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 일 시작했나 고민했는데 요즘은 잘 선택했다 싶어 이 나이에도 일할 수 있으니"

짙고 두꺼운 양 눈썹 그 위로 골이 깊은 주름과 앙다문 입. 고집스러운 얼굴을 한 사내가 '칙칙-' 후끈한 수증기를 뿜는 다리미를 좌우로 밀어대며 옷을 다리고 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 골목길의 오래된 세탁소. 간판은 이미 떨어진 지 오래된 듯 흔적뿐이고, 새빨간 붓으로 그려놓았을 '세탁'이라 적힌 철판은 붉은 기가 희미한 채로 가게 입구에 비스듬히 제 몸을 기대고 있다. 이곳이 오래된 세탁소라는 건 가게 입구에서부터 확연하다.

창동 시내를 활보했던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은 스쳐 지나갔을 세탁소. 이곳의 정식 상호는 '금성 1급 세탁소'이다. 손님들이 맡긴 옷이 내부 천장을 뒤덮은 가게를 홀로 40년 가까이 지킨 이가 바로 우리 나이로 예순아홉이 된 최재준 씨이다.

경북 청도가 고향인 최 씨는 젊은 시절 플라스틱제품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했다. 결혼을 할 즈음 공장에서 받는 월급으로는 살림 살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당시 세탁기술자로 일하던 동생과 함께 대구에 세탁소를 차렸다. 그런 최 씨가 마산으로 온 것은 왜일까?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 골목에서 40년 가까이 세탁소를 운영한 최재준 씨가 다림질을 하고 있다. 지금은 주위 상인들이 주로 찾지만 멀리서도 굳이 최 씨에게 세탁물을 맡기러 오는 일도 있다. /강해중 기자

"7~8년쯤 세탁소를 잘했지. 처가가 마산 덕동이거든. 처가에 가끔 내려올 때 보니 세탁비가 대구보다 두 배 이상 비싼 거야. 당시 대구에서는 양복 한 벌에 1500원을 받는데 마산은 4000원 정도 하데. 아내 친정도 여기겠다 돈도 더 벌 수 있겠다는 생각에 왔지. 그때가 1979년쯤이지 아마."

일반적으로 세탁소 하면 대개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장사를 하는 것이 상식인데 당시 마산, 그중에서도 지역 최고 번화가인 창동에 세탁소?

"그때만 해도 세탁소가 지금처럼 한 동네에 여러 군데 있고 그러지 않았어. 특히 촌은 더 그렇고. 촌 사람들이 장보러 올 때 세탁거리를 들고 와서 시내 세탁소에 맡기고, 다음 장보러 올 때 찾아가고…. 그래서 처음에 어시장 쪽에 가게를 차려보려고 했는데 자리가 없데. 그냥 가게 차리는 거 포기하고 대구 다시 갈까 하던 중에 한 복덕방에서 이 자리를 소개해줬지. 지금은 이렇게 허름해도 내가 가게 차릴 땐 신축 건물이었고 내가 제일 먼저 들어왔어. 그땐 이 주위에 세탁소가 예닐곱 개는 됐어. 지금은 다 떠나고 나 혼자지만."

개업을 하고 4년간은 가게 운영하고 살림 살 정도만 벌었다. 4년이 지나자 소문을 타고 손님들이 몰려들었다. 그래서 최 씨의 단골들은 거래를 한 지 기본 30년 이상이다. 최 씨가 두꺼운 거래장부를 펼쳐보이며 말을 이었다.

"창원공단에 있는 회사 사장네는 지금도 우리 집에 세탁을 맡기지. 한 35년 됐을 거야. 아주머니가 세탁물 맡기러 오면서 늘 하는 말이 여기가 제일 잘한다고 후계자 안 키우느냐고. 근데 요즘 이런 거 하려는 사람이 없잖아. 내 자식들도 이거 시키기 싫은데."

지금은 세탁소 주위 가게 상인들이 주고객층이지만 멀리서도 굳이 최 씨에게 세탁물을 맡기러 오는 일도 있다. 김해 진영에서 오는 단골인데 천주교 신부다. 이 손님은 남성동 성당에 있을 때 처음 옷을 맡긴 이후로 거제, 함안으로 성당을 옮겨서도 최 씨 가게를 찾았고 지금은 진영에 있는 성당에 있다고 한다.

"세탁기계가 못 지우는 것도 내 손을 거치면 싹 지워지거든. 그게 마음에 드는 거지. 아줌마들이 남편 옷은 집 주변 세탁소에 맡겨도 자기 옷, 고급 옷은 여기로 가져와. 또 한 사람은 늘 세탁물 찾으러 올 때 고맙다고 세탁비 외에 팁을 주기도 해. 허허."

세탁소에는 주인을 잃은 옷들도 있다. 저마다 사연을 가지고 있을 테다. 맡겨 놓고 잊어버리고 안 찾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이 지역을 떠나버렸거나 옷 주인이 사망한 경우 등. 이 옷들은 어떻게 처분할까.

"세탁업중앙회에 보관 기간이 정해져 있어. 한 달. 나는 2년간 보관해. 언제 찾으러 올지 모르니까. 예전에는 2년이 지나도 안 찾아가는 옷들은 동사무소에 기증했지. 많이 했어. 지금은 그런 거 안 하는갑데. 헌옷 수거함에 넣어야 하는가 본데 귀찮아서. 그래서 폐지 줍는 할머니한테 다 줘버려. 종이보다 옷을 더 쳐준다고 하더라고."

대화를 마칠 무렵 손님이 들어왔다. 단골인지 최 씨의 고집스럽던 얼굴이 이내 개구쟁이처럼 바뀌고 농담을 주고받는다. 인터뷰를 마무리 짓고 세탁소를 빠져나왔다.

"육십 될 때까진 내가 왜 이 직업을 선택했지 하며 고민했어. 그런데 육십 넘어서는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어. 이 나이 먹을 때까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나. 자식들도 이걸로 다 키웠고. 내 가게를 하니까 남의 집 일하는 것보다 나아. 5년 정도 더 하겠나. 할 수 있는 날까지는 남 눈치 볼 일 없고 용돈 벌이나 하며 마음 편히 일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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