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오후 8시20분, 일도 사랑에도 욕심을 부리며 당차게 생활하는 여인 장미. 주말 오후 7시50분, 사랑하는 남자의 아이를 가진 채 버림받은 가엾은 여인 지숙이 창백한 얼굴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 상반된 인물을 연기하는 탤런트는 김지수.

아무리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탤런트’라는 명칭에 걸맞게 카멜레온처럼 변신을 잘 한다고 해도 일주일 내내 MBC <온달왕자들>에서 해맑은 웃음으로 부족할 것 없는 커리어 우먼을 연기하다 주말 <태양은 가득히>를 통해 화장기를 지우고 남자에게 버림받아 인생의 목적을 잃은 듯 헤매는 이 여인을 시청자들은 따로 볼 ‘탤런트(재능)’가 없는 탓에 자꾸 얼굴이 겹친다.

신데렐라 스토리의 계보를 잇는 KBS2 <귀여운 여인>에서 착하고 똑똑하고 악착같이 살아가는 한수리에서 MBC <엄마야 누나야>에서 룸살롱에 다니며 남자의 발톱까지 깎아줄 정도로 헌신적인 여인 행자로 변신하는 박선영을 또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주연급 연기자들의 중복출연이 심하다. 그것도 너무나 상반된 역할로 브라운관에서 웃었다 울었다 하며 시청자들을 헷갈리게 하고 있다. 비슷한 역할을 맡으면 자기 자신도 헷갈릴테니 확실한 다른 역으로 연기력을 인정받겠다는 심산인지 모르겠지만 이들을 ‘보고 또 보고’할수록 드라마에 대한 집중력은 계속 떨어진다.

이는 중견탤런트들도 마찬가지. PSB 일일시트콤 <웬만해선 이들을 막을 수 없다>에서 소심하고 쫀쫀한 할아버지 신구는 금요일 KBS <사랑과 전쟁>에서 이혼 위기의 부부를 중재하는 진지한 인물이 되어 있고, 중재위원 정애리도 PSB <순자>에서는 청춘을 갈구하는 ‘한물간’ 왕년의 여배우로 코믹한 캐릭터를 소화하고 있다.

60년대 어떤 연기자는 당시 자신이 맡았던 역할이 강해 다른 드라마에 출연할 엄두가 안나 ‘그 드라마 속의 그 배우’로 남았다는데, 지금 연예계는 ‘연기자’의 정체성에 대해 심각히 고민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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