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농을 찾아서] (93)산청 왕산 쌍재마을서 약초 재배하는 석재규 최윤미 부부

농장 위치를 알고자 전화를 했더니 안주인께서 길이 헷갈릴 수 있다며 열심히 설명하신다. 엉뚱한 방향으로 갈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내비게이션을 믿었다. 기계가 안내하는 대로 갔더니 안주인이 설명하던 곳과 많이 다르다. 그제야 '경고'한 의미를 깨달았다. 길을 헤매느라 약속한 시간은 벌써 30분을 훌쩍 지났다. 그렇게 전화로 묻고 또 물어 만난 사람은 산청군 금서면 쌍재로 377-38, 왕산 중턱 쌍재마을에서 산양삼과 당귀·곰취 등 약초와 산채를 재배하는 석재규(56)·최윤미(53) 부부다.

◇해발 500m 야산에서 자연에 맡겨 기르는 약초·산채 = 농장이라고 했는데 엄밀히 말하면 해발 500m의 그냥 야산이었다. 등산객이나 약초꾼이 들어가지 못하게 철조망이 쳐져 있고 출입금지 안내판이 있어서 약초재배지라는 것이 느껴질 뿐 깊은 산속이었다.

"대략 12∼13㏊ 정도 됩니다. 하지만 관리한다기보다 자연에 맡겨두고 있습니다. 넓은 야산이다 보니 씨 뿌리고 나오는 것만 수확해도 제때 다 못 거둬들입니다. 그래도 지금 방식이 일도 수월하고 가격도 제대로 받고 좋습니다."

석재규(왼쪽) 사장과 도농기원 약초전문가 이용호 박사가 야산에서 자연이 키우는 당귀의 생육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약초 키우는 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한참 임도를 따라 오르더니 길이 없는 산으로 들어선다. 그렇게 좀 더 들어가던 석 사장이 걸음을 멈춘다. "여기가 당귀밭입니다. 보시다시피 씨를 뿌렸다할 뿐이지 풀과 함께 자라고 있습니다."

좀 황당했다. 산속이라도 밭이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건 그냥 야산에 약초 몇 그루씩 자라고 있다. 산양삼 밭도 그랬다. "저만의 방식인 '게으름뱅이 농법'입니다. 자연에 맡겨 키우고, 필요한 만큼 캐죠. 그래도 일이 많습니다. 약초에 장애가 되는 수풀도 제거해야 하고 수확 철이면 캐고, 씻고, 가공처리에 여간 바쁜 게 아닙니다."

눈으로 확인한 당귀와 산양삼, 오미자 외에는 뭘 키울까? 석 사장은 설명 대신 비닐하우스 한쪽을 가리킨다. 개똥쑥, 산뽕, 엄나무, 당귀, 헛개나무, 꾸지뽕, 익모초, 화살나무, 오가피 등 내가 아는 이름 외에도 생소한 마른 약초들이 진열돼 있다. "지리산둘레길을 걷는 사람들이 주고객인데 개개인이 모두 약초 전문가입니다. 등산객이 인터넷 등으로 약초를 주문하면 직접 산에서 캐거나 말려둔 것을 택배로 보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 부부가 얻는 수익은 1억 원 정도 됩니다. 여기엔 물론 지리산둘레길 수익을 합친 겁니다."

그러고 보니 잊은 게 있었다. 지리산 둘레길 5구간이 석 사장의 농장을 지나간다. 부부는 비닐하우스 쉼터를 지어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요깃거리는 물론 막걸리 등을 판다.

◇지친 심신 쉬고자 찾았던 고향 땅, 쓰라린 경험도 = 석 사장이 깊은 산골짜기에서 약초를 재배하려고 마음먹은 과정이 궁금했다. 잠깐 생각에 잠기던 석 사장이 지나온 삶을 끄집어낸다.

어릴 때 고향을 떠나 부산에서 대학을 졸업한 석 사장은 직장생활이 만족스럽지 못했다. 결국 직장을 접었는데, 집에만 있기가 답답해 고향인 쌍재마을을 왔다갔다 했단다. "주말이면 이곳에 들어왔다가 나가곤 했는데 점차 시골에서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게 12∼13년 전인 2002∼2003년이었다. 부산 토박이인 아내는 은행에 근무했는데 시골에 사는 것을 반대했다. 하지만 석 사장이 쌍재마을에 정착하고 1년쯤 지날 무렵 사표를 내고 산골로 들어왔다.

"사실 지금은 우리만 사는 깊은 산골 같지만 어릴 땐 15가구 정도가 살았습니다. 마을이 한창 번성하던 때엔 30가구까지 살았다고 했습니다."

