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토요 동구밖 생태/역사 교실] (4)
생태체험-거제어촌민속전시관~학동해수욕장
역사탐방-의령 곽재우 생가~백산 안희제 생가~정암진·정암철교

(생태체험) 거제어촌민속전시관~학동해수욕장

5월 생태체험은 회원한솔·샘동네·옹달샘·느티나무·어울림 지역아동센터 아이들과 함께 물고기를 주제로 삼아 진행했다. 경남에서 물고기잡이가 가장 성한 데를 꼽으라면 거제가 빠질 수는 없다. 거제와 가까운 통영이 중앙시장·서호시장의 엄청난 활기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어업 관련 유통 물량이 많기는 하지만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고 조개를 건져올리는 등은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거제가 더 많겠다.

창원에, 그리고 마산과 진해에 바다가 있는데도 굳이 거제를 찾아 생태체험을 나서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거제어촌민속전시관이라는 훌륭한 시설이 다름 아닌 거제에 자리잡은 까닭도 다르지 않을 것 같다. 한 번 둘러보면 바로 알 수 있듯이 전시돼 있는 물고기(박제 등)들 대부분이 거제 바다에서 잡은 것들이고 아니면 거제 사람들이 기증한 것들이다. 이처럼 거제 바다에서 물고기가 많이 잡히는 이유는 여기 바다가 차가운 한류와 따뜻한 난류가 몰려 뒤섞이기 때문이다. 차가운 데 사는 물고기는 물론 따뜻한 데 사는 물고기까지 해류를 타고 흘러드는 거제 바다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일제가 우리나라를 침략하면서 어업 이민을 가장 먼저 한 데 가운데 하나가 바로 거제다. 지세포라든지 장승포라든지 하는 데가 그런 일제 어업이민의 거점이 됐던 지역이고 그런 때문인지 장승포항 동쪽 야트막한 마루에 일제가 들이세운 신사에는 바다에 나간 배의 안전을 지켜주는 곤피라(金毘羅)라는 일본신이 모셔져 있었다.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일제의 침략 정책 가운데 하나였던 일본 어업 이민 얘기를 들려줬더니 뜻밖에 재미있어 하는 기색이 보였다.

거제어촌민속전시관에 도착해서는 미션수행을 했다. 두 명씩 세 명씩으로 팀을 이뤄 한 나절 봉사하러 나온 두산중공업 선생님과 함께 손을 잡고 둘러보며 주어진 문제의 해답을 찾아내는 것이다. 아이들은, 특히 나이가 어릴수록 이렇게 선생님 손을 잡고 다니는 것을 퍽 좋아한다. 프로그램을 마치고 쓰는 소감문을 보면 '같이 다닌 일'이 가장 인상깊었다고 하는 내용이 적지 않은 것이다.

미션 문제는 전시관 전체를 두어 차례 찬찬히 둘러보면 모두 알아낼 수 있는 것들로 모두 스무 개를 내었다. 거제를 비롯한 남해안 지형(섬이 많고 물이 적당하게 깊음)에 알맞은 그물질이 무엇인지, 모터로 움직이는 배가 나오기 전에 거제도에 있었던 배를 무엇이라 했는지도 물었다. 아울러 전시관에 나와 있는 물고기 이름을 특징에 맞게 찾아 적게도 했는데, 이는 여러 물고기들을 한 번이라도 살펴보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선생님과 함께 1층과 2층 전시실을 서너 차례 오르내리는 열성을 보이는 친구들도 있고 미션과 무관하게 이리저리 오가면서 자기들 보기에 재미있는 거리를 찾아 즐기는 아이들도 있다.

현고수 옆 정자에서 북을 쳐보는 아이들.

이렇게 돌아다니며 살펴보고 즐기는 동안 정해진 시간이 지나갔다. 전시관 여기저기를 바삐 오가며 소리를 내던 아이들이 전시관 바깥 정자 그늘 아래에 모였다. 간단한 설명을 곁들이며 문제 풀이를 한 다음 다들 얼마나 맞혔는지 헤아려봤다. 모두 스무 문제 가운데 열일곱 개를 맞힌 팀이 셋이었다. 크게 어렵지는 않은 내용이고 또 선생님과 같이했다지만, 시간이 넉넉지 않은 가운데 이만큼 맞혔으면 기대 이상이다. 세 팀 가운데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한 팀에게 격려 차원에서 '쥐꼬리 장학금'이 들어 있는 봉투 셋을 건넸다.

