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후의 사심가득 인터뷰 (4) 노래 여행 다니는 가수 이내

우리는 보통 노래를 잘 부르는 이를 가수라고 하지만, 어쩌면 진짜 가수는 언제든 노래할 마음이 되어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이내(36·본명 김인혜)가 그런 사람이다. 이내는 길을 가다 아무 데서나 척하니 앉아 노래를 불러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가수다. 이내의 노래는 참 편안하고 따뜻하다. 별다른 기교 없이 부르는 것 같은데, 사람들에게 큰 위로를 준다. 잘 모르는 이들은 이내가 경남 사람인 줄 안다. 이내는 부산에 산다. 하지만 지금은 경남 사람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경남과 관계가 깊어져 버렸다. 최근 내놓은 2집 앨범도 모든 곡을 진주 곳곳에서 녹음했다. 지난달 초순 진주에서 이내 공연이 열렸는데 '어쩐지 일찍 와버린' 이내와 함께 수다를 떨었다.

-이내 씨는 언제부터 경남하고 이렇게 인연을 맺은 거야?

"두 가지 길이 있었어요. 먼저 '소소책방'. (소소책방은 진주에 있는 헌책방인데, 다양한 주제로 강좌도 열고, 글쓰기 모임도 하고 전시도 하는 복합 문화공간으로 운영하고 있다.) 작년 초에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소소책방 페이지를 봤는데 운영 철학도 그렇고, 대표님이 페이지에 올리는 글도 좋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소소책방에서 부산으로 사진전 관람을 온다는 거예요. 그래서 바로 참가 신청을 했지요. 그때 부산에서 만난 사람들이 진주 문화판의 핵심(?) 인물들이었죠. 다른 하나는 가수 권나무예요. (권나무는 지난해 제12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 노래상을 받은 인디 가수인데, 지난해에는 김해에 살며 활동하고 있었다.) 권나무도 페이스북에서 알게 되었어요. 노래가 엄청나게 좋은 거예요. 그러고는 김해 '재미난쌀롱'이란 카페에 권나무 공연을 보러 갔어요. 김해도 그때 처음 가본 거예요. 공연장에서 저도 사실 노래를 만들고 부르기는 하는데 언젠가 기회가 되면 노래를 불러보고 싶다고 말했죠. 그런데 그날 공연이 모두 끝나고 나한테 노래를 시키더라고요. 그래서 공연자 기타를 급히 빌려서 노래를 했어요. 그때 부른 노래가 '수전증'인데 정말 손을 덜덜 떨면서 불렀어요."

지난달 진주 카페 부에나비스타에서 공연 중인 이내. /강대중

-이내 씨 외국에서 오래 머물렀잖아, 어디 있었어?

"2007년인가 영국에서 3년을 지냈어요. 영화 공부하러 갔었죠. 근데 1년 공부하고 포기했어요. 나머지 2년은 그냥 알바·여행, 알바·여행 그랬고. 그때 제가 기타를 처음 시작했어요. 그러고 부산으로 돌아온 게 2009년에서 2010년 넘어가던 때였는데, 20대가 모두 지나고 서른이 됐어요. 뭔가 완전히 새롭게 시작해야 했었죠. 와보니 집이 또 망했어요. 모든 것을 포기했죠. 영국에서 학위를 얻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돈이 있는 것도 아니었거든요. 다 버리고 나니까 있는 걸 가지고 놀 수 있는 걸 찾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친구랑 만든 게 '생각다방 산책극장'이에요. ('생각다방 산책극장'은 부산 재개발지역에 만든 백수들의 놀이터다. 낡은 주택 하나를 빌려 생활도 하고 공연도 하고 모임도 연다.) 여기서 노래를 처음 만들기 시작했어요. 그게 2011년 정도 됐을 거예요. 노래를 만들어서 그냥 친구들 있는 데서 불렀죠."

-이내 씨 포르투갈에도 있었잖아, 언제지 그게?

"그리고 제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2012년에 가요. 그 길을 걸으면서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음악을 해볼까 생각했죠. 한국에 돌아왔을 때도 음악적인 뭔가를 쌓아가야겠다고 고민했었고. 제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연애를 했거든요. 그래서 연인을 만나러 다시 포르투갈로 떠났죠. 그게 2012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였어요. 포르투갈에서 음악으로 무언가를 하면서 내 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아니더라고요. 거기서 8개월을 은퇴한 노인처럼 보냈죠. 그러고 한국에 돌아왔다가 다시 준비해서 나가려고 했는데, 그때 포르투갈에 있는 그 연인한테 차였어요."

-노래 여행은 언제 시작한 거야? 전국으로 돌아다니더구먼.

"지난해에 노래 여행을 작정하고 시작한 거 같아요. 어쩌면 이것도 인연인 거 같은데, 경북 상주시 함창읍에 '버스정류장'이란 카페가 있어요. 지난해 초에 누군가가 저를 거기에 데려갔는데, 그 마을에 마침 <여성주의 저널 일다> 기자가 몇 분 살고 있었어요. 그분들이 제 노래와 이야기를 듣고, 일다 필진으로 제안을 했어요. 또 타로도 봐 주셨는데, 제가 굴곡이 많은 인생이래요. 그러면서 '2016년에 대박이 올 것이다' 그러시는 거예요. 그래서 2016년까지 돈 걱정하지 말고 노래도 만들고, 노래 부르고, 글 쓰면서 진짜 예술가처럼 살아라, 그러더군요. 그때 그게 제게 큰 힘이 됐어요. 그때부터 생계 삼아 하던 학원 영어 강사 일도 그만두고 가고 싶은 데 막 다니고 있어요. 돈 쓸 일 있으면 그냥 카드를 긁는데, 신기한 게 지금껏 연체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할머니 포크 가수가 꿈이라고 평소에 말해왔잖아.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 하는 구상 같은 게 있어?

"구체적인 그림을 안 그리고 어디까지 가나 보자, 가 내 노래 여행의 시작이에요. 그동안은 계획하고 구상하고 바쁘게 사는 생활 그 자체에서 많은 실패를 경험했거든요. 목표에 다다르지 못해서 자책했던 시간이 많았으니까요. 아무것도 정하지 말고 이 순간에 할 수 있는 것만 가지고 살자, 그리고 그런 것들이 모이면 어떻게 되는지 한 번 보자, 그렇게 생각했죠. 그렇게 저는 노래라는 개인적인 실험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이어져 온 거고요. 그런 의미에서 할머니 포크 가수라고 한 건 그저 포기하지 않고 이 길을 가겠다는 거지 뭔가를 하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는 아니에요. 지금까지 노래 여행을 해오면서 처음 시작할 때와 달라진 건 전국에 친구가 늘었고 아지트가 늘었다, 이것뿐이에요. 근데 저는 그런 지금이 무척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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