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주잔량 76척 달하지만 법정관리 위기…조선산업 방향 정부 정책 부재 따져야

통영에 있는 성동조선이 위기에 처했다. 6월 말까지 3000억 원, 9월 말까지 4200억 원이 금융권에서 지원되지 않는다면 부도와 법정관리로 갈 수밖에 없다.

성동조선은 지난해 수주 목표량 43척을 초과해 44척 2조 6000억 원어치를 수주했다.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모두 80여 척, 4조 6000억 원 규모의 수주실적이다. 수주잔량도 76척으로 세계 조선업계 9위 수준이다. 이런 외형만 봐서는 이른 시일 안에 경영안정을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조선업은 선박 수주 이후 실제 매출 발생까지 2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미국 금융위기 전까지 조선업계는 스탠더드 방식으로 대금을 지급했다. 계약과 착공, 탑재, 진수, 인도시 각각 20%씩 대금을 나눠 주는 것이다. 하지만 2008년 이후 20%씩 지급하던 '중도금'을 10%씩으로 낮추고 인도시 60%를 한꺼번에 지급하는 헤비테일 방식으로 바뀌었다. 2년 동안 배를 짓는 데 드는 자금은 조선소가 마련해야 하는데 성동조선은 연말, 늦어도 내년 초쯤이면 2013년 수주한 선박 인도가 순차적으로 되는 만큼 경영 정상화에 한발 더 다가설 수 있다.

그런데도 채권단은 자금 지원을 못 하겠다고 한다. 안타까운 상황이다. 자금난만 해소되면 살길이 열릴 것 같은데 채권단은 마이동풍이다.

그럼 채권단이 마음만 바꿔먹으면 되는가?

사실 몇천 명의 노동자 생계가 달렸다느니 지역 경제가 무너진다느니 하는 주장은 채권단 처지로서는 크게 고려할 사항이 아니다. 만약 기업이 회생하지 못한다면 이미 투입된 자금에다 신규로 투입하는 자금까지 죄다 불량채권이 되고, 속된 말로 '떼이게' 되는데 쉽게 자금투입을 결정할 수는 없다. 성동조선은 지난해 매출 6969억 원, 영업손실이 3395억 원이었다. 채권단의 재무적 판단으로는 추가 자금지원을 하기 어려운 실적이다.

저가 수주이므로 배를 지을수록 적자만 누적될 뿐이라는 한 채권은행 관계자의 말이나, 주 채권은행인 수출입은행이 성동조선 상황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보고 채권단에 상황 설명을 소홀히 했다는 주장이나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경청할 필요는 있다.

그렇다고 관치금융을 부활시키는 쪽으로 가서는 안 된다. 가깝게는 경남기업이 관치+정치 금융 탓에 명맥을 유지하고 부실을 더 키웠지 않는가. 문제는 정부의 정책 의지이다. 선거를 앞두고 지역 표를 의식해서 자금부터 지원하게 하는 땜질 식이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대한민국 조선산업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 확고한 비전과 정책 의지, 일관성을 정부가 보여줄 때 금융권도 당장 눈앞의 손익이 아니라 멀리 보는 판단을 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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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중소형 조선은 중국에 따라잡혔다. 지금 상황이라면 중대형이나 대형 조선이 중국에 따라잡히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더구나 최근 엔저에 힘입은 일본 조선소까지 '실지회복'을 외치며 맹추격하고 있다.

성동조선해양을 살리려는 싸움을 채권은행 앞 집회나 지역 국회의원을 통한 압박이 아니라 정부를 상대로 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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