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의 시 '그 여자네 집'을 연결고리로 제목까지 그대로 딴 박완서의 소설 <그 여자네 집>은 곱단과 만득의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이다. 일제의 징용에 끌려가면서 만득은 사랑하는 여자를 과부로 만들지 않으려고 결혼하지 않고 떠났다. 전쟁이 끝나고 그는 살아왔지만 이미 여자는 떠난 뒤였다. 온 마을의 처녀를 씨가 마르도록 잡아간 정신대 차출을 피해 부모님이 애 딸린 홀아비에게 서둘러 시집보낸 탓이었다. 그리고는 분단과 영원한 이별이 그들 사이에 가로놓인 운명이었다.

소설의 말미에 만득은 '나는 정신대 할머니처럼 직접 당한 사람들의 원한에다 그걸 면한 사람들의 한까지 보태고 싶었어요. 당한 사람이나 면한 사람이나 똑같이 그 제국주의적 폭력의 희생자였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한다. 책을 덮으며 내내 먹먹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오늘 아침 신문에서 근로정신대, 일본군 위안부 출신의 91세 이효순 할머니 사망 소식을 접했다. 또 한 명의 곱단이가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다.

열일곱 살에 빨래터에서 영문도 모른 채 군인들에게 끌려간 처녀는 이후 부산, 일본을 거쳐 대만, 중국, 싱가포르, 베트남 등지에서 3년 동안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강요받았다고 한다. '열일곱 살'이란 말이 아프게 와 박힌다. 나의 열일곱 살, 내 딸아이의 열일곱 살을 생각해 본다. 불안이 있었으나 꿈이 많았고 현실이 남루해도 충분히 멋진 미래가 오리라고 기대했던 나이였다. 아마도 우물가에서 빨래를 하던 순간까지 처녀의 마음도 그러했으리라. 하지만 행복은 그 빨래터에서 끝나버린 듯하다.

'나는 인간이 아니었다'는 짧은 동영상을 보면 일본군의 만행에 짓밟힌 꽃다운 처녀들의 아픈 기록이 담겨 있다. 이 영상 속에 나오는 그림 한 장은 충격적이다. 벌거벗은 몸으로 얼굴을 감싸고 웅크린 여자를 일본군 병사가 짐승 같은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다. 그 위로 꽃을 피운 벚나무 한 그루의 화사한 분홍색은 그녀의 현실과 너무도 대비되어 생경하다.

나는 가끔 <그 여자네 집>과 이 영상으로 독서 수업을 진행하곤 하는데 아이들은 믿지 못 하겠다는 반응을 보인다. 사실로 무심히 받아들이기엔 영상이 너무나 충격적이다. 하지만 일본군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그 영상조차도 모든 것을 다 말하지 못한 듯하다.

이제 남은 위안부 출신 생존자는 52명, 모두 연로하시니 앞으로 생존자 수는 급격히 줄어들 것이다.

20년 이상의 세월에 1000회가 넘는 수요 집회가 일본 대사관 앞에서 열렸다. 하지만 많은 위안부 출신 할머니가 유명을 달리하는 지금도 일본은 꿈쩍도 않고 있다. 사과는커녕 나날이 더 해괴한 논리로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 그런데 피해 당사자인 그 할머니들이 다 돌아가시기도 전에 우리 스스로 위안부 문제를 망각해가는 현실이다. 자라나는 세대는 말할 것도 없고 기성세대도 스스로 마음의 수요 집회를 접은 지 오래되었다.

윤은주.jpg
열일곱 살 곱단이, 이효순 할머니를 슬픔으로 보낸다. 그 분의 영전에 당한 사람의 한과 면한 사람의 분노를 보태어 하나도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송이 꽃 대신 바친다. 

/윤은주(수필가, 한국독서교육개발원 전임강사)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