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간다] (8) 김해 가야사누리길

뜻밖에 걷기 좋은 도시다. 의외라고 말한 이유는 김해를 찬찬히 걸으며 둘러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저 막연하게 도내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가장 많고 공장이 붐비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고대국가 가야가 여전히 살아 숨 쉬는 도시지만 신라의 그늘에 가려 경주를 낭만적으로 여겼다.

비 오는 평일 오후, '가야사누리길'을 걸었다.

국립김해박물관에서 시작했다. 인도에 박힌 가야사누리길 '21'이라는 숫자가 '20', '19'로 줄어드는 길, 봉황동유적 방향으로 길을 나섰다.

곳곳에 안내판이 서 있다. 가야사누리길은 찬란했던 가야의 문화와 현대적 도시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고 소개했다. 가야국 해상무역의 영화를 간직한 해반천을 따라 걷다 보면 가야의 향기와 문화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고도 설명했다.

수로왕릉 /이미지 기자

가야사누리길 코스는 세 가지다. 5㎞짜리 주동선과 900m, 1㎞로 만들어진 부동선 2개다.

주동선은 수로왕릉역에서 대성동고분박물관, 국립김해박물관, 구지봉, 수로왕비릉, 수로왕릉, 봉황동유적지 등을 거친다. 도보로 2시간이다.

주동선 중심을 파고드는 길이 900m짜리 부동선인데 대성동고분박물관부터 수릉원, 수로왕릉, 김해북문까지다. 걸어서 20분인 1㎞를 걷는 또 다른 부동선은 김해한옥체험관에서 출발해 수릉원과 수로왕릉 사이를 지난다. 대표 유적지가 옹기종기 모여있고 동선이 복잡하지 않아 걷기 수월하다.

우산 위로 내리는 제법 많은 봄비에 차 소리, 도시 소음이 들리지 않았다. 아주 가까이 울리는 빗소리와 흙냄새, 풀내음만 가득했다.

가야 기마민족 상징상 /이미지 기자

대성동고분박물관 산책길을 지나 수릉원에 들어갔다. 그러고 보니 김해에는 공원이 많다. 연지공원을 제쳐두더라도 마을마다 나무들이 숲을 이룬다.

수릉원도 가락국의 시조인 수로왕과 허왕후가 거닐었던 정원이다. 동쪽 구릉의 산책로는 수로왕을 기념해 남성적인 분위기를, 서쪽은 유실수를 심어 허왕후를 위한 공간으로 연출했다.

구릉에 오르니 수릉원의 전체 모습과 건너편 대성동고분군, 수로왕릉이 보였다. 등산복을 입은 몇몇 사람만 거닐 뿐 조용했다.

수릉원 /이미지 기자

수로왕릉은 고요했다. 한적한 왕릉을 오로지 혼자 만끽할 수 있었다. 숭화문과 홍살문을 지나 가락루로 갔다. 넓은 잔디가 푸르다.

김수로왕 탄생은 유명하다. 하늘에서 소리가 들리고 황금알이 담긴 금합에서 태어난 아이가 수일 만에 자라 어른이 되고 왕위에 올랐다는 이야기. 하지만 그의 죽음은 왠지 화려하지 않다. 별다른 꾸밈없이 단출한 왕릉 모습 탓일 것이다.

수로왕릉 정문으로 가는 길이 인상깊다. 수릉원에서 나와 남쪽 담 옆 200m를 걸으면 나오는데 오른편에 김해한옥체험관이 들어서 있다. 돌담길을 걷다 사거리가 나오는데 그 풍경이 오묘하다. 오래전 어느 날로 돌아간 듯하다. 작은 건물과 오래된 벽돌이 운치를 더한다. 날만 갠다면 수로왕릉역에서 자전거를 빌려 한 바퀴 돌면 좋겠다. 신분증을 맡기면 2시간 동안 무료로 대여할 수 있다.

가야사누리길 표지판 /이미지 기자

가야사누리길을 걸으며 여기저기 기웃대니 '왕도 김해'를 즐기는 방법이 많다. 수로왕릉 외 23곳을 도는 스탬프투어는 명소를 탐방해 배경 인증 샷을 찍으면 개수에 따라 다양한 상품을 받을 수 있다.

시티투어도 잘 짜여 있다. 하루나 이틀 동안 황옥코스, 수로코스, 체험코스 등을 골라 이용하면 된다.

때마침 가야테마파크가 개관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가야문화 발상지 김해를 문화로 마음껏 즐길 수 있다. 실제 600년 이상 실존했던 나라, 가야고도로 떠나는 감성여행은 길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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