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 통제 공권력 불신이 크다는 방증…정부, 잃어버린 신뢰 회복 노력 우선해야

인류는 지구상에 등장한 이래로 바이러스와 전쟁을 치러왔다. 바이러스는 인류 생존의 치명적 존재이지만 넓은 관점에서 보자면 인류와 공존해왔다. 진화의 오랜 역사 동안 바이러스는 가급적 각자의 활동구역을 지키며 살아왔다. 주목해야할 사실은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바이러스의 '활동구역'이 점점 더 빨리 뒤섞이고 있다는 점이다. 활동구역이 뒤섞이자 바이러스의 진화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숙주가 자연선택을 받아 멸종하거나 진화하면서 바이러스에게도 자연선택이 다양하게 일어난 것이다. 신·변종 바이러스의 출현은 자연선택의 결과인 동시에, 숙주와 바이러스의 공진화의 결과이기도 하다.

21세기 벽두의 지구촌에 불이 났다. 2009년 '신종플루'에 이은 2014년의 '에볼라 바이러스', 그리고 올해의 '메르스 바이러스'라는 불이다. 서아프리카에서 창궐한 에볼라는 의료진이 도와주러 '가야한다, 가지마라' 논란이 한국에서도 뜨거웠다. 에볼라 바이러스의 높은 감염률과 50~90%에 이르는 공포의 치사율 때문이었다. 이번에 발생한 메르스 바이러스는 중동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한 바이러스로 사스와 유사한 고열, 기침, 호흡곤란 등 호흡기 증상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라 한다. 질병관리본부의 보고에 따르면 치사율은 40%에 이른다.

세계적 전염병을 통제하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전염병 경보단계가 있다. 그중 최고 위험등급인 6단계가 '판데믹(pandemic)'이다. 그리스어인 '판데믹'은 모두(pan) 사람(demic)이라는 의미로 세계적으로 전염병이 대유행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역사적인 판데믹으로는 14세기 중세 유럽인구의 3분의 1이 사망한 페스트(흑사병)와 1918년의 스페인 독감, 그리고 1968년의 홍콩 독감 등이 그 예다.

바이러스의 판데믹은 소설과 영화의 단골소재가 된다. 특히 바이러스에 의한 지구 종말의 디스토피아 시나리오가 가장 흔하게 차용된다. 볼프강 페터젠의 <아웃브레이크(1995)>, 제임스 맥티그의 <인베이젼(2007)>, 스티븐 소더버그의 <컨테이젼(2011)> 등이 하버드 의대 출신 작가인 로빈 쿡의 소설이 원작이었다. 그중에 <아웃브레이크>는 치명적 바이러스를 보유한 아프리카 원숭이가 미국으로 건너가 새로운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내용이었다. 영화 속의 바이러스가 에볼라 바이러스와 유사해서 최근 화제가 되었다.

2013년 개봉했던 김성수 감독의 <감기>는 한국에서 바이러스의 '판데믹' 사태가 일어나면 어떻게 될지 생각하게 해준 영화다. 한국 정부가 판데믹을 막기 위해 한 도시를 통제하고 시민들을 동물 살처분 하듯 생매장하고 태우는 장면은 비록 영화지만 끔찍한 장면이었다. 그러나 이 장면은 감염 발생 초기대응에 실패하고 우왕좌왕하다가 결국은 전국적으로 수천만 마리의 가축을 생매장 살처분 해야 했던 2011년 돼지 구제역사태의 현실을 그대로 재현한 것일 뿐이다.

'지나친 과장이다' 혹은 '사람과 돼지가 같냐'고 따지는 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1918~1919년 전 세계에서 창궐한 스페인독감은 당시 세계인구의 30%인 5억 명을 감염시키고 5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한국에서도 740만 명이 감염되었으며 이들 중 14만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악명 높은 스페인독감의 평균 치사율이 10%에 불과했다. 그러니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치사율이 높은 에볼라나 메르스 같은 바이러스에 대중들이 공포심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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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들 사이에 괴담과 음모론이 바이러스보다 빠르게 퍼진다는 것은 그만큼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가 크며, 또한 질병을 통제하는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 크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정부는 괴담유포자를 처벌하겠다는 엄포보다 바이러스 초기대응에 실패해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기 위한 노력을 우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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