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6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반대하지 않는다”면서 그간의 입장과는 다른 자세를 보여 주목된다.

또 이 총재는 언론사 세무조사를 언론탄입이라고 규정지어, 그같이 성격을 규정한 배경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서울답방' 입장변화

이회창 총재는 지난달 16일 연두기자회견 때만 해도 6·25 전쟁과 대한항공기 테러사건 등에 대한 사과를 답방의 전제조건으로 내걸었지만, 이날 국회 대표연설에서는 사과와 관련해 원론적인 언급만 했을 뿐 전제조건으로 못박지는 않았다.

이 총재는 연설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으니 이번에는 김 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할 차례이며, 김 위원장도 서울에 와서 한국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직접 봐야 한다”면서 “김 위원장의 방한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이어 “그의 방한을 반대하지 않는 것은 그의 방한을 통해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가 오기를 갈망하기 때문”이라며 “김 위원장이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와 화해를 위해서 온다면 이번 방문은 남북관계 발전에 중요한 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총재는 “정부는 김 위원장의 방한이 한반도 평화정착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정부측의 차질없는 준비까지 당부했다.

이 총재의 이같은 발언은 그간 김 위원장 답방 문제와 관련,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상당히 적극적이고 진전된 자세로 돌아섰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이 총재측이 이번 대표연설을 준비하면서 가장 고심한 부분이 김 위원장 답방 문제였다는 점과, 국회라는 공적인 장소에서 김 위원장 답방문제와 관련해 구체적이고도 진전된 입장을 발표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에 완강히 반대하고 있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정치적 지지기반인 사회 보수세력들의 입장과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적잖은 파장을 몰고올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서울을 답방할 경우 김 대통령은 물론 이 총재와도 만나 통일문제를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 아래 이 총재가 김 위원장 면담 의사를 내비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어쨌든 이 총재의 이같은 입장 변화는 오는 4-5월께로 예상되는 김 위원장의 역사적인 서울 답방과 그에 따른 사회전반의 큰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해 나가겠다는 적극적인 의지의 표현으로 풀이되고 있다.

◇세무조사 중단요구 배경

이 총재는 또 “이번 언론사 세무조사는 명백히 정당성을 결여한 언론탄압”이라며 세무조사 중단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 총재가 직설화법을 사용하며 세무조사 중단을 요구하기까지는 내부적으로 상당한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한 각계의 지지 여론 등을 감안, 톤을 낮춰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이 총재가 “세무조사가 아무리 합법적인 것이라고 하더라도”라는 전제를 붙인 것은 이러한 맥락이다.

한 측근은 “당초 차기 대선 뒤 세무조사 실시나, 세무조사에 대한 투명성 제고를 위해 IPI(국제언론인협회) 및 기자협회, 시민단체 등의 조사과정 참여를 촉구하는 내용을 연설에 포함시키는 방안이 검토됐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향후 대선을 겨냥한 행보에서 언론이 지닌 중요성을 감안, 애매모호하거나 둘러가는 화법 대신 직설법으로 촉구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김대중 대통령이 연두기자회견에서 언론개혁을 천명한 이후 이뤄지고 있는 이번 세무조사를 `언론 길들이기'로 규정, 정부측의 조치 및 언론사들의 대응방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 총재는 이와 관련,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금보다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진통이 있을 것”이라며 “여권의 언론통제 작업이 과거보다 더 악의적이고 고단수로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점으로 볼 때 이 총재의 이번 세무조사 중단요구는 각계의 지지여론에도 불구, 차기 대선 등을 감안할 때 “일단 언론의 편에 설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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