석 사장은 처음 염소를 키웠다. 철망을 치고 인근 마을을 돌며 염소를 사모았다. 한때 300마리까지 늘렸지만 문제는 판로였다. "자란 염소를 한꺼번에 내다 팔아야 목돈을 쥘 텐데 한두 마리씩 팔아서는 남는 게 없었습니다. 게다가 가끔 동네 개들이 물어 죽이기도 하고 울타리 밖으로 도망가기도 해 점차 마릿수가 줄더니 어느 날 스무 마리 정도 남아 있더군요."

쓰라린 실패였다. 부산 아파트를 처분하고 남은 몇천만 원은 염소를 들이면서 사라져버렸다. 그때 산청에서 약초 바람이 불었다. 석 사장은 약초 재배를 결심하고 재배법을 공부했다.

"2만 3000평에 천궁과 당귀를 심었습니다. 약초가 아주 잘 됐습니다. 대구 한 제약회사가 보고 값도 후하게 쳐서 전량 구매하겠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약초를 가져간 이후 말이 달라졌습니다.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후려치는데 당할 재간이 없었습니다. 물론 내 실수도 있었죠. 말로 주고받은 가격이었으니까요." 염소 사육 실패에 이은 두 번째 뼈아픈 경험이었다.

◇어린아이 도시에 둔 채 시골생활 "가슴 아린 기억" = 귀농·귀촌이란 말이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것이 아니었다. 석 씨 부부도 그랬다. 귀농하던 당시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녔는데 그나마 부산에서는 외할머니가 돌봐 마음을 놓을 수 있었지만 아이들을 좀 더 가까이 두고자 진주로 전학시킨 이후 아이들끼리 생활했단다. 그래서 지금도 그때만 떠올리면 가슴이 아린다.

"누나인 큰 애가 동생을 데리고 살았죠. 우리 부부가 매일 진주를 나갈 수 있는 처지도 못됐고요. 그러다 보니 휴대전화로 통화를 자주 하는데 당시 전기가 들어오기 전입니다. 배터리를 아껴 아이들과 통화하는데 이런 날 지인에게서 전화가 걸려오면 참 난감했습니다. 지인들은 빨리 전화를 끊으려 하는 우리 마음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불필요한 오해를 받기도 했지요. 돌이켜보면 아이들에게 참 미안했던 시절이었죠."

그런 아이들이 이젠 성년이 됐다. 딸은 대학을 졸업했고, 아들은 대학에 다니는 중이다. 더욱이 아들은 한약재 관련 학과에 다녀 부모의 삶이 자식들에게 나쁜 영향을 준 것 같지 않아 다행스럽다.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참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자연과 더불어 또 자연에 맡겨 약초 키우는 지금 생활에 만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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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접 담근 효소를 든 석재규·최윤미 부부.

◇효소·장아찌에 빠진 아내, 이젠 마음의 여유 생겨 = "요즘 아내는 효소 만들고 장아찌 담그는 데 빠져 삽니다. 저게 엉겅퀴인데 효소를 만들려고 말리는 중입니다. 엉겅퀴는 굳이 씨를 뿌릴 필요가 없습니다. 수확한 곳에서 2∼3년만 지나면 다시 엉겅퀴 밭이 되죠. 수확해야 할 약초들이 한둘이 아니라서 다 수확할 수도 없습니다."

석 사장은 올해 곰취 수확을 포기했다. 다른 일이 겹쳐 채취는 엄두도 못 냈다고. 그렇다고 아쉬울 것도 없다. 내년에 수확하면 된다.

"산 속에서 나는 모든 게 다 효소와 장아찌 담그는 재료라 요즘 아내는 무척 바쁩니다. 그런데 산 속이라 그런지 효소를 담그면 다 잘됩니다. 아내는 효소를 만들고 다듬을 수 있는 작업장을 갖는 것이 꿈입니다."

석 사장의 산중생활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글쎄요. 내 건강이 유지된다면 계속 산에서 약초를 기르고 싶습니다. 다행히 아들이 약초에 관심이 많고 재미도 있다고 하니 나중엔 부자가 함께 약초를 재배하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20∼30년이 지난 뒤 여전히 지리산 둘레길 5코스 쌍재마을에서 부부가 아들과 함께 약초를 키우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그 풍경이, 그 마음이 참 여유로울 듯싶다.

<추천 이유>

◇경상남도농업기술원 강소농지원단 약초전문가 이용호 박사 = 귀농 13년 차인 석재규 대표는 산청 왕산 쌍재 기슭의 넓은 대자연 환경을 활용, 약초를 재배하며 산청 약초산업 발전의 선구자 역할을 해왔습니다. 산양삼과 참당귀, 오미자, 엄나무, 참죽나무, 엉겅퀴, 칡 등 기능성 약초와 참취, 곰취, 다래나무 순 등 산채를 친환경적으로 재배하는 억척의 강소농입니다. 특히 자연을 벗 삼아 참당귀, 천궁 등 3만 3000㎡를 재배하면서 도시소비자 중심으로 자연산 먹거리를 연중 생산·공급하는 친환경농업의 진정한 농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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