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조용한 추도식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남 건호 씨가 김무성 대표를 향해 작심 발언을 하며 깨졌다. 발언이 이어지자 추도식장은 환호로 가득 찼다. 대조적으로 식장 안 정치인들 표정은 굳어져갔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6주기 추도식이 시민 6000여 명(경찰 집계 50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23일 오후 2시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대통령 묘역에서 엄수됐다. 경찰은 이날 봉하마을을 다녀간 이가 2만여 명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이날 추도식에는 권양숙 여사 등 유족,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김한길·안철수 전 대표 등 현직 의원이 대거 참석했고, 정의당 천호선 대표, 김원기 전 국회의장, 한명숙·이해찬 전 국무총리, 배우 문성근·명계남 씨 등이 참석했다. 도내 새정치민주연합 정치인으로는 김경수 경남도당 위원장, 민홍철 의원 등이 참여했으며 현직 교육감으로는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참석했다. 자치단체장은 안희정 충남도지사를 비롯해 김맹곤 김해시장 등이 자리에 함께했다.

특히 새누리당에서는 김무성 당 대표를 포함해 이군현(통영·고성 국회의원) 사무총장, 강기윤(창원성산구 국회의원) 경남도당 위원장 등 경남·부산에 지역구를 둔 당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정부에서는 김재원 청와대 정무특보로 대표로 참여했다.

두 명의 추도사를 마치고 노건호 씨가 유족 대표로 인사말을 시작했다. 노 씨 발언은 도저히 그냥 보낼 수 없다는 듯 김무성 대표를 향했다.

노 씨는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특별히 감사드리고 싶은 분이 오셨다. 전직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며 내리는 빗속에서 정상회의록 일부를 피 토하듯 줄줄 읽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어려운 발걸음을 해주셨다"며 "권력으로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그러고도 모자라 선거에 이기려고 국가 기밀문서를 뜯어서 읊어대고, 국정원 동원해 댓글 달아 종북몰이 해대다가 아무 말이 언론에 흘리고 불쭉 나타나시니 진정 대인 배 풍모를 뵙는 것 같다. 혹시 내년 총선에는 노무현 타령, 종북 타령 좀 안 하시려나 기대가 들기도 하지만 '뭐가 뭐를 끊겠나' 싶기도 하고, 자신도 그간 사건들에 대해 처벌받은 일도, 반성한 일도 없으니 그저 헛꿈이 아닌가 싶다"고 비판했다.

강도는 더해갔다. 노 씨는 "오해하지 마십시오. 사과? 반성? 그런 것 필요 없습니다. 제발 나라 생각 좀 하십시오. 국가의 최고 기밀인 정상회의록까지 선거용으로 뜯어 뿌리고, 국가 권력 자원을 총동원해 소수파를 말살시키고(통합진보당 해산을 이름), 사회를 끊임없이 지역과 이념으로 갈라 세우고 권력만 움켜쥐고 사익만 채우면 이 엄중한 시기에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국의 미래는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십니까"라고 물었다.

끝으로 노 씨는 "제발 국체를 좀 소중히 여기십시오. 중국, 30년 만에 저렇게 올라왔습니다. 한국 30년 만에 침몰하지 말라는 법 있습니까? 힘 있고 돈 있는 집이야 갑질하기 더 좋을 수 있겠지요. 하지만, 나중에 힘없고 돈 없는 백성은 어떻게 하시려고 국가 기본 질서를 흔드십니까. 정치, 제발 좀 대국적으로 하십시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끝맺었다.

노 씨 발언이 이어지자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는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지난 22일 노무현재단에서 '국민통합의 진심, 확인하는 자리 돼야'라는 보도자료로 김무성 대표 방문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과 달리 노건호 씨는 비판의 강도를 한껏 높이고 그 방향도 정면으로 향했다.

이에 앞서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과 노무현 장학생 정선호 씨(성공회대 1학년)가 각각 추도사를 낭독했다.

