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효순 할머니 별세…16세때 끌려가 4년간 고통 몸·마음 쇠약…병원 전전 내일 시민사회장 치르기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효순 할머니가 지난 27일 오후 7시 50분께 세상을 떠났다. 향년 91세. 생전에 그토록 바랐던 일본의 공식사죄를 받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1925년 의령군에서 6남매 중 셋째딸로 태어난 고(故) 이효순 할머니. 그녀는 16세이던 지난 1941년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다.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던 중이었다. "우리 딸 어디갔노?" 딸의 갑작스러운 납치에 어머니는 땅을 두드리고 울었다. 당시 5살이었던 여동생 이윤순(80) 씨는 희미해진 당시의 기억을 회상했다. 이 씨는 "4년 뒤쯤 언니가 집에 왔어요. 동네 사람들이 어머니한테 효순이가 왔다면서 알려줬어요. 언니는 검정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빼짝 말라 있었습니다"라며 기억을 풀어놨다.

이효순 할머니는 가족들에게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겪었던 일에 대해 말을 아꼈다. 여동생도 언니가 얘기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듯해서 물어보지 않았다. 이 할머니는 과거의 가슴 아팠던 기억을 이경희 일본군위안부할머니와 함께하는 마산창원진해시민모임 대표에게 털어놓았다.

당시 이 할머니는 트럭에 이끌려 부산으로 갔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일본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 이 할머니는 대만과 홍콩, 싱가포르, 필리핀 등 이곳저곳으로 끌려다니면서 일본군 위안부로 생활했다. 무려 4년 동안. 이 할머니는 광복과 동시에 풀려나 고국 땅을 밟았다. 결혼은 했고 아이는 낳지 않았다.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힘겹게 살다가 여동생이 있던 창원에 내려온 것은 지난 2007년. 당시 82세인 이 할머니는 몸이 쇠약해 마산의료원과 푸른노인병원 등을 전전했다.

여동생은 "의사가 더는 약을 쓸 게 없다고 했어요. 언니가 오랫동안 병원에 있은 탓에 병원밥이 질렸던지 내가 해준 반찬만 먹었습니다. 인정 많고 할 말은 하는 그런 착한 언니였는데…. 좋은 곳에서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고 말끝을 흐렸다.

오랫동안 그녀를 지켜왔던 이경희 대표는 "올해가 광복 70주년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한 분이라도 살아계실 때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하루빨리 해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윤자 경남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는 "일본군 위안부 추모비가 창원에 곧 세워지는데 그걸 못 보고 돌아가신 게 마음에 걸린다"면서 "역사에 부끄럽지 않게, 후손에 부끄럽지 않게 정부가 적극적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고인이 요양병원에 있을 때 봉사활동을 했던 곽원영(23) 씨는 "올해 초쯤 몸이 악화해 창원파티마병원에 입원해있다는 소식을 들었었는데, 손이라도 못 잡아 드린 게 마음이 아프다. 할머니가 10대 등을 보면서 '청춘이 부럽다'고 말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몇 명 남지 않았다. 일본은 하루라도 빨리 강력히 사과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28일 오전 빈소가 마련된 창원파티마병원 장례식장에서 한 문상객이 이 할머니의 영정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박일호 기자 iris15@

고인의 빈소는 창원파티마병원에 마련됐으며 29일 오후 7시 추모식이 열린다. 발인은 30일 오전 7시며 장례는 시민사회장으로 치를 계획이다.

이효순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8명 중 생존자는 모두 52명으로 줄었다. 현재 경남에 생존해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는 총 7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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