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상은 기록…후대 도움되면 좋을테지"

사천시 용현면에는 '박연묵 교육박물관'이 있다. 30여 년간 교직 생활을 한 박연묵(82) 선생이 퇴임 후 교과서, 졸업 앨범, 제자들 편지 같은 소장품을 전시해 놓은 곳이다. 1만 3000㎡(4000여 평) 터에 '교사 시절의 방' '학창 시절의 방' '책방' '자연학습원' 등 10개 전시관이 마련돼 있다. 사실 이곳은 박 선생이 살고 있는 집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 도움 없이 자비를 들여 만든 공간이기 때문이다.

3년 전 '경남의 재발견' 취재를 위해 사천에 갔다가 박 선생을 만날 수 있었다. 앞서 경남도민일보에 나온 기사를 보고 궁금증에 발걸음 했다.

그냥 둘러볼 생각이었기에 약속 없이 갔다. 하지만 박 선생은 방문객을 내버려 두지 않았다. 전시관 하나하나 돌며 그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표정은 순수한 아이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때때로 어두운 표정도 있었다. 자신이 저세상으로 가면 이 박물관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3년여가 흐른 지금도 박 선생은 박물관을 지키고 있다.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찾는 이도 늘었다. 27일에는 남해·하동에서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단체 방문한다고 한다.

박연묵 교육박물관에는 '교사 시절의 방' '학창 시절의 방' 등 10개 전시관이 있다. 3년 전 예고없는 방문에도 반갑게 맞아준 박연묵 선생. /경남도민일보 DB

"교육에 특히 관심 많은 사람이 여길 찾지. 엊그제는 어느 노인이 손자, 딸, 사위 등 온 가족을 데리고 오기도 했고. 전화도 받아야 하고, 연락 없이 불쑥 오는 사람도 있기에 늘 지키고 있지. 나한테 찾아온 손님들이니까 늘 반갑게 맞이하지. 한 팀 가고, 곧바로 다른 팀이 오면, 힘이 들기는 해. 그래도 즐거워하는 모습 보면 힘이 나지."

소장 자료도 조금씩 늘고 있는데, 이렇게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에는 어느 교장 선생님이 모은 교육자료를 얻었지. 오래전 우연히 연을 맺은 그분이 돌아가시면서 '내가 모은 자료를 후손한테 주는 것보다 교육박물관에 있어야 의미 있다'고 한 거지. 그 아들이 얘길 해서 남해까지 직접 가서 받아왔지."

박물관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다. 모은 자료를 박 선생 스스로 쉽게 찾아 활용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소장 자료는 스스로만 아는 방법으로 분류해 두었다.

"나는 기록하는 것이 일상이지. 최근에는 기록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 그 사람들한테 '인터넷·컴퓨터 같은 게 편리하기는 하지만, 꼭 그것이 만능은 아니다'라는 말을 하고는 하지."

얼마 전에는 기록관리 전공자가 박연묵 교육박물관을 주제로 쓴 석사 학위 논문도 나왔다. 박 선생은 이 논문을 30부가량 손수 복사해 필요로 하는 곳에 보내줬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박종훈 도교육감이 찾는 등 도교육청에서도 관심을 두고 있다.

"내 자료를 교육역사자료로 활용하기 위한 협약을 맺었어. 교육청에서 일주일에 두 번 찾아와서는 전산 입력작업을 지난 3월까지 했어. 그 뒤로는 특별히 진행된 건 없고…. 교육청도 더 중요한 일이 많을 테니까. 찾는 사람 중에는 '교육박물관이 다른 곳으로 옮겨진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는데, 나는 그럴 생각은 없어. 박물관이라는 건 내력과 역사성이 있는 것이거든."

박 선생은 특별히 몸 불편한 곳은 없지만, 갈수록 기력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내가 지금도 정리하고 있는 기록물이 70가지 정도 돼. 이런 것들이 후세대에 작은 도움이 되면 좋기는 하겠지. 오는 분들이 나 떠나면 박물관이 어떻게 되는지 걱정하시기도 해. 그렇다고 그 걱정이 현실에 반영되는 건 없으니, 그냥 이렇게 흘러가는 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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