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따라 내 맘대로 여행] (58)경북 경주

도시 자체가 거대한 무덤이자 문화재인 천년고도 경주. 경주를 다시 생각한 건 장률 감독의 영화 <경주>(2013)를 보고 나서다.

여행의 맛이란 그런 것이다. 다시 찾으면 그때의 그 기억과는 또 다른 기억으로 채워지기도 하고,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커다란 의미로 다가오기도 한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것이 어색할 것이 없는 경주는 참으로 묘한 도시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사라져야 할 것들을 보존하고자 안간힘을 쓰는 도시.

경주는 아직도 천 년 전에 살았던 신라인의 숨결이 도시 곳곳에 살아 숨 쉬는 것 같다.

천 년 동안 지속한 왕국, 신라가 궁금해졌다. 문화해설사의 도움말을 듣고 싶어 시티투어 버스에 몸을 실었다.

코스는 신라역사권, 동해안권, 세계문화유산권, 양동마을·남산권 등 다양하다.

세계문화유산권 코스를 택했다. 오전 11시 20분 출발해 오후 5시쯤 끝나는 일정이다.

통일의 기반을 닦은 김춘추, 신라 29대 태종무열왕릉에서 차가 멈췄다.

능과 묘, 그리고 총. 무덤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왕이나 왕비의 무덤은 능, 그 외의 무덤은 묘라고 부른다. '태종 무열왕릉'이나 '흥덕왕릉', '김유신 장군 묘'나 '김인문 묘'라고 일컫는다.

발굴된 무덤의 출토 유물로 미뤄볼 때 왕과 왕비의 능이라고 짐작되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고 묘라고 부르기에는 곤란한, 이런 무덤을 총이라 부른다. 금관이 맨 처음 나왔다고 금관총, 천마도가 나온 무덤이라고 천마총이라 부른다.

능이나 묘라고 단정할 수 없고, 발굴이 되지 않아 유물도 없으니 ○○총이라 부를 수도 없는 것은 '분'이라 부른다. 땅 위에 도드라진 봉우리로 보아서는 옛 무덤일 것이라 추정되는 것을 뭉뚱그려 '고분'이라 부른단다.

대릉원의 고분군 중 유일하게 공개하고 있는 155호 고분 천마총. 무덤으로 들어가려고 사람들이 줄을 섰다.

1973년 발굴 과정에서 부장품 가운데 자작나무 껍질에 하늘을 나는 말이 그려진 말다래(말을 탄 사람의 옷에 흙이 튀지 않도록 가죽 같은 것을 말의 안장 양쪽에 늘어뜨려 놓은 기구)가 출토되어 천마총이 되었다.

무덤을 지나 마냥 쉬기 좋고 경치가 아름다운 '동궁과 월지(안압지)'에 도착했다.

안압지로 불리던 '동궁과 월지'. 월지는 연못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동궁은 월지 서쪽에 있는 신라 왕궁의 별궁터이다. 다른 부속 건물과 함께 왕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사용되면서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나 손님을 맞을 때 연회를 베풀었던 곳이다.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후 문무왕 14년에 큰 연못을 파고 못 가운데 3개의 섬과 못의 북·동쪽으로 12봉우리의 산을 만들었다.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심고 진귀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고 전해진다.

삼국사기에는 안압지의 이름이 나오지 않고, '궁 안의 못'으로만 기록되었다. 1980년대 '월지'라는 글자가 새겨진 토기 파편이 발굴되며, 본래 이름은 '달이 비치는 연못'이란 뜻의 '월지'라고 불렀다.

이후 신라가 멸망하고, 고려와 조선시대에 이르러 이곳이 폐허가 됐다. 시인 묵객들이 연못을 보며 '화려했던 궁궐은 간데없고 기러기와 오리만 날아든다'는 쓸쓸한 시 구절을 읊조리고 그때부터 기러기 '안' 자와 오리 '압' 자를 써서 '안압지'로 불리게 되었다.

지난 2011년 안압지는 동궁과 월지로 명칭이 변경됐다. 월지를 볼 때 주의 깊게 볼 것은 연못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동서 길이 200m, 남북 길이 180m, 총 둘레 1000m 정도로 그리 크지 않은 연못이지만 가장자리에 굴곡이 많아 어느 곳에서 보아도 연못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게 만들었다.

좁은 연못을 넓은 바다처럼 느낄 수 있도록 고안한 신라인의 세련된 창의성이 돋보인다.

너무나 유명한 불국사와 석굴암 역시 학창시절, 수학여행 때 보았던 그때의 그곳과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불국사에 들어섰다. 청운교와 백운교를 올려다보며 가지런히 두 손을 모았다.

신라의 발상지이자 수도, 서라벌. 56대 경순왕이 고려 왕건(太祖)에게 나라를 바치니 '경사스러운 고을'이라 하여 경주(慶州)라는 지명을 갖게 된 곳.

"경주에서는 능을 보지 않고 살 수 없어요."

돌 하나, 나무 하나에도 신라인의 정성과 혼이 담겨 있는 경주에서 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은 것들에 대한 상념이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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