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영장 발부 법 남용 아닌가…지원, 방화·실화 규정 따른 것 "집회 화염병에 적용 무리"반발

9일 자 <한겨레> 31면에 실린 칼럼 '머리카락'에서 밀양송전탑 반대대책위 이계삼 사무국장의 분노와 마주쳤다.

"나도 머리를 깎았다. 내 밀양송전탑 싸움의 동료이자 친구인 김정회에게 법원의 DNA 채취 영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흉악범죄자의 DNA를 채취하는 것에도 결단코 반대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이 시대 젊은이의 사표가 되어 마땅한 존경스러운 농민 김정회에게 DNA 채취 영장이라니. 검찰이 영장을 청구한 다음 날 법원이 영장을 발부해주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김정회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집으로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나도 머리카락을 잘라야겠다고 다짐했다. 지금 이 나라, 공화국은 '집단모멸체제'이다. 이 나라에서 사는 것이 그저 욕되다. 안타깝고, 추하다."

수습해볼 도리가 없는 심연의 상실감마저 느껴지는 분노였다. 이 일의 발단은 지난 1일 창원지검 밀양지청 집행관이 단장면 농민 김정회 씨에게 DNA 채취를 요구한 것이다.

'DNA 신원확인 정보의 수집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은 재범 가능성이 우려되는 범죄자의 DNA 채취를 합법화했다. 제정 당시부터 기본권침해 논란이 강하게 제기됐고, 헌법재판소 등은 재범 가능성이 우려되는 흉악범에 한해 채취하도록 엄격하게 제한하는 내용의 판례를 내놨다.

특히 제정 목적과 달리 수사기관이 노동쟁의와 집회·시위 중에 발생한 범죄에 이 법을 적용해 DNA 신원확인 정보를 수집함으로써 참가자들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점은 주된 개정요구 내용이다.

김정회(43) 씨는 2013년 3월 밀양시 단장면 96번 송전탑 건설 현장에서 화염병을 던져 일반물건방화죄가 적용돼 지난 2월 징역 2년·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 외 범죄 전력이 없는 그에게 검찰이 DNA 채취를 요구했다.

지난 4일 통화에서 창원지검 밀양지청 집행관은 "법률상에 DNA 채취 요구의 근거가 언급돼 있다. 채취 집행 영장도 3일 청구한 상태"라고 말했다. 관련 법 제5조 '수형인 등으로부터의 디엔에이 감식 시료 채취' 1항 '방화와 실화의 죄' 규정에 따른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칼럼에서도 읽히듯 이계삼 국장이 분노한 더 큰 이유는 검찰의 영장 요구가 아니라 법원의 영장 발부였다.

법 남용을 엄격히 제한하는 헌법재판소 판례, 집회·시위 중 발생한 범죄에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개정요구가 계속되는 마당에 법원이 이를 감안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창원지법 밀양지원 한영표 지원장은 이에 대해 "관련 법률상 방화죄에 DNA를 채취하도록 규정돼 있다. 방화가 강력 범죄에 포함되기 때문에 영장 청구를 받은 법원으로서는 발부할 수밖에 없다. 해당 법률이 개정되기 전에는 달리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이 국장은 통화에서 "아직 DNA 채취가 집행되지는 않았다"고 했다. 검찰이 이쯤에서 관련 일정을 중단하는 게 분노를 확산시키지 않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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