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확산 대응에 무능한 현 정권…역경 헤쳐나갈 시민의 지혜 믿는다

TV를 통해 수도권의 전염병 소동을 들여다보며 볼멘소리로 구시렁거리면서도 여유가 있었던 것은 내 코앞에 당도하기엔 아직 이른 멀찍한 강 건너의 불구경이었기 때문이었을 테다. 4일 인근 사천에서 메르스 의심환자가 생겼다는 말을 듣는 느낌은 불이 발등에 떨어진 것이었다. 나누는 인사가 '메르스'가 된 이웃들도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다행히 하루가 지나 보고된 검사 결과가 음성 환자로 밝혀져 모두 한숨을 내쉬었지만 다만 도계를 넘어오지 않은 것일 뿐 불안은 여전했다. 아니나 다를까 자고 일어나니 밤새 확진 환자가 14명이 늘었다는 반갑잖은 소식이 들리고 이제 부산까지 왔다 한다.

환자 발생 19일 만에 뚱딴지같이 '긴급'대책 발표를 한다길래 TV 앞에 앉았다. 궐위의 총리를 대행하는 부총리가 외국 방문 일정을 접은 채 달려와선 예고한 회견 시각을 한 시간이나 넘긴 후 나와 하는 소리의 골자는, 환자가 발생한 6개 병원과 환자가 거쳐 간 18개 병원 등 총 24개 병원의 명단이었다. 왜 저걸 저리 쥐고 앉아 온갖 근심을 더 돋웠을까. 평택과 수도권의 병원 다수가 포함됐지만, 더 들여다보면 감염 확산의 요처인 삼성서울병원의 공개 여부가 정부의 근심이었던 듯하다. 보고 앉았나니 좀 어이가 없다.

초기에 노란 옷(비상사태가 일어났을 때 벼슬아치들이 단체로 입기로 했나 보다) 입은 사람들이 마이크 앞에 나와 "별것 아니다"라고 흰소리를 쳤었다. 심지어 "마스크도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잇따라 등장하는 뉴스 속 '노란 옷짜리'들이 근엄한 표정으로 숫자들을 나열했지만, 동나는 것은 마스크와 소독약이었다. 과묵한 대통령의 메르스 언급은 발생 14일 만이었고 자자한 원성에 떠밀린 듯한 병원 방문은 확진 환자만 무려 50명에 이른 17일째 되는 날이었다. 대통령도 하마 나처럼 강 건너 불구경하는 심사였을까.

역병이 돌아도 정부란 것이 쉬쉬거리며 노란 옷만 펄럭거리고 다닐 뿐이다. 사명감 있고 대찬 민완기자가 속속들이 헤집어 등을 긁어주는 것도 아니니 기댈 데도 믿을 곳도 없다. 정보력이 정보부 못잖다는 '대치동' 학원가가 바짝 얼어 문을 닫고서야 사태가 심각한 것을 느낄 뿐이다. 허둥대는 정부를 비웃듯 역병은 창궐의 기세다.

이 와중에 SNS에서 발견한 두 개의 코드는 '그럼에도' 기죽지 않는 발랄함과 '살아 있음'이었다. 그 하나는 '메르스 확산지도'이다. 치료제가 없다는 신종 전염병이 돌고 있는데 두렵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적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을 때 증폭되는 것이 공포다. '메르스 확산지도'는 그 공포를 직면케 하는 백신이었다. IT 기업 '데이터스퀘어'가 만든 이 프로그램은 일부 언론이 공개한 메르스 확진 환자 사망 병원과 시민들이 제보한 감염 환자가 다녀간 병원을 구글 지도 위에 표시했다. 한눈에 상황이 가늠되며 새로운 제보에 의해 업그레이드된다. 능동적 집단지성의 발현임이니 보기에 놀랍거니와 든든하다.

또 다른 하나는 '아몰랑' 타령이다. 이 생면부지의 단어를 뒤쫓아 가보면 '아, 몰라'라는 말의 뒤에 'ㅇ'을 붙인 신조어다. "아, 나로서는 잘 몰라!(딱히 근거도 없지만 이쯤 말했으면 알아서 알아듣고 공감을 해 줘야지 왜 꼬치꼬치 캐물어?)"라는 의미란다. 이를테면 논쟁을 벌이다가 더는 논리로 이길 자신이 없을 때 '아, 몰라' 하고서 휙 돌아서서 싸움을 끝내버릴 때 쓰는 말이란 것이다. 정부의 비밀주의와 늑장대응으로 비화된 사태임에도 유언비어 강력 단속, 엄단, 엄벌 등의 용어로 윽박지르는 한심한 벼슬아치들에게 날리는 조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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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소식의 와중에도 시시각각 변주되는 이 배꼽 잡는 유머 코드를 뒤지며 이 어이없는 시절을 웃는다. 창궐하는 전염병이 두렵고 정권의 무능은 더 소름 돋지만 그럼에도 이 역경을 헤쳐 나갈 지혜로운 '우리'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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