강 전 법무부장관은 '노무현 정신을 기리며, 대통합을 염원하며'라는 제목의 추도사에서 "노 대통령님은 대통령을 넘어서고 국가를 넘어선 분이셨다고 고백하고 싶다. 대선자금 수사와 검찰 개혁은 국민의 권력을 위임받은 최고 권력자로서, 민주공화의 근본가치를 현실화하고자 하는 고인의 희생정신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과업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노 전 대통령님이 남긴 미완의 과제를 이루고자 우리는 공동체 평화와 번영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는 대범한 정치적 자세를 배우는데 출발해야 한다"며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넘어 대통합 정신으로 무상하고, 열린 자세로 현실 역량을 끌어모아 국민으로부터 인정을 받아야만 우리에게 '노무현'을 말할 자격이 주어질 것이다. 노 전 대통령님과 참여정부가 남긴 미완의 과제를 완성해 우리 세상을 진정으로 사람 사는 세상으로 바꿔나가자"고 촉구했다.

시민 대표로 추도사를 한 정선호 씨는 "대통령님, 제겐 꿈이 있습니다.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먼저라고 당당히 얘기하는 정부를 만드는 일입니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별 없이 노동의 존엄함을 누리며 사는 세상입니다. 약자와 소수라는 이유로 소외받지 않고 평등한 공화국 원리에 따라 모두가 존엄함을 누리며 사는 세상입니다"며 "그리하여 마침내 정치가 아름답다는 것이 상식이 된 세상에서 살아가는 꿈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정 씨는 "이제 저는 감히 맹세합니다. 당신의 길을 걷겠습니다. '결코 불의와 타협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 젊은이들이 떳떳하게 정의를 말할 수 있고 불의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새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그리하여 모두가 더럽고 아니꼬운 꼬라지(꼬락서니) 좀 안 보고 그래서 하루하루 신명나게 이어지는 그런 세상'을 만드는 데 제 모든 것을 걸겠다"고 다짐했다.

추도식은 애국가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가수 조관우 씨의 추모공연 '그가 그립다', 추모 영상과 유족 인사말, 송현상 바리톤의 추모공연 <타는 목마름으로> 제창으로 막을 내렸다.

추도식을 마치고서 이날 오후 3시 7분께 참석자들은 식장 옆 묘역으로 옮겨 참배했다.

권양숙 여사와 노건호 씨 등 유족 참배,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이사진 참배 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오후 3시 17분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인파를 빠져나가자 이곳에 모인 시민들은 거친 발언을 거침없이 내뱉었다. 일부는 욕설을 하고, 일부는 물을 뿌렸다. 물은 김 대표에게 직접 향하지는 않았다.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정치인들을 향한 반응은 극명하게 나뉘었다.

김한길 전 대표가 퇴장하자 시민들은 "제발 철 좀 들어라, 왜 왔느냐"부터 욕설까지 김무성 대표에게 향한 그것과 거의 다름없는 수준의 거친 발언을 쏟아냈고, 일부는 물을 뿌리기도 했다.

안철수 의원과 안 의원 측에게는 "문 대표 좀 도와달라. 힘을 보태달라"는 당부의 말을, 천호선 정의당 대표에게는 격려의 환호를 보냈다.

문재인 대표가 나오자 일부에서는 "좀 잘 하시라"는 쓴소리도 했지만 환호와 격려의 말이 대부분이었다.

문 대표는 오후 3시 25분께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서서 취재진을 향해 "서거 6주기인데도 아직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께 부끄럽다. 노 대통령을 편하게 영면하도록 못 해 드린 것 같다"며 "정권 교체를 못한 것만으로도 통탄할 만한 일인데 다시 친노·비노로, 노무현 이름을 앞에 두고 분열하고 갈등을 일으키는 모습이 정말 부끄럽다. 대통령께서 어떤 심정일지 모르겠다"며 최근 당내 상황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이어 문 대표는 "앞으로 제가 당 대표를 하면서 당내에 친노·비노 계파 얘기가 더는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 친노 패권주의라는 말이 당내에서 사라지도록 하겠다는 다짐을 오늘 다시 한 번 한다"며 "노무현·김대중, 떠나신 두 분은 이제는 놓아줬으면 한다. 그분들 이름을 말하면서 분열을 말하지 말고, 그분들을 명예롭게 해드리는 게 남은 사람들 의무라고 생각한다. 친노·비노, 계파주의·패권주의가 당내에서 사라지도록 제가 최선을 다하겠다는 점을 두 분 대통령을 두고 다짐한다"는 말로 끝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