열심히 공부했으니 이번에는 열심히 먹고 열심히 놀 차례다. 몽돌로 이름높은 학동해수욕장으로 옮겨 가까운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는 곧장 해수욕장으로 달려갔다. 바다는 파도가 들이치며 물결이 일렁이는 데 따라 크고작게 소리를 내었고, 아이들도 곧바로 그런 바다에 호응해 즐겁고 기쁜 소리를 내질렀다.

거제 학동해수욕장을 찾은 아이들이 일렁이는 파도 곁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다.

밀려오는 파도에 몸을 내맡기는 아이, 파도 따라 왔다갔다 하며 물결 밟기 하는 친구, 물수제비 뜨려고 바다로 돌멩이를 던지는 친구, 바다 풍경에 흥이 겨워져 마냥 노래하는 친구, 한쪽 모퉁이에 쌓인 모래를 퍼내며 물길을 만드는 아이….

파도는 아이들한테만 소리를 내게 만들지는 않았다. 파도는 몽돌까지 소리를 내도록 했다. 몽돌들은 파도가 쓰다듬어 올리고 내리는 데 따라 몸을 뒤척이고 휩쓸리면서 그 누구도 그 무엇도 흉내내지 못할 감동적인 음악을 만들어내었다. 물소리와 뒤섞여 들려오는 "촤르르 촤르르" 몽돌 구르는 소리는 아이들 울려퍼지는 "까르르 까르르" 웃음소리와 비슷한 듯 닮아 있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는 소감문을 썼다. 자기 깜냥에 맞춰 쓰거나 말거나 했다. 나름 느낌이 잘 표현된 셋을 골라 쥐꼬리 장학금을 안겼다. 학동해수욕장에서 흠뻑 젖어가면서 했던 물놀이가 좋았다는 아이들도 많았고 어촌민속전시관에서 보낸 시간이 즐거웠다는 아이들도 적지 않았다.

"퀴즈(미션) 푸는 게 재미있었고 쥐꼬리장학금도 재미있었다. 퀴즈에서 아쉽게도 우리가 졌지만 다음에 이기면 되고, 재미있었기 때문에 우승은 필요없었던 것 같았다. 우승이라는 빈자리에 재미가 대신 있어주어서 아주 좋았다." 등등.

(역사탐방) 의령 곽재우 생가~백산 안희제 생가~정암진·정암철교

5월 역사탐방은 의령이다. 의령은 경남 중심 도시인 창원과 진주 가까이 있으면서도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곳은 아니다. 거제나 통영·남해처럼 관광지로 이름이 나 있지 않기 때문이겠다. 인구가 3만가량인 의령은 경남 18개 시·군 가운데 규모가 가장 작다. 그런데 재미 있는 것은 이런 의령에서 가장 내세우는 것이 바로 사람이다.

이번 역사탐방은 회원큰별·안영·정·이동·샘바위·자은 지역아동센터 아이들과 더불어 의령에서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아이들에게는 홍의장군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임진왜란 의병장 망우당 곽재우 장군과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백산 안희제 선생의 생가를 찾아가면서 그이들의 삶을 더듬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곽재우 생가 사랑채에 모여앉아 임진왜란 당시 의병 활동에 대한 이야기 등을 풀어놓았다.

곽재우 장군은 아무 벼슬을 하지 않았으면서도 임진왜란이 터지자 자기가 가진 재산 전부를 털어서 의병을 모으고 전투에 나섰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이가 그렇게 모든 것을 내놓으면서까지 나라와 백성을 위해 몸을 던질 수 있었던 배경부터 설명을 시작했다.

곽재우 생가 안채 마루에 걸터앉은 아이들.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영향을 받는 것은 사람이다. 곽재우 장군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이의 생각과 삶에 가장 크게 영향을 끼쳤던 인물은 남명 조식(1501~72) 선생이다. 곽재우는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앎을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던 남명 조식의 제자였다. 남명은 제자 곽재우를 어여삐 여겨 자기 외손녀를 곽재우의 아내가 되도록도 했다. 이런 얘기는 아무래도 아이들은 물론 함께 온 선생님들까지도 재미있어 한다.

