준비해두어야 한다. 취재진은 반드시 안전장비를 갖추고 취재에 임해야 한다.

제26조(재난 법규의 숙지) 재난 현장에 투입되는 취재진은 사내외에서 사전교육을 받거나 회사가 제정한 준칙 등을 통해 재난 관련 법규를 숙지해야 하며 반드시 안전지침을 준수해야 한다.

제27조(충분한 취재 지원) 언론사는 재난 현장 취재진의 안전·교통·숙박·식사·휴식·교대·보상 등을 충분히 지원해야 하며, 사후 심리치료나 건강검진 등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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