곽재우 생가만큼 유명한 것이 집 앞에 있는 500살 넘은 은행나무다, 가을이면 둘레를 온통 노랗게 물들이는 나무는 짙어진 녹음으로 한결 늠름한 자태를 뽐내며 서 있다. 또 마을 한가운데 느티나무는 곽재우 장군이 거기다 북을 매달아놓고 쳐서 의병으로 나설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는데 은행나무보다 100년은 더 나이가 많다. 우리 사람은 책을 통해서나 이야기로만 들었을 뿐이지만 여기 서 있는 은행나무와 느티나무는 곽재우 장군의 실제 모습과 당시 벌어진 일들을 생생하게 봤다, 고 하자 아이들은 과연 새삼스러운 마음이 드는지 이들 나무를 올려다보고 만져보았다. 당시 느티나무에 매달아 놓았던 것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북이 있었는데 아이들은 돌아가면서 마냥 즐겁게 친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가까이에 있는 백산 안희제 선생 생가. 아이들은 생가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미션 수행을 했다. 백산 생가는 왜 문화재로 지정이 됐을까? 정답을 맞힌 팀이 없었다. 다들 안희제 선생이 독립운동을 했으니까 문화재로 지정을 했다고 적었다. 그런데 백산 선생 생가가 문화재로 지정된 까닭은 백산의 삶과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독특한 가옥 구조 때문이다. 안채는 가운데 마루가 있고 양쪽으로 조그만 방이 다섯, 다락도 따로 있다. 안채라 하면 보통은 안방과 건넌방이 모두인데 여기는 이렇게 방이 많다. 당시 가옥에서 보기 어려운 독특한 모습이다. 독립운동을 하면서 일제 감시를 피해 숨기 좋으라고 이렇게 했다는 말도 있다. 안채는 기와를 이었지만 사랑채는 초가집으로 검소하다.

백산 안희제 선생 생가를 찾은 아이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거듭 말하지만 의령이 인구는 적어도 가장 내세우는 것이 사람이다. 으뜸으로 꼽히는 한 사람이 삼성그룹을 창업한 이병철이다. 요즈음은 곽재우 생가나 안희제 생가보다 이병철 생가를 찾는 발길이 훨씬 많다. 물질이 중심인 현실에서 생각해보면 당연한 노릇이라 할 수도 있겠다.

삼성을 만든 이병철에 견주면 갖은 자산가였지만 안희제 선생이 백산상회를 해서 번 돈은 아주 적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이병철보다 안희제가 더 역사에 빛나는 인물일 것이다. 돈을 얼마나 벌었느냐보다 돈을 어떻게 가치롭게 썼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친구들도 어른이 되면 번 돈을 가치있게 쓸 줄 알아야 한다는 조금은 교과서적인 얘기도 살짝 곁들였다.

점심을 먹고는 정암진을 찾았다. 오전에 곽재우 생가를 돌아보고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은 곽재우 장군이 전투를 벌이고 크게 승리를 거둔 장소인 정암진을 한결 친근하게 생각했다. 정암루에서 내려다보는 남강은 옛날 그 치열했던 역사를 껴안은 채 평화롭게 흐르고 있다. 왜적을 속이기 위해 홍의장군 모습 허수아비들이 즐비하게 서 있었을, 지금은 가늠조차 되지 않는 아늑한 옛날의 뻘밭을 마음으로 상상해봤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도전! 골든벨'로 문제 풀이도 하고 느낌글도 쓰는 정암루에 5월의 화사한 봄바람이 날아들었다. 500살이나 먹은 은행나무가 인상깊었다는 얘기, 북을 치는데 왠지 가슴이 뚫리는 묘한 느낌이 들었다는 얘기, 다음에 부산에 가면 안희제 선생을 기리는 백산기념관에 꼭 들르고 싶다는 얘기 , 상으로 주는 쥐꼬리 장학금은 못 받았지만 많은 것을 배웠고 또 즐거웠다는 얘기 등등이 아이들 손끝에서 쏟아져 나왔다.

이어서 바로 옆 정암철교를 걸었다. 일제강점기 1935년 세워졌다가 6·25전쟁을 맞아 망가졌으나 1958년 되살려냈다. 발걸음을 옮기며 오가는 가운데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감탄들, "아 너무 멋진 풍경이다~!!" 봄은 그렇게 아이들 가슴에 안기며 깊어지고 있었다.

※이 기획은 두산중공업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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